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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최고영예상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최초의 한국 감독. 한국영화 탄생 100년이 된 2019년 한국영화가 누리게 된 영예이기도 하다.

봉준호가 영화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부터였다. 황당하리만치 만화적 표현기법을 사용한 이 독특한 영화는 봉준호 식 블랙코미디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때 봉준호 나이 31세.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이 작품으로 충무로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게 된 신예 감독이 됐다.

스타 반열에 오른 계기는 연극 '날 보러와요'에서 출발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었다. 흥행면에서도 작품성 면에서도 두루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 이후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계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 블록버스터 괴수 영화, (그러면서도 봉준호스러웠던) '괴물'을 선보여 충무로에 새로운 DNA를 심어주기도 했다.

일찍부터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한국 영화감독들이 여럿 있었으나, 해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 영화감독은 그 즈음 이미 봉준호였다. 쿠엔틴 타란티노, 기에르모 델 토로, 브래드 피트, 호소다 마모루 등 세계 영화인들이 모두 손꼽는 봉준호 감독은 2013년 제작비 400억원의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돌아왔다.

또 2017년에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만든 '옥자'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옥자'가 과연 영화의 범주에 들어서는지 여부를 두고 열띤 논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봉준호 감독은 꽤 오랜만에 선보인 온전한(?) 한국영화 '기생충'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황금종려상이라는 한국 영화 역사상 기록에 남을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송강호 : 봉준호의 영화적 동지이자, 송강호에게는 밥 제 때 잘 주는 감독. 2002년 '살인의 추억'으로 처음 같이 작업한 두 사람은 이후 '괴물',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까지 네 번의 작업을 함께 해왔고, 이 네 번의 작업이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둬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궁합이 좋은 조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이들 감독과 배우는 여러차례의 공동작업에서 좋은 시너지를 낸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송강호는 송강호 스럽게, 봉준호는 봉준호 스럽게 한 편의 영화에서 스며들 듯 하나가 되는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김혜자, 원빈, 크리스 에반스 등 배우들의 기존 표정들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길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봉준호이지만, 송강호와의 작업에서는 새로운 송강호의 발견보다는 지극히 송강호스러우면서도 봉준호스러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내는 변주가 가능해진다. 마치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두 거장의 협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송강호는 "봉준호와 동시대를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하고, 봉준호는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송강호에 예우를 다하는 세리머니를 보여주기도 했다. 인간적으로도 끈끈한 인연을 지닌 두 사람이 함께 이뤄낸 황금종려상 영예 이후의 발자국들에 기대 어린 시선들이 쏟아지는 타이밍이다.

그런가하면 송강호는 또 '기생충' 현장에서 경험한 주52시간제의 철저한 엄수를 칸 현장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설국열차'와 '옥자' 등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봉준호 감독은 칼 같이 시간과 규정을 맞춰야 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이미 적응이 된 상태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생충'에서 역시 스태프들의 주52시간제를 엄수하고 식사 시간 역시 제대로 지킬 수 있었던 것.

방송 현장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은 영화 현장이지만 여전히 스태프의 장시간 업무와 도급 계약이 관례처럼 여겨지고 있는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기생충'은 좋은 족적을 남기게 된 셈이다.

김혜자 : 봉준호 영화 '마더'의 시작점. 그리고 봉준호를 천재라 부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배우.

김혜자의 새로운 얼굴을 비춰낸 영화 '마더'는 애초에 봉준호가 바라본 김혜자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시절 김혜자가 살던 단독주택 인근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그는 슬리퍼 차림에 동네 마실을 가는 듯한 김혜자가 그대로 촬영장에 가 촬영을 마치고 다시 집에 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충격적인 경지'를 느꼈다는 그는 이후 김혜자와 작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했고, 결국 2004년 처음 인사를 하며 본격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마더'의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김혜자는 "아련하다"라고 반응했고, 처절하고 불쌍한 죽어있는 삶을 사는 한 여인이 봉준호의 두뇌와 김혜자의 얼굴로 살아났다. 

