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준열. 사진 제공. ㈜쇼박스

[미디어SR 한혜리 기자]

“또 만나요! 곧 또 올게요!” 수더분하게 수다를 떨던 배우 류준열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인사를 남겼다. 올해만 해도 ‘뺑반’, ‘돈’에 이어 새 영화 ‘봉오동 전투’까지 세 번째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소처럼 ‘열일’하는 류준열이 이번엔 비범한 사격 실력을 갖춘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로 분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 속 이장하가 빠른 발로 험준한 산을 누비듯, 인간 류준열은 만족에 대한 갈증을 추진력 삼아 달리고 있었다.

Q. 그 사이 머리가 많이 짧아졌군요?
류준열:
맞아요, 1월까지만 해도 역할 때문에 짧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길었죠. 사실 너무 자르고 싶어요. 하하. 워낙 짧은 머리를 좋아해서요. 그동안 작품을 연달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작품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머리를 크게 바꿀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군인 역할이다 보니 ‘아무도 짧은 머리를 말릴 수 없겠구나, 이때다!’ 싶었죠. (웃음) 더 짧게 자르고 싶었는데, (유)해진 선배가 이미 머리를 짧게 자르셨더라고요. 아무래도 황해철(유해진)과는 다른 독립군의 모습을 표현해야 하니까 조금 덜 잘랐죠.

Q. 쉬지 않고 바로 영화 ‘봉오동 전투’를 선택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류준열:
 '봉오동 전투'는 대본을 받은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볼 때부터 이미 마음이 동했죠.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일제 강점기와 조금 다른 시선의 승리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잖아요. 또한, 역사를 안다고 해도 그 당시의 ‘나라 뺏긴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요. 돌이키면 100년도 안 된 일인데 말이죠. 당연한 듯이 그분들이 지켜주신 이 나라에 살고 있는 현재의 제가 영화와 연기를 통해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게 참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 들었어요.

Q. 이번 영화는 봉오동 전투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에요.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는 것은 배우한테도 그만큼 부담감이나 무게감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류준열:
봉오동 전투에 대해선 저 역시도 교과서에 나온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이었는데, 촬영하면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배우로서 연기할 때 내가 충분히 그 당시 독립군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연기한 건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걱정이 많아졌죠.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부터 진지하고 의미 있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사실 봉오동 전투는 남아있는 자료도 많이 없어요. 자료의 양이 적어서 속상하기도 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일제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던 위대한 승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Q. 때마침 현재 한·일 관계와 관련해 영화가 시의성을 갖췄다는 평도 받고 있어요.
류준열:
‘봉오동 전투’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영화예요. 짧은 기간 내에 선보이는 작품도 아니거니와 어쩌다 보니 이 시기에 개봉하게 됐는데, 결국 이 영화는 이름 모를 분들의 희생에 대한 기록의 영화에요. 관객분들도 이 부분을 중심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우리 영화가 기억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배우 류준열. 사진 제공. ㈜쇼박스

Q. 원신연 감독이 류준열 배우에 대해 “독립군 그 자체”라고 표현했어요. 그만큼 싱크로율이 높았다는 뜻이겠죠?
류준열:
이거 약간 비하인드이긴 한데(웃음), 영화 ‘뺑반’을 촬영할 때 ‘봉오동 전투’ 시나리오 작업 단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관계자분들을 통해 귀띔을 들었죠. 감독님께서 저를 염두하고 계시다고요. 일단 저는 정말 감사했죠. 하지만 그땐 ‘뺑반’ 작업 중이어서 감독님께서 일단 ‘뺑반’에 집중하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셨는데,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전쟁 영화였거든요. 그때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장하가 달리는 신이 많잖아요? 아마 팔다리가 긴 제 신체조건이 역할에 알맞다는 뉘앙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하하.

Q. ‘국찢남(국사책을 찢고 나온 남자)’이란 별명이 붙었어요.
류준열:
처음엔 저도 무슨 단어인 줄 몰랐어요.(웃음) 의미를 들으니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학교에서 연기 배울 때 가장 인상적인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거든요.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까지도 스스로 이것을 제1의 원칙으로 생각하고 연기를 하는데, ‘국찢남’이 바로 그 뜻이 아닐까 싶어요. 의미 있는 별명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Q. 이장하의 첫 등장이 굉장히 인상 깊어요. 잊을 수 없는 눈빛으로 등장하죠.
류준열:
맞아요. 눈빛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시나리오에 (이)장하는 ‘청명한 눈빛이 있는 청년’이라고 쓰여있거든요. 그 ‘청명하다’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이장하한테 굉장히 어울리는 눈빛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표현하려고 첫 장면 애를 많이 썼는데, 인상 깊게 봐주셔서 다행이에요. 영화 포스터 보시면 아시겠지만, 독립군들 모두 행색은 남루하지만, 눈빛은 청량하게 살아있어요. 이게 바로 독립군의 정신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Q. 이장하는 영화 내내 대사보다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느낌이었어요.
류준열:
이장하는 이전에 ‘독전’의 락(류준열)처럼 대사보다는 분위기가 있는 캐릭터예요. 연기를 배울 때 교수님들이 군인 역할이나 무사 역할이 굉장히 어렵다고,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어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학생 때 썼던 연기 노트까지 다시 찾아봤죠. 배우는 ‘잘 서 있어야 한다’고 하거든요. 근데 이게 카메라나 무대 앞에선 말처럼 쉽지 않아요. 서 있는 것만으로도 표현되는 게 많으니까요. 이장하를 통해 이런 기술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제 연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류준열. 사진 제공. ㈜쇼박스

