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 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회동도, 실무진들 간의 협상도 모두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이 끝장을 보자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자칭 거래의 달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온 전략을 구사하면서 중국을 길들이려 하지만 중국도 가진 패가 많아서인지 쉽게 양보할 태세가 아니다. 물론 양쪽 모두 파국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 공멸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두 권력자의 성정(性情)에 비추어 볼 때 안심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두 사람 모두 자국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면 무모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는 두 나라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두에게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두 강대국 지도자의 의식(意識)이 아직도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담한 기분이다. 

무역전쟁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기에 여기서 필자가 대동소이한 내용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표면적으로는 무역전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패권전쟁이며,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길 없다는 등등의 논의 말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이 시점에서 우리 처지를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보호주의를 천명한 이후 관세 부과와 이에 대한 보복 관세로 인한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미 역사가 입증한다. 1930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절 시행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인해 1929년에 시작된 경기침체가 대공황으로 악화되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그리고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경상적자를 줄이기 위해 수입 철강에 관세를 부과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며,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도 유사한 관세정책을 실시했지만 오히려 달러 가치 폭락이라는 부작용만 남겼을 뿐이다.

이와 같이 과거 미국이 주도했던 보호무역정책은 모두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이다. 선택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는 것을 정책 기조로 하는 공화당이 이와 같은 무리수를 두었던 것은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하게 관세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런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여러 동영상을 통해 관세 부과에 반대하는 미국 각계각층의 합리적인 반론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필자는 이런 동영상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관세 부과에 따른 득실을 조목조목 따지면 무역적자를 줄이는데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라는 상당히 열린사회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이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미국인들은, 트럼프 정책에 대한 입장과는 별개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묵시적으로 합의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미국인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붕괴하지 않은 것이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달러가 가장 믿을 만한 안전자산이기에 미국으로 자본이 몰린 것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기축통화로서 위안화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중국 나름대로 그래도 될 정도로 충분히 경제력이 강해졌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방정책을 추진한 것이 1978년이니 이제 막 40년이 지났다. 그간 중국이 이룬 경제발전은 세계사에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다. 과거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몇몇 나라들이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도 대단한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중국의 경제발전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중국의 인구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2018년 기준 전 세계 GDP는 84.7조 달러이며, 이 가운데 미국 GDP는 20.5조 달러, 중국 GDP는 13.4조 달러로 추정되었다. 두 나라의 GDP가 대략 전 세계 GDP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들 간의 분쟁이 미치는 파급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질적인 경제력을 나타내는 ‘구매력으로 평가한 GDP’라는 측면에서는 이미 2014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이니 중국이 자만심에 빠져 미국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가리자는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뜻밖에 큰돈을 벌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졸부의 모습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미국은 과거 여러 차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기를 경험했으나 그때마나 강경책으로 다른 국가들을 압박해 위기를 모면했다. 예컨대 1985년 플라자 합의가 그런 사례이다. 당시 욱일승천하던 일본은 이후 급격한 엔화 절상으로 인해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진 후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던 것은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다. 미국은 내심 중국의 경우에도 과거와 같은 정책이 먹힐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을 만만하게 본 것이다. 과거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농락했던 서구의 우월감이 미국 파워엘리트들의 무의식에 잠재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경제규모와 외환보유고, 나아가 막대한 미국채 보유량 등을 감안할 때 과거 일본과는 다르다.

따라서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중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기축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위협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으로서는 국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달러에 넘긴 후 ‘슈퍼파워’로서 영국의 위상은 종말을 고했다. 인구와 경제 규모라는 면에서 미국은 아제 중국의 상대가 안 되며, 이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 중국은 인공지능(AI) 기술면에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확고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보다 월등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점들을 감안할 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지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카드인 셈이다. 게다가 막후에 있는 국제금융자본 또한 미국을 지원할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런 장기적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슈퍼파워의 중간에서 어떤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이것은 향후 한국의 명운을 결정할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두 나라 모두 우리에게는 불편한 상대이지만, 그래도 미국을 우선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를 비롯해 중국과의 일련의 갈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중국은 우리를 결코 대등한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남북한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은 늘 우리와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갈등의 원천에는 과거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군신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중국의 파워엘리트들의 무의식에는 한국은 변방에 있는 일개 국가일 뿐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 또한 우리에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미래 한국을 위해 나은 전략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중국과의 교역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정책과 함께,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이 분야에서 우리의 입지를 공공이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달러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 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과 막말 정치로 인해 미국은 지금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다. 그렇지만 달러의 지위를 지킨다는 절대 명제에서는 일치단결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명심하고 우리에게 효과적인 장기생존전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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