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전 YTN 사장. 사진. 구혜정 기자

최남수 전 YTN 사장이 자서전을 발표했다.

2017년 12월 YTN 사장직에 취임했던 그는 이듬해 5월 사의를 표했다. 노조 등 YTN 내부 반발로 인한 사임이었다. 내부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 속에 임기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장직을 내려놓은 것은 그 개인에게 썩 명예로운 기억은 아니었을 것이다.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최 전 사장은 '나는 기자다'라는 책을 펴냈다. 제목부터가 상징적이었다. 이 담대한 타이틀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그 질문부터 던져보고자 했으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미 답이 나왔다.

"저는 기자였습니다. 기자였기에 어느 정부에도 잘한 것은 잘 한다고 이야기하고 못한 것은 못 한다고 말해 왔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지난 정부(이명박,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쓴 것도 많은데 그 당시의 관점에서 칭찬의 기사를 쓴 탓에 프레임이 씌워졌습니다. 억울한 낙인이었죠. 하지만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기자란, 어떤 정부에도 지적할 것은 지적하고 칭찬할 것은 하는 존재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결국 '나는 기자다'라는 타이틀은 지난 6개월의 시간 속에 빚어진 불명예들을 씻어내고자 하는 그의 항변이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자서전을 낸 이유가 우선 궁금하다.
36년 기자 인생에서 '그 기간'은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2017년 11월 초 내정이 되고 5월 4일 사장직에서 내려왔으니 6개월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악몽 같았다. 그 시간 동안 인간 최남수와는 다른 괴물 같은 최남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제는 실제 최남수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참에 마침 출간 제의가 들어왔다. 쓰다보니 그 사태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측면이 있었기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절제하면서 해명했다. 때가 되면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자서전은 실제 최남수가 누구냐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책이다. 나는 신문기자로, 방송기자로 이런 관점에서 취재하고 글을 쓰고 살아왔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명예를 되찾기 위한 시작의 몸짓이다.

-자서전을 통해 '악몽 같은' 시간은 정리가 됐나.
개인적으로는 끔찍한 경험이었기에, 처음에는 그야말로 트라우마 상태였다. 하지만 주저 앉을 수만은 없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책을 읽으면서 치유하는 습성이 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정리했다. 나는 신문과 방송을 다 경험했으니 둘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뭘까 했을 때 역시 콘텐츠였다. 내 전문분야인 경제와 취미인 사진, 그리고 시. 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서평 정리 등등. 이런 것들을 블로그와 브런치 등의 플랫폼을 활용해 써나갔다. 내 내면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치유도 됐다.

그러다가 자서전 출간 제의가 왔는데, 시작하면서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덮어둔 상처를 다 끄집어내야 하는 작업이니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다독거려주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지금은 완전히 편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정을 찾았다.

-책을 집필할 때, 독자들은 누구를 떠올리며 썼나
실제 최남수와 너무 다른 사람으로 매도된 측면이 있어서 답답했고,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니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런 부분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는 측면이 하나 있었다. 책을 써놓고 보니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글을 잘 쓰는 법, 면접을 잘 하는 법을 안내하는 실용서들은 많지만, 기자의 삶은 무엇인지,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 사람인지, 또 미디어 경영자들은 어떠 활동을 하고 무엇을 고민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책은 없더라. 그런 면에서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언론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도 활용될 수 있겠다 싶었다.

-신문에서 방송으로, 또 기자를 하던 중 유학을 떠나고, 이후에 기업에서 일을 하다 다시 미디어로 돌아오는 등 변화가 상당히 많았던 기자 인생이었다.
신문에서 방송으로 전직한 이유는, 방송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전직했던) 1988년은 방송이 지금처럼 뜨던 시절도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신문보다 방송을 한 단계 낮다고 생각했을 때였지. 그 때 SBS가 생기면서 제안이 왔고 고민하고 있을 때 회사도 말렸지만 무엇보다 취재원들이 말렸다. 하지만 공영방송만 둘 있던 시기 최초의 민영방송이 생겨나는 흐름을 타서 새로운 영역을 배워보자는 마음이 더 커서 결국은 SBS로 가게 됐다.

