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 사진=쇼박스

애국심으로 가득한 영화는 이미 볼 만큼 봤다. 알만큼도 알았고 더는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감 없는 애국심을 끌어올린다.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0년 6월, 봉오동 계곡에서 일어난 일본 정규군과 독립군 연합부대의 전투를 그린 이야기다. 독립신문 제88호에 등장하는 짧은 기록을 134분의 영화로 재탄생시킨 것. 영화 측은 미디어SR에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든 영화기에 캐릭터 역시 실제 독립군 인물들의 모습을 차용했다”고 귀띔했다. ‘봉오동 전투’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으로 독립운동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 하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영화가 독립운동, 항일운동의 이야기를 다뤄왔다. 물론 제대로 된 영화도 많았지만, 그중에는 역사 왜곡이나, 과한 신파 몰이를 하는 등의 길을 잃은 작품도 많았다. ‘봉오동 전투’는 마치 후자의 영화를 반증하기라도 하듯 역사 왜곡을 철저히 경계했고, 불필요한 신파는 과감히 줄였다. 인물의 감성적인 과거 설명은 최소화하고 당시 봉오동 전투의 전략과 전술을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사진=쇼박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사진=쇼박스

‘봉오동 전투’ 속 캐릭터 성은 전투신에서 빛난다. 전설의 독립군 황해철(유해진)이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는 문구가 쓰여진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전투신을 장악한다면,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는 빠른 발과 비범한 사격 실력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전투신스틸러’로 등장한다.

여기서 독보적으로 빛나는 건 배우 조우진의 존재감이다. 마적 출신의 저격수 마병구 역을 맡아 소화해낸 조우진. “역사적 무게감과 영화적 재미를 모두 전달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조우진의 배역 설명은 그야말로 정답이었다. 간간히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뛰어난 사격 액션을 통해 긴장감을 쫀쫀하게 만들기도 하는 마병구는 영화 전반의 유연성을 조절하는 핵심 캐릭터임이 분명했다. 마병구로 인해 관객은 손을 꽉 쥘 정도로 긴장하기도, 그 긴장을 풀고 웃기도 할 수 있었다. 유연하게 감정을 오가는 조우진의 내공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사진=쇼박스

영화는 내내 적나라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시체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고 총상을 비롯한 잔인한 상처들은 그대로 스크린을 통해 비춰졌다. 영화의 흐름에 의하면 이는 또 하나의 고증이라 볼 수 있었다. 물리적인 상처는 곧 우리 민족과 역사의 상처였고, 일본군의 공격을 받은 피폐해진 마을의 모습은 참혹한 일제 치하의 당시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잔혹한 모습에 눈을 감고 싶어도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의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의 기술적인 매력이 돋보인다고해서 ‘봉오동 전투’에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 농사짓던 사람도 오늘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중반부 황해철이 외치는 이 대사는 그야말로 영화의 의미를 그대로 함축시킨 메시지다. 황해철, 마병구를 비롯한 독립 연합군은 본디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이, 제주에서 물질을 하던 평범한 출신의 이들로 군인 출신도 아니면서 겁없이 적진에 뛰어든다. 오직 내 땅을 찾기 위해서. 이는 분명한 독립운동에 관한 메시지였다.

영화 '봉오동 전투' 캐릭터 포스터 / 사진=쇼박스

영화를 또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이전세대와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로도 나눌 수도 있다. 황해철, 이장하, 마병구가 살아왔던 세상과 개똥이(성유빈), 춘희(이재인), 유키오(다이고 코타로)가 살아갈 세상으로. 일본군에게 가족을 잃은 개똥이와 춘희, 일본군에 자원입대한 소년병 유키오의 관계는 전 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완벽한 적대감보다는 새로운 앞날의 희망을 예고한다. 이는 유키오가 일본군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유일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건 일본인 배우들의 모습이다. 극 중 독립군을 쫓는 월강추격대로 등장하는 일본군 역할에는 실제 일본인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다. 키타무라 카즈키(야스카와 지로 역), 이케우치 히로유키(쿠사나기 역), 다이고 코타로가 그 주인공. 한일 관계의 민감한 주제를 다룬 만큼 배우의 입장에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는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마다하지 않은 것. 덕분에 원신연 감독의 말대로 리얼리티의 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사진=쇼박스

그간 조명하지 않았던 봉오동 전투라는 새로운 소재, 새로운 영웅들, 그리고 새로운 시선들로 진부함을 덜었다. 그리고 담백하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사건에 집중한 이야기들로 기억해야 할 역사를 되짚으며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전했다. 원신연 감독의 이같은 정공법은 ‘흥행’이라는 승리를 끌어낼 것을 기대케 한다. 오는 8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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