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현철 / 사진=Fe엔터테인먼트

익숙하되, 뻔하지 않다. 오히려 익숙함이 세월을 입고 새로운 감성으로 다가온다. 김현철이 가장 잘 하던 음악이 ‘한국형 시티 팝’이라는 옷을 입고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기념비적인 10집을 발매한 가수 김현철은 시티 팝이라는 장르가 아닌 자신이 해오던 음악에 대한 뚝심을 드러냈다. 데뷔 30주년을 맞아 10집을 대중에 선보인 김현철은 프리뷰 앨범으로 여전히 건재한 음악 천재임을 증명해냈다. 김현철에게 그리고 김현철의 음악을 기다려 온 대중에게 이번 그의 10집이 갖는 의미는, 몇 년의 공백 정도는 거뜬히 뛰어넘을 정도로 남다르다. “과거에 한 것도, 미래에 할 것도 결국은 음악”이라고 말하는 김현철을 만나 30주년과 10집 앨범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Q. 오랜만에 낸 앨범인 만큼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김현철:
꾸준히 작업한 건 아니었어요. 9집을 낸 뒤 키즈 팝 앨범까지 내니까 음악이 갑자기 재미없어졌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요. 악기도 다 처분하고 컴퓨터까지 팔고 9년 정도를 음악과 멀어진 채 지내다 이번 앨범을 내게 된 거예요. 9집까지 냈던 만큼 항상 머릿속엔 10집 앨범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9집까지만 내면 내가 아쉬워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업을 오래 쉬었지만 언젠가는 꼭 해야겠다 싶었죠.

Q. 작업 기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김현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예요. 알고 지내던 기자가 전화를 걸더니 ‘씨티팝’이라는 걸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그 용어를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제가 하던 장르의 음악을 요즘 친구들이 ‘시티 팝’이라고 칭한대요. 그러다 일본에 가 있는 후배가 일본에서도 제 노래가 조명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서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러다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 프로젝트를 알고, 가수 죠지가 제 노래인 ‘오랜만에’를 편곡한 걸 듣게 돼 공연도 함께 하게 됐죠. 그러면서 이번 앨범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어요.

Q. 시티 팝 장르의 무겁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요즘 날씨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김현철:
누가 말하기를, 시티 팝은 ‘여름의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가을에 앨범을 내면 내년 여름을 겨냥해야 하는 건데, 그건 너무 늦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 여름에 다섯 곡 정도를 선 공개하는 방식으로 프리뷰 음반을 발표하게 됐죠.

Q. 이번 앨범 중 직접 가창한 곡은 1곡뿐이고, 나머지는 후배 가수들이 불렀어요.
김현철:
저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에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고 싶었죠. 이번에 앨범을 만들며 보니까 노래를 잘 하는 후배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꼭 제가 노래를 불러야만 제 노래인 건 아니라고요. 그래서 가수로서가 아닌, 프로듀서라는 위치에서 이번 앨범을 작업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계속 음악을 할 것 같아요.

Q. 죠지, 쏠, 마마무, 옥상달빛 등 후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김현철: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들과 함께 하니까 정말 좋았어요. 역시나 앨범 결과물이 좋더라고요. 어유, 요즘 친구들은 정말 참 잘해요(웃음).

김현철 미니앨범 '10th - preview' 커버 이미지 / 사진=Fe엔터테인먼트

Q. 올해가 데뷔 30주년이에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김현철:
그렇지만은 않아요. 데뷔하고 나서 30년이 지나면 30주년인 거죠(웃음). 저는 30주년인 거에 별 생각이 없어요. 다만 이번 앨범이 10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죠. 누구나 다 10집까지는 내길 바라니까. 10장의 앨범을 내서 한 캐비닛 안에 넣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그 캐비닛의 10장이, 이번 앨범으로서 완성된 거예요.

Q. 아껴놓은 곡이 많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앨범에 대한 계획들은 없나요.
김현철:
이제는 그런 욕심은 없어져서요. 10집은 제 욕심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욕심을 채웠으니까, 다음 앨범부터는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겠죠.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랄까요? 요즘에 느끼는 감정은, 제가 1집을 낸 것 같아요. 1집을 작업할 땐 음악을 하는 것 자체에 감사했다면 2집부터는 생각이 많아지고 노림수가 들어갔어요. 음악 자체가 변질되는 거죠.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1집의 마음으로, 음악만 생각했어요. 그냥 음악 하는 것 자체가 좋았거든요.

