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연기 앙상블이 어우러진 멋진 영화가 나왔다.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에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된, 훈민정음 창제의 뒷이야기가 송강호, 박해일과 고(故) 전미선의 연기로 맛깔나게 펼쳐진다.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송강호)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유학의 나라였던 조선, 그곳에서도 권력의 중심에 선 국왕 세종이 나라의 문자를 만든다. 그런데, 그 문자를 만든 핵심은 유교가 아닌 불교의 승려들이다. '나랏말싸미' 측은 미디어SR에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설 중 하나를 담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나랏말싸미'는 수많은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한 가지 가설을 택해 이를 110분 동안의 이야기로 완성해냈다. 언어 창제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조명하면서, 담백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쏟아낸다. '007 작전'에 가까운 한글 창제의 과정이 배우들의 연기와 군데군데 스며든 소소한 웃음 코드와 어우러져 집중도를 높인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의 도입부터 우리말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않으며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세종의 모습은 '나랏말싸미'라는 제목이 가진 직관성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세종을 표현해내는 송강호의 저력은 놀랍다. 기존 미디어에서 표현한 세종과는 다른 결을 가진 캐릭터 변주를 해냈다. 인물에 동화되는 송강호의 걸출한 연기력은 역시나 발군이다.

박해일의 변신도 반갑다. '꼴통 승려'로 통하는 신미 스님 캐릭터는 박해일이 가진 특유의 반항기 어린 눈빛과 만나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여기에, 산스크리트어라는 희귀어를 완벽 소화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유교 국가의 승려로서 왕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했다"는 그의 말처럼, 박해일은 신미 역할을 적당한 예의와 강단 있는 모습으로 풀어낸다.

고 전미선은 특유의 온건한 모습으로 소헌왕후 캐릭터를 충실히 표현해냈다. 조철현 감독이 직접 '두 명의 졸장부 세종대왕과 신미스님 그리고 한 명의 대장부 소헌왕후'라고 평할 정도로 이 영화 내에서 소헌왕후가 가진 역할은 명징하다. 결정적인 역할에서 방아쇠 역할을 하며 한글 창제와 반포까지를 직접 이끌어낸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송강호 박해일이 두 축을 이뤄 이야기를 선봉장으로서 끌고 간다면, 전미선은 이들을 아울러 두 축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소헌왕후 캐릭터가 가진 현모양처 속 강인한 여성상을 전미선만의 방식으로 완성시켰다. 

굳이 글을 왜 만드냐는 질문에 "망하지 않으려고"라고 답하는 세종의 대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담백한 대사 안에 내포된 저의는 담담하되 날카롭다. "새 문자는 무조건 간단하고 쉬워야 돼"라고 강조하는 소헌왕후의 말에서는 백성에 대한 애민정신이 느껴진다. "이제 주상이 멈추자고 해도 내가 멈출 수 없소"라고 말하는 신미 스님의 모습에선 글자 창제에 대한 열의가 엿보인다. 

이들의 뜨거운 한글 창제 과정을, '나랏말싸미'는 무겁지만은 않게 담아냈다. 소리를 연구하는 과정은 가벼운 톤으로 전개돼 관객들이 자칫 피로해질 수도 있는 여지를 줄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발음을 따라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오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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