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월드타워 사진: 구혜정 기자

정처 없이 발길을 옮겼다. 김삿갓은 꿈에 그리던 금강산에 도착한다. 산수를 좋아했던 옛 선비들이 그토록 황홀해하면서 찬탄해 마지 않았던 곳이다. 산길을 가노라니 산과 산, 물과 물,나무와 바위뿐이건만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고 도니 (송송백백암암회/松松栢栢岩岩廻) 물과 물, 산과 산이 어우러져 가는 곳마다 기이하구나.(수수산산처처기/水水山山處處奇). 김병연(金炳淵)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성심(性深)이며, 호는 난고(蘭皐)다.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삿갓을 쓰고 방랑했다하여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풍자시인이다. 그는 생전에 금강산의 절승경개를 기발하고 생동감 넘치게 여러 방식으로 묘사했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쉽고 명료하게 풀어낸 이 시가 압권으로 꼽힌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대부분 한곳에서 자란다. 우애 화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歎逝賦)의 ‘신송무이백열(信松茂而柏悅)이라는 글귀에서도 잘드러난다.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송무백열(松茂柏悅)이다. 형제나 가까운 이 가 잘되고 출세하는 것을 기뻐하고 축복해준다는 말이다. 실제로 나무의 성질도 그렇다. 음수(陰樹)인 잣나무는 햇빛이 적게 드는 것을 좋아해 소나무가 무성하여 빛을 가려주면 살아가기가 훨씬 편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요즘 거침이 없다. 잘나간다. 오랜시간을 끌어온 경영권 문제도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국내 호텔롯데의 상장만 남았다. 유통의 핵심인 롯데백화점의 영등포 상권 수성에도 성공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재선임,명실상부 롯데그룹의 '원톱' 자리에 오르게 됐다.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은 지난 2015년 시작됐다. 그때마다 신 회장은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신동주 전부회장은 준법경영 위반으로 일본 롯데 주요 계열사 이사직에서 해임, 지속적으로 신규 선임 안건을 제시할때마다 거부당한 만큼 이제 한일 롯데의 리더 자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텔 롯데의 상장이 중요한 이유

이어 30일에는 롯데백화점이 서울 영등포역 민자역사 임대 사업권 입찰에서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최장 20년간 더 운영할 수 있게 된것이다. 영등포점은 롯데가 지난 1987년부터 정부와 30년간 점용 계약을 맺은 뒤 1991년부터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곳. 현재 연매출 5000억 원을 올리는 '알짜'다. 입찰 예정가를 16%나 웃도는 '베팅'으로 지켰다. 미국 롯데케미칼 사업도 얼마전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계기로 추가 생산을 위한 증설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미국 추가 투자는 기존 투자(케미컬ㆍ호텔)의 연장선상에서서 이뤄질 것"이라며 투자 방향성을 밝혔다. 지난 5월 루이지애나 롯데케미칼 공장 투자와 연관된 추가 설비 증설이 이뤄지거나, 롯데호텔이 미국 동부 지역 리조트 사업에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선양 롯데월드 프로젝트외는 거의 모든게 순조로워 보인다 . 롯데측은 "선양사업은 2년 넘게 공사가 중단된 뒤라 내부적으로 다방면으로 사업성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신 회장도 지난 달 롯데케미칼 레이크찰스 준공식에서 "중국 시장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며 손을 떼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젠 호텔롯데 상장만 남겨놓고 있다. 꼭 필요한 조치다. 지금도 롯데에 대해 적지않은 국민들이 ’정체성‘에 시비를 건다. '무뉘만 한국 기업'이라는 평가다. 신 회장이 '뼈속까지 한국기업'임을 강조하지만 '일본 롯데의 지배를 받는 기업'이라는 지배구조가 발목을 잡는다. 호텔롯데의 상장이 쉽지 않다.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현재 호텔롯데의 시장 평가는 지난 2016년 상장을 시도할 때와 다르다. 신 회장의 수감등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문제 등 여러요인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했다. 호텔롯데의 매출도 줄었다. 중요순위에 앞서나 산적한 현안이나 경제 여건으로 봐서 실행순위는 밀릴 가능성이 크다,

롯데가(家) 화합이 경영권 안정에 도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리한 경영권문제로 엇나가버린 롯데가의 장남이자 형인 신 전부회장 등 가족들간의 관계 회복이라고 본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형제는 우애도 배우고 경쟁도 하는 사이다. 길을 가다 금덩이를 주운 형제가 욕심 때문에 우애가 상할까봐 강에 던졌다는 형제투금(兄弟投金)이야기도 있다. 밖에서 싸움을 걸면 형제가 힘을 합쳐 막아낸다. 형제에 관한 속담이나 격언은 우애보다 다툼을 소재로 한 게 더 많다. 유태인들은 ‘적(敵)이 되고 만 형제는 그 어떤 적보다 심하다’고 한다. 터키에선 ‘형제 사이도 돈에서는 남’이라 하고, 일본에선 ‘형제는 남이 되는 시작’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는 동생을 죽인 카인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인간에게 내재한 ‘원초적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삼성 현대 한화 두산등이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롯데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비온 뒤 땅이 굳 듯 아니면 세월이 약인 듯 지금은 문제가 없다.

명심보감(明心寶鑑)안의편(安義篇)은 형제위수족, 부부위의복/의복파시 경득신,수족단처 난가속 (兄弟爲手足,夫婦爲衣服/衣服破時 更得新/手足斷處 難可續)이라고 했다. 형제는 수족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으니 의복이 떨어졌을 때는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나 수족이 잘라진 곳은 잇기가 어렵다고 했다. 장자(莊子)의 말씀이다. 천하난득자형제/이구자전야(天下難得者兄弟/易求者田也)라는 말도 있다. 천하에 얻기 어려운 것은 형제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전답(이익)이다. 물론 이 문제는 신 회장과 롯데가의 몫이다. 제가(濟家)가 되지 않고 기업이 잘 되기는 힘들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롯데는 신회장 일가의 것만은 아니다.10만명이 넘는 임직원과 그 가족들의 회사이며 주주들의 회사이기도 하다. 송무백열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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