Q. 배우 류준열이 바라본 이장하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류준열:
황해철, 마병구(조우진) 캐릭터를 통해 선배들이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편안해지는 지점이 있어요. 반면 장하는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도드라지는 부분이 보였죠. 연기를 하면서 그 부분을 가장 경계했어요. 너무 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하지만 장하라는 인물은 분명히 구별되는 역할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조금 부드럽게 연기를 해보겠다고 말씀드리면 감독님은 지금이 좋다고 설득하시더라고요. 후시 녹음 때까지도 캐릭터의 톤이나 무게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제가 설득당했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마병구와 황해철 대사 중에 그런 게 있더라고요. “장하는 우리랑 각이 달라.”, “여전히 웃지 않는구나.” 이런 대사들이요. 사실 이게 다 애드리브에요. 감사하게도 이 대사들로 인해 이장하라는 캐릭터가 완벽히 살았죠. 어쩌면 선배들은 제 고민을 이미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Q. 웃는 장면은 작전을 얘기하는 신에서 단 한 번 등장하죠.
류준열:
사실 그 신은 원래 웃지 않았어요. 너무 경직된 것 같아서 다시 찍은 장면이에요. 개인 신으로 2회차 때 찍은 장면이었어요. 고민이 많을 때였죠. 장하가 무리에 좀 더 희석되어야 할 것 같고 (황)해철과의 관계가 조금 부드럽게 보여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요. 감독님이랑 수많은 얘기를 나누고 탄생한 유일한 미소에요.

Q. 이장하는 액션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이번에 생애 첫 와이어 액션을 선보였다죠?
류준열:
재밌더라고요. 하하. 스태프들이 와이어를 잡아당기면 제가 쑥 올라가잖아요. 안전한데도 불구하고 처음엔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어요. 현장에서 우스갯소리로 파주(액션스쿨)에서 며칠 연습하고 와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감독님이 “파주라고 생각해~” 하시더라고요. 하하. 그렇지만 장비도 다 갖추고 안전하게 촬영해서 결국 멋진 장면이 탄생했죠. 와이어를 하면서 영화라는 작업이 협동도 중요하지만, 신뢰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Q. 총도 원 없이 만졌겠어요. 영화 속에서 꽤 다양한 종류의 총을 사용하잖아요.
류준열:
영화 속에서 썼던 총들은 실탄을 넣으면 진짜 발사되는 실제 총이에요. 물론 실탄으로 촬영하진 않았지만, 그중 기관총이 굉장히 고장이 잘 났어요. 연결해서 쐈어야 하는데, 한 다섯 발 쏘면 걸리고, 고치는 데 20분 걸리고. 이걸 반복하다 보니 하루가 다 가겠더라고요. 근데 갑자기 총이 잘 나가는 거예요. 얼른 찍고 나머지 신은 마치 총알이 나가는 것처럼 ‘셀프 진동’으로 연기했죠. 하하.

Q. 이장하는 참 발이 빠른 인물이죠. 실제 류준열도 그런가요?
류준열:
평소에 축구도 좋아하고 뛰는 걸 좋아해서 달리는 신에 그렇게 큰 거부감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해진 선배한테는 감히 비할 체력이 못되더라고요. 모든 배우, 스태프를 통틀어 가장 잘 뛰는 사람이 해진 선배였어요. 저희는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뛰시더라고요. 원래 산에 사시던 분 같았어요. 하하. 심지어 차로 갈 수 있는 길에도 불구하고 운동이 부족하셨는지 걸어 내려가시더라고요. 정말 존경스러웠죠.