유학 이후 삼성화재에서 2년여를 일한 뒤, YTN으로 복귀했다. 아마 현역 언론인에서 기업으로 스카우트가 되어서 갔던 것이라면 기업으로의 전직에 대한 동기가 확고했을 것인데,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공부가 좋아 유학을 결정한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히 언론사를 그만뒀다. 이후 유학도 했으니 글로벌하게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기회들을 모색했지만 당시 911테러도 있고 국제 경기가 좋지 않아 해외보다는 삼성으로부터 기회가 찾아왔다. 그곳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떠나게 된 계기는 YTN 당시 표완수 사장에 대한 존경과 그분과 함께 YTN의 경영기획을 해본다는 것은 돈을 떠나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연봉이 줄었다. 그만큼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당시 미디어로 돌아오게 되면서 불명예 퇴진으로 기자 인생이 마무리 된 셈이다. 혹시 당시의 결정을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YTN 사장직에 나선 것은... 사실 처음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자리였다. 현직 기자들이 출마를 하고 있었고 내부사정을 잘 모르니 후배들이 하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 제안이 들어왔었고, YTN 전성기의 성과를 이룬 실무자로서 생각해보니 내 언론생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기인데 혼란에 빠진 회사를 안정화 시키고 다시 흑자로 전환시킨 후 미디어 생활을 마감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서게 됐다. 지금과 같은 결과는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

후회 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운명인 셈이니까.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한들 무엇하나. 그 경험을 흘려보내야지. 또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 경험을 토대로 강해진 부분도 있다. 다만,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는데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사진. 구혜정 기자

-YTN을 시작으로, 머니투데이 방송 MTN 등에서 미디어 경영인으로도 오래 일했다. 경험자로서, 한국 미디어들의 현 상황을 진단한다면?
뉴욕 타임즈를 비롯해 월스트리트 저널 등 해외 미디어들은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곳이 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디지털 수익이 전체 수익의 절반을 넘어선다. 그러나 한국에는 온라인에 무료 콘텐츠가 넘쳐나는 만큼 유료화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처럼 구독료나 시청료에 대한 적정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다. 우리는 가격이 다 낮다. 각 사들 보면 , 구독료 비중이 10~20%에 불과하고 광고 의존도가 높다. 구독료 비중이 큰 외국은 광고 의존도가 낮은데 말이다.

그런만큼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아야 하는데 어렵다. 그래도 경영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 미디어 독립성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현 시점의 비지니스 모델과 관련된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국 미디어 중 그런 미디어가 거의 없다고 본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숙제다.

-한국 미디어들은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이슈로 많이 흔들리는 모습이 있다.
내부 정치부터 이야기 하자면, 운영자 입장에서 철학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행동이다. 말이나 글은 멋있게 쓸 수 있지만 행동을 그렇게 할 수 있느냐의 이슈가 중요하다. 내부 정치가 존재하지 않도록 조직 운영을 해야 한다. 굉장히 중요하다. 나의 경우,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 중심으로 평가하려고 했다. 내부에 자기 사람을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외부와의 관계에서는, 정치 권력 연합에 따라서 내부 정치 권력의 변화를 주는 경우도 있다. 나는 경제 기자로 살아와 정치도 모르고 정치인도 잘 모르지만 그런 변화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외부의 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언론사 내부의 조직 인사가 독립적으로 가는 구조로 변화돼 나가야만 한다. 그것 역시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이 가진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보나
해외 미디어들은 전문화 되어 있으나 상당부분 정제되어 있다. 우리는 부족하고 거칠지만 역으로 치열하다. 따라서 치열함의 관점이 있다고 본다. 정보가 많은 시대라 미디어 역할도 개별 개별 미디어로 보면 역할이 적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막상 취재의 대상이 돼 보니까 꼭 그렇지 않았다. 총량의 미디어를 보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잘 하는 미디어일수록 활동 공간이 넓긴 하고. 설득력이 있는 이슈 메이킹, 방향을 제시하는 차별적인 모습을 발전해 나가면 활동공간은 상당히 넓다.

-국내 미디어들이 처한 여러 환경을 고려해 기자 선배로서 후배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전문성을 강조하고 싶다. 회사는 바뀌지만 전문분야는 바뀌지 않는다. 기자의 장점은 결국 사회 전문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축적의 시간도 필요하다. 기자가 5년 이상 노력을 하면 전문 분야가 생긴다. 빠르고 짧은 글들은 이제 승부가 안 된다. 긴 호흡의 깊은 글을 만들어내는 전문성을 가지면 나중에 책도 쓸 수 있다. 기자들이 바라볼 수 있는 비전 아닐까 생각한다.

특종 취재의 경우, 팩트는 내가 다가가야 오지, 결코 먼저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연적인 팩트의 발견도 부지런히 발로 다니면서 금광 캐내듯이 하는 것이 맞다. 기획의 경우는 내 경험으로는 호기심과 관찰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운도 따라야 하지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이지만, 역으로 성과도 있는 경험이었다. 지금부터 명예 회복의 시작이라고 보고 활동을 해 나가겠다. 한국사회는 갈등이 많이 존재하고 입장이 다른 부분도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기본은, 서로가 서로의 품격을 존중해주는 틀 내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생산적이고 건전한 관계의 발전이 가능하다.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틀, 가치, 상식, 원칙 등을 모두 깨버린다면, 무엇이 원칙인지 모르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그 상황까지 가버리면 승패를 떠나 양측 모두 심대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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