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왼)과 안판석 감독. 사진. 구혜정 기자

황금종려상 수상에 성공한 영화 '기생충'은 비단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영화의 작품성 뿐만 아니라 여전히 척박한 국내 콘텐츠 업계 노동자들의 권리와 관련해서도 크나큰 울림을 주는 사례로 남았다.

그동안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은 어쩔 수 없는 관례처럼 남아있었고 실제 근로기준법 상에서도 방송업은 특례업종으로 지정되어 법적 근무시간에서 제외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해 7월부터 방송업이 특례업종으로 제외되었고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부터는 주52시간(300인 이상 사업장)을 준수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1년여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사실상 뽀죡한 대책이 강구되지 않은 가운데 스태프와 방송·제작사 간 갈등만 커졌던 측면도 있다. 최근에도 수 편의 드라마들이 지속적으로 스태프의 노동착취와 관련된 지적을 받아왔고, 그 때마다 방송·제작사에서는 "주의하겠다"라는 입장이었지만 이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한국 콘텐츠 시장의 비약적인 발전의 이면에는 오랜시간 관례처럼 굳어진 스태프들의 노동 착취가 있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일종의 예술을 위한 당연한 희생처럼 받아들여진 것도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스태프들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주72시간의 근무가 지켜졌던 현장이라는 사실이 우리 콘텐츠 업계에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봉준호 감독 역시 6년 전인 지난 2013년만 해도 한 인터뷰에서 영화 '설국열차'로 인해 경험하게 된 할리우드 시스템을 논하며 "배우조합의 선진적인 룰은 좋았지만 평소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다 같이 죽이는 숏 하나를 향해 집단 광란의 분위기로 달려가는 맛이 있는데 뭔가 계약과 룰이 앞선다는 느낌이 드니까 어쩐지 좀 아쉬운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하튼 엄격한 노동시간 등 선진국의 룰을 먼저 접했고 이를 받아들인 봉 감독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선보인 '기생충'을 통해 이 제도를 우리 영화에도 안착시켰고, 그 결과는 황금종려상으로 나타나 스태프의 노동착취가 꼭 작품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셈이다.

영화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이를 증명했다면, 드라마에서는 안판석 감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재 MBC에서 방영 중인 수목드라마 '봄밤'의 연출자 안판석 감독은 평소 스태프들의 권리에 대해 앞장서 말해 온 인물이다. 이미 지난 작품들에서도 스태프의 권리를 먼저 챙겨왔던 그는 JTBC '밥 잘 사주는 누나'에 이어 '봄밤'에서 역시 노동시간 준수를 지켜오고 있다.

'봄밤'의 제작사 JS픽쳐스 김현정 이사는 5일 미디어SR에 "사업자로 계약할 수밖에 없는 일부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스태프들 대부분과도 개별적으로 계약을 했고, 근로시간도 지켜지고 있는 현장"이라며 "밤 신을 찍어야 할 때는 시작 시간 자체를 오후 늦게 하는 식으로 근로시간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기생충'처럼 '봄밤'을 비롯해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들이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두루 호평을 받아오고 있다는 점은 스태프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된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현장에서의 스태프 노동권에 대한 문제는 사실 현장의 리더인 감독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라며 최근 장시간 노동으로 스태프를 혹사시켰다는 지적을 받은 드라마의 경우에도 "다른 이유보다는 그 감독의 성향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영화의 경우, 프리프로덕션의 과정이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기는 하지만 스스로 콘티를 꼼꼼하게 그린다는 봉준호 감독은 배우 동선까지도 미리 정한 상태에서 촬영에 임하기에 촬영 시간 자체가 다른 현장보다 적다. '봄밤' 역시 안판석 감독이 리허설이나 불필요한 촬영을 최대한 지양한다.

결국은 관행적으로 '찍고 보자'는 작업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스태프 처우 문제와도 직결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런 작업방식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곧 감독의 역량과도 연결된다. 김현정 이사는 "결국 현장의 분위기는 리더를 따라 가게 되어 있다"라는 말로, 현장의 분위기를 대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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