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 / 사진=CGV아트하우스

“저는 배우고, 연기 자체가 좋은 사람이에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천우희는 늘 연기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연예인으로서 여러 가지의 가치 있는 것을 쫓기보다는 연기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걸 택했다고 털어놓은 천우희는, 결국 연기가 자신의 지향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욕심이 많다고도 솔직하게 말했다. 안 해본 것에 대한 도전을 이어가고 싶다는 천우희는 이미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좋은 배우다. 그것도 매우 영민한.

Q. 최근 영화 ‘우상’을 통해 이수진 감독과 재회했어요.
천우희: 감독님이 저를 또 시험에 들게 하나 싶었어요(웃음). 쉽진 않겠구나 싶어서 겁부터 났지만 또 좋기도 했죠.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이어서 의욕이 앞섰어요. 두려움도 컸지만요. 한 감독님과 두 번이나 작업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제가 잘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당연히 성에 차진 않지만요.

Q. 센 역할들이 많았고, ‘우상’의 련화 역시도 범상치 않았던 캐릭터였어요. 강렬했죠.
천우희: 제가 센 역할들을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도, 다른 의미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역할이나 현장이 힘들었다기보단 심적으로 부담감도 없잖아 있었고, 개인적인 일에 대한 영향도 받았죠.

Q. 련화는 행복하지만은 않은 환경에 처한 인물이에요. 이런 인물을 연기하면서 약간의 스트레스가 온 지점도 없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천우희: 제 성격상 연기하는 인물을 일상으로 끌고 오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어요. 일단 눈썹을 밀었었고요(웃음). 그렇다 보니 칩거를 했는데 자의적으로가 아닌 타의적으로 집에 머물다보니 힘들더라고요. ‘왜 나만 힘들지?’라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봤어요. 그런 감상적인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데, 촬영하는 동안에는 그렇더라고요.

배우 천우희 / 사진=CGV아트하우스

Q. 빠져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겠네요.
천우희: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많이 멀어지려 했다고 할까요? 촬영을 6개월 하고 나서 6개월가량을 쉬었어요. 의욕이 생기질 않아서 작년 한 해 동안 작품 선택도 안 했어요. 사실 그건 작품 때문만은 아니에요. 김주혁 선배님의 일이 제겐 정말 컸어요. 의욕 넘치게 초반 촬영을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그 일을 겪은 건데, 배우로서 한 작품을 위해 영혼까지 불태워가며 연기하는 그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지더라고요. 제 자신이 하찮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정도였어요.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한 번도 흥미를 잃은 적이 없었지만 그때는 처음으로 아무런 여력도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여행도 다니면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어요. 노력을 많이 했어요.

Q.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천우희: 많이 극복했어요. 그런데, 저는 제 작품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는데도 이번 작품은 제가 나올 때마다 울컥하더라고요. 련화가 너무 처절하고 불쌍했던 것도 있지만 제 모습이 얼핏 보이는 걸 보면서 느끼는 여러 부분들도 있었어요.

Q. 련화를 연기하면서 기존의 작업과는 다른 감정들을 느낀 것 같아요. 감정을 연기하면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우상’을 마치고 새롭게 촬영한 ‘버티고’에선 그 달라짐이 담겼을까요.
천우희: 그런 심리들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혼자만 심취한 느낌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어요. 혼자 느끼는 그 감정을 사람들에게 잘 표현해야 했던 만큼 심취하는 지점을 경계했거든요. 하지만 ‘버티고’는 그런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 나에게만 이기적으로 연기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제 연민을 그대로 연기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버티고’는,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에 가장 감상적이고 자기위안적인 작품일 것 같아요. 그 작품을 보는 순간 많이 울었거든요. 제게는, 다시 연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고마운 작품이기도 해요.

