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영화 스틸컷.

배우 고아성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아직 제대로 된 유관순 영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몇 번은 만들어졌음직한 위인임에도 불구하고 유관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아니면 서사로 꾸미기에는 뻔한 이야기여서? 그도 아니면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모두 다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특히 큰돈이 들어가는 영화는 유관순을 담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어려운 인물이었으리라. 그래서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하는 다양성 영화 부문에 투자를 받아 10억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필자도 투자심사에 참가한 인연이 있다. 역사영화로 강의하며 먹고 사는지라 후한 점수를 주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걱정도 많았다. 과연 유관순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혹여라도 안 만드니 못한 작품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초등시절 불렀던 유관순 노래를 아직도 기억한다. 특히 이 부분.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중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며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팅팅 부은 얼굴로만 기억되는 유관순은 기어코 올해 3.1운동 100주년에 배우 고아성으로 부활했다. 적절한 캐스팅이다. 누가 어울릴까 생각해 봐도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 ‘항거’는 유관순 일대기를 그리지 않는다. 1919년 3.1운동 후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힌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유관순은 이화학당에 재학 중 만세를 부르다가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인 병천에 내려와 아우내 장터에서 다시 만세운동을 조직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이곳에서 여성 독립투사들을 만난다. 수원지역 기생운동을 주도했던 김향화(김새벽), 개성에서 만세운동을 이끈 권이라(김예은) 등이다. 물론 이곳에서 함께 옥살이했다는 사료는 없지만, 이들을 한 공간에 넣어 상황과 감정선을 집중하여 보여준다. 만듦새의 부족함도 흑백 촬영으로 최소화했다. 

서대문형무소에 가보면 실제 유관순이 수감생활을 했던 감방을 볼 수 있다. 3평도 채 안 되는 곳에 25명의 수인들이 감옥 생활을 했다. 드러눕기조차 힘들다. 겨우 제 한 몸 서 있기도 벅차다. 잠도 그래서 교대로 자야 했다. 그러나 추위와 배고픔, 온몸이 바스라질 것 같은 고통도 이들의 항거를 막지 못한다. 

필자는 오래전 잠시 서대문구치소(지금의 서대문 역사공원)에 있었던 적이 있다. 일제 시대 낡은 목조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겨울에 몹시 추웠고 인분의 냄새는 항상 감옥 안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그때 힘이 되었던 한 마디가 있었다. 한 교도관이 알려준 ‘저기 저 사옥이 유관순도 있었던 곳이야.’

3.1만세운동이 1년이 지난 1920년 3.1일. 감옥에서 유관순을 비롯한 여성 독립투사들은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를 부른다. “만세 1주년인데 빨래 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라며 “최후의 일인까지 당당하게 외쳐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른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유관순의 영웅적 투쟁이 생생한 영상으로 펼쳐지지만, 감정의 과잉 없이 울컥한다. 국뽕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이 장면을 찍고 모든 배우가 울었다고 한다. 

친일 고위관리는 3.1만세 시위 당시 이런 포고문을 내렸다. ‘경거망동 말고 가만있으라..’ 5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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