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대문 안쪽에 붙어있는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일이 열살 즈음의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두근거리며 또 설레는 일이었다.

오늘은 혹시....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우편물을 가져다주는 집배원이 이른 아침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 뜬 아침이면 세수도 하기 전 우편함을 먼저 들여다 본 후에야 아침을 먹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대문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날은 정말이지 심장 뛰는 소리가 귀로 다 들릴만큼 쿵쾅거렸다.

그 쿵쾅거림에 다리힘이 다 빠질지경이었다.

그러나, 겨우 열살의 어린 아이에게 편지가 올 곳이 있었을까?

없었다. 내게는.....

그 시절 사춘기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펜팔이 한창 유행이었지만 나는 겨우 열살을 막 넘긴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리움이란 낱말을 알 수 없었고 그 낱말 주변을 맴도는 습기를 머금은 자욱한 안개숲을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안다고 슬픈 곡조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 한켠 어디쯤이 아팠다.

가슴과 영혼을 연결해서 조이는 볼트가 있다면 그때 그 아픈 순간이 꼭 볼트를 조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조여지는 순간 소금기 섞인 뜨뜨미지근한 물이 주루룩 흘렀다.

참 나이에도 안맞던 노래. 그 노래가 나는 참 좋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조의 노래는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이 부분만을 반복해서 부르던 한 남자. 나의 아버지. 먼 길 떠나신 후 내게 유언처럼 따라다니던

그 노래는 그때도 지금도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조의 노래다.
 

그랬다.

매일 집배원을 기다리던 어린 여자아이는 동화책에 깊이 심취하는바람에 정말 동화에서처럼 먼 먼 그곳에서 편지가 올지도 모른다 여겼다.

자전거를 탄 집배원 아저씨가 편지요- 하면서 희고 각진 봉투를 전해 줄 것만 같아서 매일 꿈속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대문앞으로 가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현관문을열고 계단을 내러가면서. 아니 현관문을 열고 몸을 문밖으로 내미는 동시에 이미 내 눈길을 우편함으로 먼저 가 닿았다.

편지를 우편함 밑으로 꺼낼 수 있도록 난 네모난 구멍으로 흰 편지봉투가 삐죽이 보일지도 모르기에...

실은 계단을 걸어내려가면서 이미 알고있었다.

우편함이 비어서 그 네모난 구멍이 동굴처럼 어두워 보이는 걸 이미 다 알면서도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까치발을 들어 우편함 안으로 손을 넣어봐야 마음이 놓였다,

오늘 안오면 내일 또 기다리면 되니까.

늘 기다리면 언젠가는 올 수 도 있지 않을까하는 그 기다림으로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가며 사춘기를 맞이했다.

동화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우체통, 집배원,그리고 그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조의 노래 아라리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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