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스틸컷

고백컨데,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고 그리곤 곧장 대학원에 진학키로 마음먹었다. 그 한 편의 영화가 바로 칸느영화제(1988)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빌 어거스트 감독의 ‘정복자 펠레’였다. (물론 축구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스웨덴 노동자 라세와 그의 아들 펠레가 겪는 세상의 풍파와 역경을 담고 있다. 열심히 일해 재혼도 하고 일요일이면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갖고 있는 자상한 아버지와 아직은 철이 덜 들었지만, 여러모로 아버지 보다 똑똑했던 아들, 펠레. 두 부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수작이었고 영화의 진면목 같은 것을 나에게 보여준 첫 번째 영화였다. 당시 한국영화는 여전히 ‘방화’로 천대 시 되었고 헐리우드 영화는 순간의 재미를 주었을지언정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영화는 흔치 않았다. 

결국, 영화과 대학원에 합격하고 아버지께 뜻을 말씀드렸더니 선친께서는 뒤늦게 무슨 영어공부냐며(영화를 영어로 잘못 들으신 듯) 한 마디 하시고는 쾌히 허락해주셨다. (물론 뒤늦게 말씀드렸지만) 그리고 이후 나에게 칸느의 황금종려상은 마치 [이상 문학상]을 받은 문학작품을 단 한 번도 빼 먹지 않고 탐독한 것처럼 일종의 종교적 순례지이자 영화학도로서 의무적인 관람 대상이 되었다.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 ‘바톤핑크’ ‘패왕별희’ ‘펄프픽션’에 이어 최근에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9/11’, 켄 로치의 ’나, 다니엘브레이크‘ 그리고 작년에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까지...(그밖의 주옥같은 영화들!) 그야말로 내 마음속의 별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리고 마침내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칸느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장르적인 작품보다는 보다 원초적이고 실험적이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성 있는 영화를 선호해 온 것이 사실이다. 요즘의 경향성은 조금 바뀌긴 했지만, 이런 정신은 거대자본을 투입하고 걸맞은 수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영화판에선 지켜내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국내 관객은 헐리우드 영화조차도 복잡한 생각과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라면 냉담한다. (최근 헐리우드 수상작들의 한국영화 흥행성적은 형편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영화는 모름지기 ‘극한직업’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극한직업’을 폄하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이 ‘극한직업’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은 있다.

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뚜껑을 열고 관객의 심판을 받고 있다. 칸느 덕분에 흥행은 호조라고 한다. 벌써 나의 SNS에는 호불호가 나뉜다. 열띤 논쟁도 가열차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온갖 퍼즐을 맞춰 보느라 정신이 없다. 영화평도 넘쳐난다. 여기에 나 같은 필부까지 끼어들고 싶지도 않고 능력도 안 되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긴 여운을 남기며 괜히 술 한잔이 그리워지는 영화가 ‘기생충’을 계기로 한국영화에서 앞으로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생충’이 기생충이 아니고 한국영화의 숙주가 되길 희망해 본다. 물론 필자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영화 ‘기생충’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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