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며칠 전 막을 내린 U20 월드컵 경기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게 고배를 마시긴 했으나 한국은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필자 또한 열렬한 스포츠팬이기에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응원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한적한 밤에 산책하는 도중 여기저기 아파트에서 들리는 함성과 탄식을 들으면서 문득 스포츠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 대항전이 있을 때마다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것이 스포츠의 목적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필자는 스포츠의 핵심은 공정성(fairness)에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종목이 있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최상의 가치가 바로 공정성이다. 만약 이것을 훼손시키면서 승리를 쟁취한 선수가 있다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전설적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의 경우다. 암스트롱은 초인적인 투병 과정을 통해 고환암을 극복하였으며, 가장 권위 있는 투르 드 프랑스 대회를 7연패(1999~2005년)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선수다. 그런데 나중에 도핑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우승 기록은 모두 삭제되었고 사이클 계에서 영구적으로 퇴출되었다. 필자도 오래전 그의 암 투병기를 다룬 책 '그대 향해 달려가리라'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행적에 지극히 실망했었다. 암스트롱은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크게 훼손시켰던 것이다. 

필자는 젊어서 권투 중계를 즐겨 감상했으며, 지금도 빅매치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혹자는 권투와 같이 격렬하고 피 흘리는 운동을 좋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돈을 위해 서로 치고받는 모습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 또한 반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권투와 같은 운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매우 공정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우선 체급별로 나누어져 있어 비슷한 체중과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들 간에 경기가 이루어지며, 일단 링 위에 오르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그렇기에 약물 복용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권투 경기에서도 대단히 큰 반칙이다. 경기 후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 벨트를 박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골프 또한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운동이다. 골프에서 가장 큰 반칙은 공이 놓인 상태를 인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 경우 라이(lie) 개선이라고 해서 2벌타가 부과된다. 한타 한타가 우승과 직결되는 골프에서 2벌타는 매우 큰 징벌에 해당된다. 그만큼 공정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칙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한국에서는 적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라이 개선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굳이 이 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공정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공정성은 무엇인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굳이 권투나 골프와 같은 스포츠를 인용하면서까지 공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공정성이 무너진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어떤 결과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면에서 불공정한 뭔가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취업이나 승진의 경우 공정성이 훼손되면 그 조직은 발전하기 어렵다. 만약 이런 풍토가 곳곳에 만연하게 되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결국 사회는 정체내지는 퇴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공정성은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효율성을 강조하느라 공정성을 훼손한다면 이는 정말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을 구상하는 정부나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효율성과 공정성의 적절한 조화를 구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방치한 채 지엽적인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한국사회 곳곳에는 이런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만연해 있다. 등속도로 운동하면 모두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누구나 다 유사한 상황에 있으니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전반에 불공정한 관행이 깊이 침투해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공정성은 정의(justice)의 핵심 요소다. 어떤 면에서는 공정성이 곧 정의라고해도 무방하다. 몇 년 전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몰고 왔던 하버드대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상세히 다루었듯이 정의란 매우 복합적인 개념으로서 간단히 정의(定義)하기 어렵다. 공정성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공정성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도덕 원칙에 입각해 현재의 사회 상황에 적합한 공정성 개념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정보기술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향후 더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그리고 동시에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공정성은 무엇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명한 정부라면 벌써 이런 작업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사회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별 의사를 밝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결과를 공표할 것을 촉구한다. 만약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한국사회는 공정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비율이 극단적으로 높아 90퍼센트에 달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불공정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이 가능하겠는가? 

한국사회에서 공정성 회복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확인된다면, 필자는 이를 실천하는 방안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히 불공정한 관행들부터 척결하는 작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예컨대 미투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형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특히 지위를 이용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상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은 가장 저질의 인격모독 행위이므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에서 종종 다루었던 이른바 가진 자의 갑질에 대해서도 법을 개정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부당한 방법으로 모독하는 것은 단지 개인들 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의 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불공정 관행부터 우선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노력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공정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회복하려면 우선 현재 한국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후, 가장 불공정한 관행들부터 제거하는 작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만약 이에 저항하는 개인이나 세력이 있다면, 이는 감추어져 있던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공공의 적으로 간주해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의 적이 되기를 꺼려하는 인간의 속성에 비추어 불공정한 관행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대한 저항이 의외로 미약할 수 있다. 따라서 척결해야 할 불공정한 관행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집계하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민간단체들 가운데 누군가 한번 시도해 봄 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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