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재형, 음악 그리고 ‘Avec Piano’
[인터뷰] 정재형, 음악 그리고 ‘Avec Piano’
  • 김예슬 기자
  • 승인 2019.06.19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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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 사진=안테나뮤직
정재형 / 사진=안테나뮤직

정재형의 음악 세계는 넓고도 깊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다양한 악기를 변주해 펼쳐내는 현대음악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풀어내는 그만의 감각은 탁월하다. 그런 정재형이, 과감함과 실험적인 면모를 더한 새 연주곡 앨범 ‘아베크 피아노’(Avec Piano)로 돌아왔다. 지난 2010년 발매한 피아노 연주곡 앨범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 이후 9년 만이다. 자연을 표현하며 양면적인 음악의 내면을 ‘공존’이라는 테마로 엮어낸 이번 앨범을 통해 정재형은 자신이 가진 음악적 세계의 확장을 꾀했다. 자신을 ‘대중음악가’라고 소개하는 정재형을 만나 이번 앨범이 지향하는 바와 이후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9년 만에 낸 앨범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앨범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궁금해요.
정재형:
새로 데뷔한 것 같아요. 행복감을 다시 만끽하고 있는데, 좋다 나쁘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온전히 9년이라는 시간을 새 앨범에 할애한 건 아니지만 항상 생각은 해오고 있었거든요. 연주곡 앨범 3부작 시리즈를 기획했었는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깐 굉장히 어려운 작업으로 느껴졌어요. 그러다 영화 음악과 뮤지컬 음악 작업을 하면서 점점 미뤄져서 방송 활동을 완전히 줄이고 작업을 해보자 싶었어요. 이를 위해 작년에 일본 가나쿠라로 3주 동안 작업 여행을 다녀왔죠. 애증의 앨범이에요. 만들어놓으니 지금까지는 제게 가장 뿌듯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Q. 작업 여행을 통해 느낀 바가 있었나요.
정재형:
제가 간 곳이 산꼭대기에 있던 숙소였는데, 아무 것도 없고 불빛조차 없었어요. 위치는 산꼭대기인데 앞은 다 바다였죠. 여기에 이틀은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곳이었는데, 이틀째가 되니 그 생각이 달라졌어요. 밤에 들리는 파도 소리, 그 곳의 물소리와 바람소리, 바람이 불 때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다양한 소리들에 동화되고 위안을 받았는데, 이번 앨범은 전부 거기서 나온 곡들이에요. 온전히 나로 지내던 시간에서 나온 음악들이에요. 제목도 다 자연과 관련돼요. 바람을 뜻하는 ‘미스트랄’(Mistral), 산을 뜻하는 ‘르 몽’(Le Mont)처럼 자연에서 얻은 영감들을 창작에 담아봤어요.

Q. 정재형이라는 사람은 출중한 음악인임과 동시에 방송인으로서도 많이 소구됐어요. 예능이 만든 이미지와 음악인과의 괴리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정재형:
아직 극복 못 했어요(웃음). 그냥, 방송인과 음악인 둘 다 저라고 생각해요. 음악과 동떨어진 프로그램은 하지도 않았고요. 음악이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이상적 부분들을 향해 나아가는 거라면, 방송은 그 음악들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9년 만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어요.
정재형:
9년 전 ‘서울 재즈 페스티벌’ 1회 때 ‘르 쁘띠 피아노’를 발매하고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럼에도 이번 공연은 정말 떨렸죠. 공연을 위해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인데,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위해서 한 달 반 이상 연습을 했어요. 관객 반응이 고마우면서도 떨렸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서도 ‘내가 계속 음악을 했어도 이런 반응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 참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정재형 / 사진=안테나뮤직
정재형 / 사진=안테나뮤직

Q. 일전에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했을 때 혼자 고뇌하는 모습이 나왔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여럿 나왔는데, 음악에 대한 영감은 혼자서만 갖는 시간에서 나오는 걸까요.
정재형:
영감도 영감이지만, 곡을 쓸 때에는 영감보다 물리적인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감을 받아 곡을 쓰는 시기는 이미 제게 지나버린 거나 다름없죠. 다만 저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물리적인 시간들을 많이 필요로 해요. 그런 시간은 고통스럽기도 하면서 행복하기도 하죠. 온전히 혼자 갖는 시간이 있어야 좋은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혼자서 상상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많이 필요해요.

Q. 지난 1995년 베이시스로 데뷔한 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그동안 파격적인 음악 실험들을 계속해오는 느낌인데, 이번 앨범은 대중성과 예술성, 음악성 세 갈래에서 어떻게 밸런스를 맞췄는지 궁금해요.
정재형:
저는 제가 굉장히 대중적이라 생각해요(웃음). 사실 유학을 결심했던 건 가요 분야에서 제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고 생각해서였어요. 그래서 영화 음악들로 필모그래피를 쌓고 단일 영화도 만들었죠. 재즈 음악 장르도 하면서 저답지 않은 밝은 톤의 음악을 해보는 계기도 얻었어요. 저는 아이돌 음악이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멜로디에 익숙한 저에겐 낯선 작법이지만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어요. 4분 짜리 음악에서 구성과 리듬, 패턴이 바뀌는 걸 자연스럽게 해주고 있어서 이번 앨범에서도 멜로디에서 그런 느낌을 내보려 했어요.