배우 류준열. 사진 제공. ㈜쇼박스

Q. 영화 속 배경의 리얼리티가 상당해요. 4개월간 직접 농사를 짓고 마을을 꾸미기까지 했잖아요. 배우로서 공들인 환경에서 일한다는 건 매우 행운이었을 것 같은데, 그곳에서 연기하는 소감은 어땠나요.
류준열:
전투 신을 찍을 때는 뛰어다니느라 정신없었는데 동굴 신이라던가 막사에서 작전을 짜는 신에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얼하게 꾸며진 세트를 보니 독립군들이 이런 데서 생활했다는 게 몸으로 와닿았죠. 그들도 인간으로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해야 했을 텐데 기본적인 것들을 못 하는 환경이었으니까요. 저희는 촬영 끝나면 숙소로 가서 쉬면 되지만, 실제로 전쟁 중에는 편히 쉴 수 없잖아요. 세트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 울컥하더라고요.

Q. 말로만 들어도 험한 환경 속에서 모두 무사히 촬영을 마쳐서 다행이네요.
류준열:
피지컬 팀이라고 안전을 챙겨주시는 분들이 항상 촬영장에 계셨어요.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전문 베테랑 의료팀인데 보통 액션 영화를 찍으면 해당 신이 있는 날에만 오셔서 관리해주시거든요. 이번엔 영화 전반적으로 관리를 해주셨죠. 식사하고 뛰어야 할 땐 체하지 말라고 마사지도 해주시고 산에서 체온 유지는 물론, 뛰는 신이 많다 보니 발목 안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덕분에 감사하게도 부상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죠. 이번 영화는 정말 스태프들에게 너무 감사드려요. 산에서 촬영하다 보니 스태프분들이 짐을 지고 산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저희가 도우려 해도 배우의 부상은 촬영 중단으로 직결될 수 있으니까 말리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죄송스럽고 옆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영화처럼 많은 분이 힘써주셨죠.

Q. 이렇게 촬영도 무사히 마치고 영화도 호평 일색이에요. 그래도 아쉬움이 남던가요?
류준열:
연기를 하면서 늘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은 있죠. 바로 제 연기요, 하하.

Q. 유해진 배우와는 <택시운전사>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에요. 많이 친해졌나요?
류준열:
그 당시엔 낯도 많이 가리고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이제는 해진 선배랑 사는 얘기도 할 정도로 친해졌죠.(웃음) 영화 ‘돈’을 찍을 때 유지태 선배께서 저한테 친한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보셨어요. 사실 친한 배우가 많이 없어요, 저. 하하. 현장에서는 서로 바쁘다보니 깊게 얘기도 못 나눠봤고요. 그랬더니 선배가 동료 배우들과 친해지면 ‘나중에’ 좋을 거라고 조언하셨거든요. 일 얘기, 배우로서 털어놓지 못할 얘기들을 동료로서 나눌 수 있다고요. 그땐 잘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제야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해진 선배는 특히 저랑 닮은 점도 많고 배울 점도 많은 선배라 더 다가간 것 같아요.

Q. 어떤 부분이 닮았다고 느껴졌나요?
류준열:
우선 외모요. 하하. 해진 선배도 운동을 좋아하시더라고요. 금연도 오래 하셨고 관리를 하시는 편이죠. 배우로서 깊은 얘기를 해주시면 공감도 많이 되고요. 또, 여행으로도 잘 통해요. 해진 선배도 촬영 없는 날엔 해외에 많이 계시니까요. 서로 여행지에 대해 공유하기도 하고, 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배우 류준열. 사진 제공. ㈜쇼박스

Q. 류준열은 소문난 여행 마니아잖아요. 축구도 좋아하고. 취미가 참 많아요. 요즘 새롭게 빠진 게 있다면요?
류준열:
‘봉오동 전투’죠. 하하. 농담이고, 요즘은 사진? 전시도 많이 다니려고 하고 다양한 작품들도 보고 찍기도 해요.

Q. 평소에도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요. 다작하면서도 잘 쉬고 있는지 궁금해요.
류준열:
안 그래도 요즘 좀 고민이 많아요.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렇고 익숙함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분간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할 텐데, 그래도 빨리 돌아오려고 해요.(웃음) 사실 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쉬는 게 제 체질에 맞지 않더라고요. 일할 땐 단순히 촬영하고 쉬면 하루가 끝인데, 아무것도 안 할 땐 ‘뭘 해야 하지?’라고 아침부터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생각하느라 바빠서 미칠 지경이에요. 하하. 회사에서도 쉬다 오라고 권유하는데도 안 될 것 같아요.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쉬면 스트레스받는 스타일인가 봐요. (웃음)

Q. 그렇다면 이 다음 스텝은요?
류준열:
일단 ‘봉오동 전투’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팬 미팅이 있긴 한데, 모르죠. 그사이 또 좋은 작품으로 소식을 전할 수도 있을 수도 있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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