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 화면 속
깨알 같은 스태프들의 이름이 나열된다. 상영관에 불이 환하게 커진다. 팟!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천천히 걸어 나온다.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고 또 누군가는 술술 실타래를 풀어내듯 이야기로 한편의 짧은 영화를 지어낸다.

사진 : 장혜진 필자

문득 현실의 문이 열리지 않을 때, 손잡이가 손아귀에서 헛돌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때면 나는 현실의 문 옆으로 비켜서 있는 또 다른 문의 손잡이를 돌려서 연다.

돌아서 가는 길처럼 손잡이가 빙그르르 돌아간다.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면 시간은 좀 지체되더라도 곧은 길을 빨리 걷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 그 길가에 계절이 내려앉고 또 피어나고 물드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걷노라면 숨 쉬는 일이 수월해진다.

구불거리는 길 어디쯤 박혀 영영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 작은 돌멩이가 툭 내 발길에 차여 가슴 설레는 여행을 시작할지도….

천천히 걷다 힘에 부치면 잠시 앉아보자.

서 있을 때 보지 못했던, 낮은 곳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것들과 눈이 마주친다.

내 키를 낮추면 보이는 것들. 이름조차 없는, 아니 이름을 알 수 없는 풀 포기, 앉아서도 허리를 구부려 대지와 맞닿을 만큼 고개를 숙여야 겨우 눈을 맞출 수 있는 작디작은 들꽃을 보노라면 숙연해진다

쉬어 간다고, 늦어진다고 안달하지 말자.

멈추지 않고 뛰어가느라 놓친 사소하고 또 사소한 것들이 주는 벅찬 위로를 우리는 받아야 한다.

위로와 따스한 토닥거림을…

길고 긴 생의 길가에 흩뿌려져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는 작으나 소중한 마주침을 위해 느리게 걷자.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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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천천히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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