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이 연구원] 한국은 ‘고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0~2035년 장래가구추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인 가구 비율은 25.3%다. 가족을 비롯한 사회 관계망이 해체됨에 따라 1인 가구 수가 증가하고, 이들의 소득격차도 심해지면서 생긴 사회 문제다. 오랜 시간 방에서 나오지 않고 무기력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 일명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지고 있다. 세상과 이웃은 이들에게 무관심으로 응답할 뿐이다. 지역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양장점과 같은 커뮤니티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지역 이웃에게 마음을 열어줄 신(新) 양장점, ‘참새의상실’이 있다.
참새의상실의 시작은 참새의 상실
참새는 최하나 대표의 별명이다. 그녀 역시 오랜 시간 홀로 방에서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실이 공감받자 그녀는 방문을 열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됐다.
“7년 넘게 구로구에 살았어요. 제가 방에서 오랫동안 있어도 이웃 어느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방안에 있던 유자살롱(*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서 무중력 상태로 지내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밴드, 잡지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회적기업) 잡지를 읽고 저의 무중력한 상태에 공감과 위로를 얻었죠. 잡지를 읽으면서 나 자신의 문제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바깥세상의 누군가에게 위로 받은 게 큰 힘이 됐어요”
그래서 그녀는 혼자 외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메시지가 되기로 했다. 이런 결심이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온 그녀가 처음으로 활동한 곳은 ‘민중의 집’이라는 지역사회 커뮤니티. 거기서 시민강좌, 독서,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출판사에 취업해 1년 반 동안 서울 곳곳의 서점을 방문하면서 영업을 했다.
“민중의 집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자립을 얻고, 출판사 일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도 하다보니 저의 필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나의 필요가 어디에 쓰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일상에 만족하면서 살다가 기술을 배움으로써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재봉을 배우면서 필요를 연결해주는 적정기술로 ‘나눔 재봉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자신의 필요와 사회의 필요 사이에 균형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의상실을 통해 맞춤옷이 필요하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재봉교육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즉 윗실과 밑실의 연결점이 되었다. 최 대표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타겟은 경력 단절 청년들이다. 청년들이 제봉 교육을 배워 원피스를 제작하고, 장애인, 노인 등 맞춤옷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저는 옷이 주는 위안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방 안을 나와 민중의 집과 출판사에 다니면서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게 행복했어요. 밝은 색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고요” 나눔 재봉틀의 첫 밑실은 최 대표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애니매이션 주인공인 참새 친구 처피를 닮아 별명을 얻었다. 처피(chirpy)는 ‘밝은, 쾌활한’이라는 의미다. 방 안의 어두운 시기를 보냈지만 ‘참새 혹은 처피’라는 이름과 밝은 색 옷은 그녀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무연(無緣)사회’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매체가 되었다.
“방에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점점 무기력해져요. 이 안에 있는 사람을 억지로 꺼내면 안돼요. 이런 사람에게 관심있는 매체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줘야 해요.”
마을의 이웃과 마음의 이웃
참새의상실이 만드는 옷의 유형은 ‘원 마일 웨어(one-mile wear)'다. 외출복과 실내복의 중간 단계로 1마일 이내의 거리를 갈 때 입는 편한 옷으로, 방안에 있는 사람이 안과 밖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기 위한 맞춤옷이다. 이 옷을 입고 본인이 살고 있는 곳의 위아래옆집을 둘러보면 그 사람 자체가 이웃의 매체가 된다.
“참새의상실은 마을의 이웃과 마음의 이웃이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모이는 ‘마을’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상품을 전하는 마을의 이웃뿐만 아니라 공동체 예술을 통해 마음의 이웃이 될 거에요.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옷감에 그리면서 자신만의 옷을 만드는 작업을 해요”
위 그림은 출입이 자유로운 상태를 표현했다. 방의 문을 나오자 공감할 수 있는 세상과 공간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녀가 표현한 옷감은 옷이 되어 사람들에게 사회의 문제를 전하고, 은둔형 외톨이에게는 세상 밖에 응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알린다.
참새의상실은 실패 사례다?
지난 3월 6일 사단법인 씨즈가 개최한 ‘실패사례 공유회’에서 그녀는 참새의상실을 실패 사례로 발표했다. 참새의상실은 특별하게 3남매가 운영하고 있다. 장녀인 그녀는 크라우드 소싱(**제품 개발과정에 참여를 유도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 윗실이 80여벌의 원피스를 만들어 80명의 밑실에게 전달해야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녀는 혼자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할지 몰랐고, 장녀 특유의 책임감 때문에 모든 걸 혼자 맡아서 한 결과였다. 아직 이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녀는 이제 ‘장녀’라는 책임의식이 아닌 ‘한 기업의 대표’로서 마인드를 가지기로 했다.
“사람도 사회적기업가를 닮았다고 생각해요. 참새의상실이 작년에 미션 확립을 통해 마음의 자립을 얻었어요. 올해는 경제적 자립을 얻어 자체 수익 구조를 얻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실패는 종결을 의미하잖아요. 실패사례 공유회에서 발표할 때 정부 육성 지원 사업이 끝난 날이라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지원이 끝난 날이 아니라 자립을 하는 첫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 말했던 것처럼 이제부터 기업문화를 만들 겁니다. 사람들과 만남의 시작은 지금이 진짜죠. 그래서 올해는 상품 판매를 많이 할 거에요”
그녀는 분명 ‘사회적기업 경영가’다. 경영학 지식이 많지도 않고, 아직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나 회계에 많이 낯설어 하지만 진심과 진정성을 담아 기업을 운영하고 상품을 파는 기업가다. 이것이 그녀가 특별히 가지고 있는 경영마인드다. 참새의 상실이 참새의상실의 출발점이었듯, 첫 프로젝트의 실패가 그녀를 성공하는 사회적기업가로 이끄는 또 다른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