Q. 잘 만든 음악은 세대를 관통하는 힘이 있다고 느낀 게, 실제로 요즘 음악 팬들은 적극적으로 과거 김현철의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들을 찾아 듣고 있어요.
김현철:
저는 음악계 동향을 잘 몰랐는데, 앨범을 준비하면서 옛날 음악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서 제 앨범이 100대 명반에 실렸다는 것도 들었고요. 제가 생각하는 1집보다 대중적으로 1집 앨범이 더 큰 의미를 갖고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때의 제가 순수하게 음악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가을에 내는 10집 정규 앨범은 이번 프리뷰 앨범과 어떻게 다를까요.
김현철:
프리뷰 앨범을 포함해서 나오는 앨범이에요. 이번에 후배들과 작업한 곡이 많았다면 정규 앨범에는 선배, 동료들과 작업한 곡도 많아요. 최백호 형님이 직접 노래도 불러주셨고, 박정현과 백지영 등 동료들도 함께 해줬죠.

Q. 음악 동료 중 하나인 윤종신도 이번에 ‘춘천 가는 기차’를 편곡해 태연과 함께 작업했더라고요. 과거의 곡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재조명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김현철:
‘오랜만에’를 리메이크 했던 죠지가 ‘달의 몰락’도 리메이크한다고 들었어요. 제 노래가 다시 불려지는 이런 시기에 앨범을 내게 돼 잘됐다 싶었죠. 30주년이라는 건 한 세대가 넘어가는 기간이잖아요. 패션도 돌아오고, 노래도 돌아오는 거죠. 저는 그게 나선형 구조와 같은 거라고 봐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항상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옆에서 보면 올라가는 모습이, 현재의 유행이 흘러가는 흐름이라 생각해요.

가수 김현철 / 사진=Fe엔터테인먼트

Q. 30년이 지났음에도 과거의 곡이 회자되고 있는 만큼 일종의 책임감도 느껴질 것 같아요. 한 번 만든 곡이 시대를 걸쳐 소비되고 있으니까요.
김현철:
그런 건 조금 느꼈어요. 음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제 음악을 많이 카피하고 연주하며 듣고 공부를 한 대요. 다른 교수님들도 가르침에 있어 제 곡을 참고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음악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하고, 또 다시 생각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죠. 곡 쓸 때도 마찬가지고요.

Q. 여러 생각을 거쳐 나온 이번 앨범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현철:
레트로 사운드를 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 사운드 자체가 노력하지 않아도 레트로 하더라고요(웃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그걸 보고 평가하는 분들이 레트로라고 해요. 저는 고마울 뿐이죠, 하하.

Q. 1집 앨범은 지금 들어도 세련됐어요. 이번 신곡 역시 그와 결이 비슷하고요.
김현철:
뭐든 노림수가 없어야 해요. 머릿속에서 뭔가를 짜내서 하려고 하면 음악에 가식으로 치장이 되는 거예요. 1집도, 이번 앨범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비슷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의 순수함은 회복되지 않아요. 회복하려고 할 뿐이죠. 하지만 그때의 음악을 하던 저의 순수함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봐요. 1집을 만들 때에는, 정말 재밌었거든요. 지금도 다 기억이 날 정도예요.

Q. 김현철에게, 음악이란 어떤 의미를 갖나요?
김현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커져요. 옛날에는 음악이 제 삶 중에 일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제 삶의 반을 넘었어요. 제가 음악을 해왔던 세월들이 그걸 증명하는 것 같아요. 50년 중 30년을 음악만 한 거니까요. 반드시 현재의 음악만이 음악은 아닌 거잖아요? 과거에 제가 한 것도, 미래에 제가 할 것도 다 음악이에요. 50%는 이미 넘어버린 거죠.

Q. 올 가을에 정규 10집을 발매한 뒤의 활동 계획이 궁금해요.
김현철:
편하게 활동하려 해요. 콘서트도 준비할 거고요. 이번에 공연을 다니다 보니 정말 좋았거든요. 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방송에서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공연장에서는 모두가 저를 쳐다봐요. 그건 사람으로서 책임감도 들지만, 정말 기분 좋은 일이예요. 그것 외에는 유튜브 개설을 올해 안에 할 계획이고요.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잘 되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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