Q. 혹자는 정재형을 두고 ‘자유로운 음악인’이라고도 불러요. 음악적으로 혹은 인생적으로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있나요.
정재형: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 해요. 음악에 대한 책임도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거든요. 음악을 만들 때 남들처럼 쉽게 하지 못 하는 것도 제 음악과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에요.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자유로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악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연주 음악을 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고 제 자신을 위로하게 되더라고요. 자유를 위해 발버둥치고 고민도 많이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다만, 파리에서의 시간들은 제게 굉장히 처절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일과 공부의 연속이었거든요.

Q. 이번 앨범에서 전자 음악을 활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음악의 근간은 피아노 선율에 두고 있어요.
정재형:
피아노에 대한 애증과 애정이 함께 있어요. 악기를 다루려면 일정량의 연습을 늘, 매일 같이 해나가야 하거든요.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자신과의 싸움인 셈이에요. 저는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피아노를 단지 도구로 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피아니스트처럼 돼서 저도 모르게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있더라고요. 피아노를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이 어느새 많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정재형 '아베크 피아노' 커버 이미지 / 사진=안테나뮤직
정재형 '아베크 피아노' 커버 이미지 / 사진=안테나뮤직

Q. 그럼에도 이번 앨범에는 피아노 외의 악기의 활용이 도드라져요.
정재형:
정말 어려운 악기의 특성들을 한 곡에 녹여본 건 작곡가의 욕심이자 잘난 척과도 같았어요. 매 곡들마다 그 악기들만을 위한 곡들을 만들기도 했죠. ‘미스트랄’에는 바람과 첼로의 음색 뉘앙스를 담아보려 했고 ‘라메르’에는 바이올린의 화려하고 기계적이면서도 애잔한 슬픔이 나오는 걸 담아봤어요. 악기들과의 밸런스가 표현에 있어 어울리는지를 열심히 생각하며 만든 곡들입니다.

Q. 상업적인 음악보단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요.
정재형:
어우, 잘 팔렸으면 좋겠는걸요(웃음). 소신을 갖고 음악을 만드는 시기는 지났다고 봐요. 그리고 저는 대중음악가예요. 어떤 부분에서 더 깊이 파고들거나 하는 욕심이 있기도 했지만 대중성은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어요. 그걸 저는 책임감이라고 보거든요. ‘아베크 피아노’는 접근방식이 생소할 수는 있어도 그 느낌만 지나가면 소통할 수 있고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라 생각해요.

Q. 굉장한 경력을 가진 음악가임에도 무대가 늘 떨린다는 말을 했어요.
정재형:
제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그래서 공연 때 관객석을 다른 곳보다 더 어둡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이에요. 무대에 올라가는 건 그만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 책임감과 더불어 완벽한 무대에 대한 바람을 갖고 연습을 많이 해요. 무대에서는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모르는 환경에 노출이 되면 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고 훅 올라오게 돼요. 울컥하게 된다고 할까요.

Q. 접근방식이 생소한 앨범이라는 언급을 했는데, 대중이 더 편하게 정재형의 음악에 다가올 수 있게 할 방안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까요?
정재형:
인터뷰도 있겠고, 도슨트 같은 걸 마련하기도 했어요. 작업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죠. 안테나의 시스템이 참 체계적이더라고요(웃음). 이번 앨범이 안테나가 외형적인 확장을 이룬 뒤 처음으로 내는 거라 그런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느꼈어요. 이에 힘입어서, 생소할 수도 있는 제작기 작업 영상을 제작하는 등 그런 부분에 더 노력을 기울이려 해요.

정재형 / 사진=안테나뮤직
정재형 / 사진=안테나뮤직

Q.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로 유희열의 이름이 올라가 있어요.
정재형:
가장 큰 힘이 된 게 유희열 대표였어요. 음악에 관한 회의만 세 번 정도 했는데, 제가 힘들다고 하니까 계속 응원을 해주더라고요. 연작으로 앨범을 내보자는 중심을 잡아준 장본인이기도 해요. 고마워하는 인물 중 하나인데, 노래 앨범은 못 내게 하더라고요. 하하.

Q.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이번 앨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앨범을 내고 나서 어떤 소회가 들었나요?
정재형:
‘나도 이런 산을 넘어가야 하는 구나’였어요. 실내 악곡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같이 있었거든요. 이제는 또 다른 산을 다시 넘어보고 싶어요. 한 걸음씩 나아가서 연작으로 계획 중인 세 장의 앨범이 하나가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도전의식도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제는 좀 더 활발하게 여러 형태의 프로젝트에도 참여해볼까 하고 있어요. 이 앨범 때문에 다른 가수들에게는 곡을 주지 않는, 나름의 절제를 해왔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생각 중인 3부작을 완성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Q. 걸출한 선배 아티스트인 만큼 후배 양성에는 관심이 없는지 궁금해요.
정재형:
에이, 저도 아직 못 컸는걸요(웃음). 저는 그런 건 잘 못할 것 같아요. 제 회사를 만들 생각도 없어요. 저는 그냥 아티스트로 살고 싶어요. 후배들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해요.

Q. 이번 앨범엔 9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어요. 다음 앨범은 언제쯤 나오게 될까요?
정재형:
4년 안에는 꼭 내고 싶어요. 3부작의 마지막은 오케스트라 앨범인데, 오케스트라는 오히려 표현 방법이 다채로워서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의도한 바를 정확히 구현하는 게 아티스트라 생각하는데, 이게 곧 ‘나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 책임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연을 여러 형태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이제는 음악으로 자극을 받는 경우는 많이 없어져서, 자연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거든요. 들어주는 분들이 제 음악을 통해 똑같은 일상이 다르게 느껴지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음악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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