배우 천우희 / 사진=CGV아트하우스

Q. ‘지금까지 이런 배우가 없었다’는 한석규의 극찬이 있었어요.
천우희: 저를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한석규 선배님, 설경구 선배님 두 분께 많이 배웠어요. 인간적인 따뜻함과 격려도 많이 느꼈고요. 특히나 한석규 선배님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자기 자신의 불씨를 유지해라. 너무 활활 타올라서 꺼져도 안 되고 너무 미약해서 꺼져도 안 된다. 연기를 계속 할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이 정말 와 닿았는데요, 계속 저를 불태워가면서 하는 연기를 많이 하니까 제가 혹여라도 지쳐서 나가 떨어질까봐 걱정해주신 것 같아요. 두 분이 방식은 달라도 흔들림 없이 현장에서 연기를 해내시는 걸 보면서 제 내공이 많이 부족하구나 싶었어요. 잘 따라가고 싶었죠.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의욕이 컸어요.

Q.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배우라 생각해요. 때로는 너무 배우 자신을 몰아가는 듯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천우희: 그런 역할이 많이 오기도 해요. 저한테 원하는 게 이런 건가 싶죠(웃음). 이 세상의 너무 많은 것들을 제가 짊어진 듯하게 느껴진 작품도 있었어요. 사실 저는 캐릭터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진 않거든요. 우연찮게 강한 역할들이 눈에 띈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 전체예요. 이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를 분명하게 느끼면 흥미를 느끼고 선택하는 거죠. 저는 가볍고 단순한, 말랑말랑한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Q. 그래서 더욱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가 기대돼요. 특히나 방송가에서는 대본이 잘 나왔다며 기대된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돌 정도예요.
천우희: 그래요? 큰일이네(웃음). ‘멜로가 체질’은 좀 다른 방식의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기존에 해왔던 방법들을 바꿔보는 편이거든요. 감독님이나 현장 분위기, 함께 하는 배우에 따라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수 있어서 유연하게 저를 두려고 하는데, ‘멜로가 체질’은 그냥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어떨까 싶더라고요. 감독님이 지금까지 추구해 온 색과 개그 코드가 있으니까, 크게 뭔가를 분석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임하려 해요.

배우 천우희 / 사진=CGV아트하우스

Q. ‘멜로가 체질’이라는 제목처럼, 멜로가 뜻밖의 체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동안의 필모그래피 중에 정통 멜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천우희: 멜로는 정말 해보고 싶어요. 많이 컨택해주시면 좋겠어요. 하하.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서 뭔가를 딱히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안 해본 걸 많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작년에는 쉬면서 영화를 좀 봤었는데, 볼 때마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생각만 들더라고요(웃음). 제가 욕심이 많아요. 못해본 거라 더 해보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요.

Q. ‘우상’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만큼, 외국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지 궁금해요.
천우희: ‘곡성’ 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하지만 일단은 영어공부를 안 하고 있고요(웃음). 제가 단역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하는 데에 스스로도 큰 자부심이 있었어요.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믿음도 컸고요. 그래서 작품을 새로 할 때마다 더 성장하길 바라서 저를 더 몰아붙이기도 했었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제게 독이 된 순간이 있었어요. 결국 배우의 인지도와 상품성으로 평가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상처를 받기도 했고, 스스로 노력해서 될 부분이 있고 아닌 게 있다는 것도 느꼈어요. 그래서, 할리우드에 진출하지 못한 게 죄는 아니지만 영어공부를 꾸준히 못 하는 제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그만 받기로 했어요. 편하게 생각 중이에요.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10년 뒤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흐흐. 마음을 그냥 좀 놓기로 했어요.

Q.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욕심이 많아 보여요. 그게 배우로서의 성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고. 특히나 연기 영역에는 더욱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천우희: 연기 욕심 엄청 많죠. 제일 큰 것 같아요.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정말 친한 친구에게 TV 속 화려하고 예쁘게 나오는 배우들을 보면서 부럽다고 하니까, 친구가 ‘저런 배우의 삶도 나쁘진 않겠지만 바꿔서 산다면 네가 과연 그런 걸 원할까?’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아닐 것 같았어요. 그 나름의 괴로움이 분명히 있겠죠? 결국은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배우고, 연기 자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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