그리고 봉준호는 김혜자의 히스테리, 불안, 미묘한 감정을 잘 살려낼 수 있다는 판단으로 '마더'를 기점으로 홍경표 촬영감독과 작업을 시작했다. '기생충' 역시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작업했고, '기생충'에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배우들의 표정을 심혈을 기울인 클로즈업으로 잡아 영화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하비 웨인스타인 :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이자 세계적 미투 캠페인을 촉발한 인물. 애슐리 주드,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굵직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연이어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희롱에 대해 입을 열면서 추락의 길을 걷게 된 웨인스타인은 '설국열차'를 통해 봉준호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웨인스타인이 대표로 있었던 더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바로 '설국열차'의 영어권 국가 배급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위질로 악명이 높은 그는 '설국열차'에 대해서도 20분 분량을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를 끝내 거부한 봉준호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유일하게 웨인스타인의 가위질에서 살아남은 감독이 됐다. 다만, '설국열차'는 R등급으로 북미에서 제한 개봉해야 했고, 영국에서는 개봉조차 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영국에서는) 개봉을 못했다. 막연한 추측은 저와 웨인스타인의 대립구도에서 디렉터스 컷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에서 보내는 웨인스타인의 대답이 아닐까 정도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둘의 인연은 그리 개운하게 마무리 되지는 않은 셈이다.

크리스 에반스 : 할리우드 배우.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봉대병에 걸린 사람. 마블 시리즈의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 감독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그는 '설국열차' 오디션을 위해 사비를 들여 보스턴에서 LA로 향했다.

봉준호는 "캡틴 아메리카가 온다니! 안 믿겼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설국열차 꼬리칸 반란의 주동자, 커티스 역으로 낙점된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되고, 이후에도 그의 봉 찬양은 계속 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봉준호는 집을 지을 때 못을 한 포대 달라고 하는 이가 아니라 '못이 53개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급이 다른 천재다.

국내에서도 봉테일(봉준호+디테일)로 불리우는 봉준호. 실제 그의 작업 방식은 그가 직접 그리는 콘티를 바탕으로 애초에 편집까지 염두에 두고 촬영에 임해 불필요한 장면을 찍지 않는다. 이 같은 방식이기에 스태프들이 과도한 노동시간에 혹사당하지 않고 식사도 제 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하튼 봉준호 찬양에 여념이 있는 크리스 에반스는 한 인터뷰에서 "다른 배우들은 봉준호 감독을 모르길 바랐다"라며 자신만 독점하고 싶은 수줍은(?)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보답받듯, '설국열차'는 크리스 에반스에게 캡틴 아메리카로의 굳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배우로서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블랙리스트 :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

봉준호는 2017년 '옥자'의 칸 진출 당시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시간은 한국 예술가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게 한 악몽같은 몇 년"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의 회복되어야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도 말한 봉준호. 당시 외신 역시 '"새 정권이 들어서며 봉준호는 블랙리스트에서 블록버스터로 변화를 맞이했다"며 정치권 상황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한국 문화 예술인들의 상황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칸의 선택을 받은 2019년에도 외신은 과거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감독이라는 이력에 주목하기도 했다.

시대의 아픔이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외면 당했던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에 주목하는 '기생충'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점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미경 : CJ 부회장. 널리 알려진대로 박근혜 정부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한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어야 했던 이미경은 CJ가 투자 배급한 봉준호의 '기생충'이 칸에서 빵빠레를 울리면서 화려한 복귀를 알리게 됐다.

제작사는 매번 바꾸는 봉준호이지만, CJ와의 인연은 꽤 깊다. '살인의 추억'부터 '마더', '설국열차'까지 다수의 봉준호 작품의 투자배급을 CJ가 맡아왔다. 이미경 본인이 '괴물'과 '마더', 그리고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경영에서 물러났다 공식 활동을 자제해왔으나, 올해 칸 영화제에는 10년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던터라 '기생충'의 수상이 그에게도 감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생충'의 주축이 된 봉준호, 송강호, 그리고 이미경까지 모두 지난 정권에서 박해받았고, 이후 이들의 일종의 의기투합으로 볼 수 있는 '기생충'이 영화로서는 가장 높은 영예를 차지하게 된 상황,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 편 CJ E&M의 수장 이미경으로서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과 함께 주목받은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가 여전히 방송계에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CJ 방영 드라마에서 자주 이와 관련된 잡음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 화려하게 복귀한 이미경 부회장의 CJ 콘텐츠 사업이 앞으로도 순항할 수 있을지 여부 역시 여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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