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비온디 ILO 노동자활동국 부국장이 "글로벌 공급망 내 인권보호와 CSR, 2018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에 나서고 있다. 이승균 기자
고용노동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외교부를 통해 비준을 의뢰하고 결사의 자유 협약 관련 입법은 각계 의견수렴을 거쳐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정부입법안을 마련해 이번 정기국회 내에 법안을 제출하기로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사 모두가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 도출보다는 유럽연합 등 국제기구 압박에 따라 불가피하게 지난 4월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정부 입법안을 제출하면서다.
 
이번 정부 입법안은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과 관련한 단결권 사항과 함께 합리적인 노사관계 형성을 위한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관련 과제가 포함되어 있어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기본권 보호라는 원칙과 함께 우리나라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했다는 것이 고용부의 설명이다.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국제기준 부합 vs 글로벌 스탠다드
 
그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와 관계없이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이다. 우리나라는 산업과 업종 지역을 단위로 하는 노동조합에 한해서는 실업자와 해고자 가입을 보장하고 있으나 기업별 노조에 일반 조합원으로 가입은 제한되어 있다.
 
이번 정부 입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제한되고 있는 기업별 노조와 관련해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와 상관없이 기업별 노조를 포함한 모든 노동조합에 대해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법안이 통과하면 노동조합이 스스로 규약을 정해 이를 허용할 경우 노조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ILO는 해고와 실업 상태에 있는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금지하는 규정을 폐지하라고 지난 3월 권고한 바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를 두고 성명서를 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수성 후진성 등 현실적 여건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선진화해나가야 하는데 개선방향에 대한 고려가 비흡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노사 간 입장이 균형되게 반영되지 않았다"며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특히, 경총은 성명서에서 "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이 없는 노동조합의 조합원 가입에 대한 경영계 우려는 알고 있으나 국제노동규범(ILO)는 회사에서 근무하지 않는 조합원의 활동을 영국, 미국, 독일 등 국가에서 인정하고 있다고 사실상 전면 반박했다.
 
해고자 노조가입 등을 두고 실제 국제 표준(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가야 한다는 논평에 대해 경총 관계자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전반적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특정 협약이 국제표준에 부합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닌 국내 실정에 국제표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으로 보인다. 실제 영국과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회사에서 근무하지 않는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사업장 접근한 노조활동에 대해서 제한을 두고 있다.
 
# ILO 비준 왜 서두르는가? 새로운 무역분쟁 여지 있어
 
고용노동부의 이번 다급한 ILO 핵심협약 비준과 입법안 마련은 외부적 압박의 영향이 큰 것은 물론 더는 미루면 구조적으로 무역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어서다. 이번 비중동의안을 두고 고용부는 "한-EU FTA는 EU가 노동, 환경 조항을 포함하여 체결한 최초의 FTA이며 유럽의회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관심과 압박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EU는 2011년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에도 한국이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구체적 성과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 이후에 체결한 캐나다, 멕시코, 일본, 베트남 등과의 협약에서도 노동과 환경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ILO 비준을 미루면 자유무역협정 위반 사안으로 새로운 무역분쟁이 발발할 수 있다.
 
ILO 협약은 아동노동, 산업안전, 근로감독, 동일임금, 단시간 근로 등 업종별 분야별 세부적인 수십 개의 협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기업에 적용하기 위해 2011년 국제표준화기구는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표준 ISO 26000을 승인했다. ISO 26000은 ILO의 핵심협약에 해당하는 결사의 자유 보장(87조, 98조), 강제노동금지 등을 준수하고 이를 기업이 관행적으로 포함해 관리할 것을 지침으로 두고 있다.
 
이번 한일 무역분쟁과 마찬가지로 EU에서 ILO 핵심협약 미비준을 FTA 위반으로 보고 국제기구에 제소하거나 비준 동의했더라도 개별 국내 기업이 결사의 자유 등을 포함한 규정을 규범화하지 않을 경우 유럽 기업이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FTA 준수를 위해 거래 중단을 선언할 수도 있다. 당장의 실현 가능성은 작지만 환경 파괴, 아동 노동 등을 이유로 거래 중단을 선언한 해외 사례를 볼 때 노동권 약화를 무역 장벽의 근거로 활용해 공세를 할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실제 ILO는 공급망에서의 근로환경을 검토하기 위해 2016년 관련 보고서를 내고 실제 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행동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 무역분쟁이 끝은 아니다, 기업평가에도 영향
 
유럽연합의 국제노동기구 노동권 핵심 협약을 토대로 하는 압박은 무역분쟁 외에도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등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준 이후 관련 노조 활동에 대해서 규범화를 통해 관행적으로 자리 잡도록 유도하지 않으면 기업의 비재무적 부문에 감점을 받게 된다. ISO 26000(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이 도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수준을 평가해 지수화하는 미국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기업의 노동권 수준을 포함한 환경 사회 지배구조 요소를 평가해 점수화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를 만들어 운용 중이다.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500여개 기업을 평가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삼성, LG, GS, 현대, 두산 등 다수 대기업 그룹이 편입되어 있다.
 
DJSI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대해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평가하는데 사회적 부문에서는 ILO가 제20차 노동회의에서 결의한 국제 공급망에서의 노동에 관한 결의안, G20 지도자 선언 등을 참조해 평가 지표를 마련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동일노동 불공평한 소득, 사회보장 제도는 물론 노동과 복지에 관한 광범위한 질문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 수준을 검토하고 있다. 노사관계를 긍정적으로 풀어내야 사회 부문 점수 하락을 방지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을 중심으로 사회책임투자 강화 추세에 있어 노동 문제를 국제 표준에 맞게 시의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내 상장사의 사회 부문 점수를 평가해 KRX-ESG 지수화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회모범규준을 마련해 기업은 단체결사 및 단체교섭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노사간의 효과적인 대화를 통해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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