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사옥. 사진. 구혜정 기자

LG그룹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

장자(莊子)를 보면 중국의 4대 미인 서시(西施)가 등장한다. 어느 마을에 시(施)씨 성을 가진 미모의 여인이 살고 있었다. 집이 마을 서쪽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시(西施)라고 불렀다. 서시의 서(西)는 서쪽을 말하고, 성이 시(施)씨로, 서쪽에 사는 시씨다. 마을 동쪽 언덕에는 역시 시(施)씨 성을 가진 엄청나게 못생긴 추녀(醜女)가 살았는데 동쪽에 사는 시씨여서 동시(東施)라고 불렀다. 동시는 예쁜 옷을 사 입고, 서시의 행동과 자태를 흉내 내어 이쁘게 보이려고 했다. 심지어 똑같이 했다. 어느 날 선천적 가슴통증이 있던 서시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미인으로 인정받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자신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맛살을 찌푸리며 돌아 다녔다.

동시효빈(東施效顰), 줏대 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분위기에 휩쓸리고 무작정 따라하는 맹목적인 행동을 비꼬는 의미다. 지금도 변화나 상황을 이해못하고 따라하기만 하는 어리석음은 모든 일을 망친다. 그 대척점에는 더한 어리석음이 있다. 귀를 가리고 방울을 훔친다는 '엄이도령(掩耳盜鈴)이다. 자기에게만 들리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하는 줄 아는 무지함까지 더했다. 길을 잃어 헤매면서도 길을 묻지 않는다는 '미자불문로(迷者不問路)',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이지측해(以指測海)', 콩과 보리조차 구별할 줄 모른다는 '불능변숙맥(不能辨菽麥)', 뱃전에 칼 자국을 새긴 뒤에 표시한 곳에서 칼을 찾는다는 '각주구검(刻舟求劍)' 등 그 표현도 숱하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신세로 내몰리고 있다. 줄 서기를 강요당하는 모양새다. 지난 5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미 동맹을 거론하며 “반(反)화웨이 기조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업계에서는 해리스 대사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발언을 인용해 LG 유플러스 등 국내 기업에 화웨이와의 협력 중단을 에둘러 촉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경쟁기업들은 발을 빼는데...LG그룹은

그 시점에 중국 정부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불러 ‘반(反)화웨이’에 협조하지 말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4~5일 삼성전자 등에 “미국 정부에 협조할 땐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뉴욕타임스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부도 “내코가 석자”라서인지 손놓고 있어 기업은 고민이 깊어 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글로벌밸류체인(GVC) 측면에서도 미·중 무역분쟁의 직격탄을 맞는 국가다. 세계적 경제정보업체 홍콩 CEIC 등에 따르면 국제 분업을 통해 생산된 제품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GVC 참여율’이 약 65%다. 국제분업 체계가 끊긴다면 수출의 약 65%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크레디스위스은행에 따르면 특히 IT 글로벌 기업의 탈(脫)중국 움직임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적지 않은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동참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선전 통신장비 공장을 폐쇄한 데 이어 최근엔 톈진(天津) 경제개발구 내에 있는 가전 생산라인도 철수 절차를 밟고 있다. 동시효빈은 아니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이 대목에서 LG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편을 들려는 건 아니다. LG 유플러스는 신설 LTE 기지국에도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며 장비회사의 변경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화웨이의 LTE 기지국 송수신 장치와 중계 장치는 국립전파연구원 방송통신기자재 적합성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 LG가 LTE와 5G 간 연동과 관계없이 화웨이를 배제할 수 있었지만 비용과 기술력 측면 이점을 우선시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LG 유플러스측은 "화웨이가 한국에서 수입하는 금액이 수출액보다 10배 이상 많고 우리나라 무역의존도도 미국보다 중국이 높아 화웨이 배제 등을 섣불리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IT업종은 아니지만 LG화학은 한술 더떠 중국에 진출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공략을 위해 `로컬 브랜드 1위` 지리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중국 공략이 필요한 LG화학과 높은 품질의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필요한 지리자동차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LG화학 측은 차별화된 독자 기술력을 유지하면서도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한 지리자동차와의 합작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경제논리로만?

사실 요즘 LG그룹 형편에 대해 업계에서는 ‘쉽진 않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은 화웨이등 중국기업들에 밀리면서 글로벌시장은 물론 국내에서도 존재감을 잃었다. 전통적으로 강한 가전도 좋지만 않다. LG유플러스가 5G 장비회사를 화웨이로 정했을때도 말들이 많았지만 LG화학의 중국 진출 이유처럼 경제논리로 일축했다. 기업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미자불문로(迷者不問路)'가 아니라면 말이다.

과문한 탓에 정확히 알수 없으나 경제논리로 따진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을 무시하면 안된다. 삐끗하면 반도체 등에서 큰 타격을 받는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 중 한곳이다. 화웨이의 손발이 묶이면 스마트폰,통신장비 등의 시장에서 이익을 보는 측면도 있지만 반도체에서 받는 악영향이 더 크다. SK하이닉스는 매출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절반에 가깝다. 게다가 양사는 중국에서 반도체 반독점 조사까지 받고 있다.

갈택이어/언불획득/이명년무어(竭澤而漁/焉不獲得/而明年無魚)라고 했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를 잡으면 이듬해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되듯이 급하다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해 먼 앞날은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화를 초래한다. 지금이 기업들에게는 중요하고 다급한 시기임은 틀림없다. 저마다 치열하고 치밀한 분석 끝에 내린 거취나 행보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건방진 얘기일지 모르나 LG그룹의 최근 행보가 유난히 신경쓰이는 게 나만의 기우(杞憂)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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