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몽 스틸컷.

대한민국 공중파 채널에서 김원봉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한때 빨갱이로 낙인되어 그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힘들었던 인물이다. 백범 김구와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의 양대 산맥인 그가 안방극장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선 무슨 빨갱이가 주인공이냐면서 방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낼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여전히 이런저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전파를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에 갇힌 현대사의 인물을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과감히 공론의 장으로 소환한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먼저 드라마 제목이 이채롭다. 이몽? 한글로 보면 무슨 뜻일까 하지만 한자로 옮기면 이몽(異夢) 다를 이, 꿈 몽..다른 꿈이 된다. 뭔가 함축적인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확연해 지리라.

어렵게 드라마가 제작된 만큼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단 제작 라인업을 살펴봤다. 연출은 ‘태왕사신기’의 윤상호 감독이 작가는 ‘아이리스’의 조규원 작가가 맡았다. 이 정도 조합이면 꽤 잘 나올 것 같다. 가장 기대되는 김원봉은 유지태가 맡았다. 그리고 그와 짝을 이룰 여배우는 이요원. 역시 나쁘지 않다. 다만 김원봉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유지태가 얼마나 담아낼지, 이제는 어엿한 아기 엄마가 된 이요원이 비밀스러운 공작원 역할의 이영진역을 얼마나 잘 풀어낼지 흥미롭다. 이 밖에도 일본 검사 역할에 임주환, 팜므파탈의 매혹적인 싱어로 나오는 남규리가 뒤를 든든히 받쳐준다.

사실 MBC는 ‘여명의 눈동자’ ‘질투’ ‘아들과 딸’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왕국’이었고 타 방송사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마봉춘(MBC)은 권력의 언론장악 여파로 힘을 못 쓰더니 새롭게 사장이 바뀐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예전의 영화를 얻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현 MBC 최승호 사장이 누군가? 다큐영화 ‘자백’을 제작하고 연출까지 도맡으면서 끈질기게 이명박 뒤를 쫓아가 질문을 던지는가 하며, 전 국정원장 재판정에 찾아가서 자백하라고 소리쳤던 ‘피디수첩“ 출신 아니던가? 이제 임기 내에 뭔가 하나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이 있으리라. (무한도전이나 잘 만들라고 그를 뽑아준 것은 아니니.)

드라마 ‘이몽’을 기화로 옛 영광을 되찾아 보겠다는 열의가 엿보이지만, 워낙 소재가 소재인 만큼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원봉’ 드라마는 잘 나오면 본전, 안 나오면 욕만 들입다 먹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야심 차게 제작비 200억을 들인 대작이기도 하다.

아직 드라마 초반이어서 관전평을 하기엔 좀 이른 감은 있지만 1회부터 8회까지(요즘은 중간광고로 예전 1부를 2회로 쪼개 방영한다.)본 감상은 아쉽게도 실망이다. 아니 매우 실망이다. 기대가 너무 컸었나? 적어도 ‘미스터 션샤인’ 이나 ‘킹덤’ 정도의 때깔과 규모를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너무나 멀었다. 만듦새는 그렇다 치자. 중요한 건 역사드라마 특히 실명을 쓰는 작품은 최소한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역사적 팩트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 전개에 도저히 몰입하기 어려웠다.

먼저 인물과 캐릭터 설정.

유지태가 김원봉을 소화하기엔 카리스마나 매력이 부족하였다. 전작의 조승우(영화‘암살’)나 이병헌(영화‘밀정’)을 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지리라 보고 이 부분은 넘어가자. 베일에 싸인 이영진 역의 이요원은 복선과 비밀을 담고 있는 중요 인물인데 너무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연기에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줬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 듯하다. 분발해야 한다.

결정적인 내용상의 치명적인 오류를 보자. 드라마 시작이 1930년대로 나오는데 이런…. 어쩌나 이때는 유감스럽게도 김원봉이 중국 남경에서 조선혁명간부학교의 교장직을 맡고 있었다. 크게 양보하여 1920년대라 하더라도 김원봉은 직접 조선 땅을 밟지 않고 주로 밀명을 내리는 단장 역할이었다.

박재혁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김익상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김상옥 종로경찰서 기습 타격,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투척…. 모두 김원봉 의열단장이 내린 명령에 의해 이루어 낸 의거다.

두 번째, 드라마 서두에 임정의 김구와 의열단의 김원봉이 알력 관계였다고 소개되는데 이 역시 역사에 무지한 나레이션이다. 30년대에 김구는 조선혁명간부학교에 격려차 방문할 정도로 둘은 각별했고 1942년에는 김원봉이 눈물을 머금고 좌익 조선의용대를 김구의 간곡한 청에 의해 광복군으로 편입시키기도 한다. 좌우합작을 위해서 김원봉이 통 큰 결단을 내린 거다. 둘의 갈등이 있다해도 40년대 이후 혹은 광복 후가 그나마 맞다.

세 번째는 로맨스 라인인데 김원봉은 이미 1931년에 박차정이란 여성동지와 결혼을 한 상태이다. 김원봉과 박차정의 사랑에는 기가막힌 이야깃거리가 많이 있다. 왜 이런 재밌는 소재를 드라마로 살리지 못했을까 싶다. 그리고 김원봉과 동지관계인 유세주도 드라마에서 정육점을 하는 친구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대단히 영민한 이론가였고, 역시 당시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뛰어난 독립투사들을 너무 희화화시켜버려 드라마 보기가 조금 거북스럽다.

어차피 드라마는 창작이고 재창조물이라는 걸 필자도 십분 이해하지만, 정도껏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지리산에서 잡았다고 하면 안 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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