김민영 디자인기자

[미디어SR 김병헌 전문위원]

토인비가 말한 극일(克日)의 열쇠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저술과 강연에서 청어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 자신의 역사이론인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여긴듯 하다. 청어는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급 어종이다. 청어가 잡히는 곳은 북해나 베링해협같은 먼 바다였기에 살아있는 청어를 먹기가 쉽지 않다. 배에 싣고 오는 동안에 대부분 죽는다. 언제부턴가 싱싱한 청어가 런던 수산시장에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비결은 청어를 운반하는 수조에 천적인 물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는 것이었다. 청어가 물메기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다녀야 하는 긴장이 청어를 살아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른바 메기 효과다.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역사이론을 설명하기에 정말 잘 어울린다.

이집트 문명을 봐도 그렇다. 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5,000~6,000년전 아프리카 북부를 걸쳐 있던 강우전선이 북유럽쪽으로 이동해 가자 아프리카 북부와 남아시아 지역은 사막지대로 변해갔다, 이들에게 환경적 도전의 응전은 크게 3가지. 계속 남아 수렵생활로 연명하거나. 남아있되 유목생활로 방식을 바꾸거나, 거주지와 생활방식을 모두 바꾸는 것 셋 중 하나. 이들의 운명은 갈렸다. 그대로 남아 조상처럼 수렵생활을 계속했던 부족은 소리없이 사라졌고, 생활방식을 바꾼 부족은 북아프리카 스텝지역의 유목민이 된다, 독사가 우글거리는 나일강변 밀림지역으로 이주해 농경과 목축을 선택한 부족은 찬란한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을 일군다.

문명이 발전해갈수록 도전도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외에 국가간의 전쟁과 분쟁 등 세분화되고 다양해진다. 16세기 영국은 오늘 우리처럼 당시 유럽을 호령하던 스페인제국이 자국만의 이익을 위해 내린 수출규제에 직면한다. 영국 헨리 8세 때 일이다. 당시 영국은 후진국이었다. 주 수입원은 양털 판매와 해상 약탈이 전부였다. 청동 대포등 필요한 무기도 유럽대륙에서 수입해 쓰던 시절이었다. 해상국가이다 보니 조선 기술과 배의 성능은 좋았다. 유일한 경쟁력이었다. 당시 스페인제국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영국의 해상세력 확대를 우려 플랑드르 공업지대에게 대영국 수출금지를 지시한다.

스페인제국의 몰락이 시사하는 것

영국의 헨리 8세는 자급자족 정책으로 맞섰다. 대포도 자체 제작에 들어간다. 당시 청동가격은 철의 4배에 달해 철대포 개발에 나선다. 먼저 철광맥이 있던 서식스 지역에 제철소 건립을 지원한다. 제철업자들에게 거액의 지원해 철대포와 포탄을 만들 수 있는 품질 좋은 철을 생산케 한다. 마침내 영국은 철대포 개발에 성공한다.지난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 1588년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가 지휘한 함대는 스페인을 칼레해전에서 물리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것이다. 세계 권력의 이동이자 해상권의 장악을 뜻했다.영국이 중상주의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게 된다. 세계 해상권 장악은 해상무역의 제패를 의미했다.

16세기 영국처럼 한국도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오늘(7일) 화이트리스트 규제 공표를 한다. 본격적인 전쟁 돌입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맞서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1년∼5년내 국내에서 개발,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급 자족전략이다. 정부는 지난 5일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全)주기적 특단의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대 품목은 1년 안에, 80대 품목은 5년내 공급을 안정화시키겠다"고 덧붙혔다. 100대 품목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에서 단기(1년) 20개, 중장기(5년) 80개 등이다.

단기 20개 품목은 안보상 수급위험이 크고 시급히 공급안정이 필요한 품목이다. 속도감 있는 수입국 다변화와 생산 확대를 집중 추진한다. 중장기 80개 품목은 업종별 가치사슬에서 취약품목이면서 자립화에 시간이 다소 걸리거나, 핵심장비 등 전략적 기술개발이 필요한 품목을 말한다. 이들 핵심품목에 대한 대규모 R&D 투자는 7년간 약 7조8000억원 이상 투입할 예정이다.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도 나선다. 도전에 대한 응전의 로드맵은 나왔다. 물론 금융권이나 기업들의 회사별 대책은 별개다.

정부는 전략물자 외에 관광·식품·폐기물 분야에서의 대응책도 검토 중이다. ‘비관세 장벽’을 활용하는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수출입 통제를 통해 일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아직 한국 기업의 수출입 차질에 따른 피해가 일본 기업에 비해 더 큰 ‘비대칭성’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을 이기는 길은 경제 분야에서의 탈(脫) 일본, 극(克) 일본이다, 과거 영국처럼 핵심소재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맞닿아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필요한 이유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핵심소재 품목과 관련한 벤처기업의 40% 이상이 소재 분야 국산화에 대해 “3~4년 이내에 국산화가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어 해볼만 하다. 3대 품목과 관련된 기업의 다수는 ‘시일은 걸리겠지만 3대 품목을 포함한 소재·부품 국산화가 가능하다’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국산화 이후 제품이 사장되지 않게 대기업 등 안정적인 판로 확보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영국의 고품질 철 생산이 산업혁명의 기반이 됐다는 사실은 새겨 봐야할 대목이다. 그렇다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적 사실과 대응책 발표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18세기 선각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설파했다. 지나치게 옛 것에 매달리면 때묻을 염려가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점에만 매달리다보면 근거가 없어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법고(法古)에만 치중해 옛 것에 얽매이면 고루해지고 창신(創新)에만 정신을 쏟다보면 정체불명의 근본없는 얼치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논어(論語)의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이 옛것을 알아야 새로운 것에 대한 분별력이 생긴다는 앎의 문제라면 법고창신은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실천의 문제다. 실천의 과정은 쉽지않으리라 본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에게 시련도 따른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이 확전되면서 우리의 처지는 더욱 어려울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제조업경기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어제 오늘의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도 심상치 않다. 삼성, 현대·기아차, SK, LG등 주요 대기업들의 대책회의도 이어지고 있다.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이 유난히 울림 있게 들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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