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노후를 꿈꿀까? 드라마 ‘눈이 부시게’
우리는 어떤 노후를 꿈꿀까? 드라마 ‘눈이 부시게’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9.04.05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이

눈이 부신 요즘 날씨다. 다행히 미세먼지도 없고 화창하다. 거리를 지나는 청춘들이 싱그럽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저들도 세월이 흐르면 다 늙어지리라는 것을.
박범신 소설 ‘은교’에서 70대인 이적요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어찌 보면 세상 공평한 건 늙음과 그리고 죽음이다. 유명한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돈 많은 재벌이 아프면 다른 처방이나 치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면 대부분은 똑같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응급 당시 정해진 매뉴얼대로 순천향병원에서 처치를 받았습니다.” 하여 늙음과 죽음은 빈부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에 따라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출생 수가 줄고 우리는 어느덧 ‘노인들의 국가’에 살고 있다. 낮에 전철을 타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그 어르신들도 아직은 20년에서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 통계적으로 그렇다. 백세시대는 선언적인 문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노후를 꿈꾸는가?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맛있는 커피에 음악을 들으며 신문과 뉴스를 본다. 근처 도서관이나 공원에 가서 소일하고 친구들과 동네 맛집에서 브런치를 즐긴다. 오후엔 한적한 극장에서 흘러간 명화를 저렴한 가격에 즐긴다. 저녁에 가벼운 운동을 하고 저녁엔 사랑하는 이와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시장에서 사 온 제철 음식을 먹고 넥플릭스에서 다운받은 미드나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둘이 손을 꼭 잡고 잠을 청한다. 한 달간 모은 돈으로 가끔 외국여행도 간다. 어떤가? 멋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상상을 방해하는 두 가지가 있다. 질병과 빈곤이다. 

신문에 상반된 기사가 실렸다. 하나는 노인들의 빈곤을 다루는 내용이었고 또 하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지만 적은 돈으로 안빈낙도를 즐기는 분의 이야기다. 같은 수입으로도 불행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은 충분히 행복해한다. 어찌 보면 돈은 덜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오히려 무서운 건 질병인데, 기억과 추억을 몽땅 잊어버리는 치매는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병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 고귀하게 맞이해야 할 죽음을 방해하는 치매는 인간 존엄을 파괴한다. 최근 조사결과 우리 국민 65세 노인에서 10명꼴에 한 명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증가추세는 가파르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당연히 문화콘텐츠에 반영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드문드문 곁가지로 보였던 치매라는 소재는 이제 정면으로 응시하여 등장한다. 개봉을 앞둔 영화 ‘로망’은 부부가 치매에 걸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잊는다. 그러나 부부애를 통해 조금씩 기억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예전의 치매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와는 사뭇 다른 결이다. 치매가 가족을 어렵게 하고 고통으로만 다가가게 했다면 이제는 껄끄럽지만, 인생의 동반자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입소문이 나면서 정주행 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필자도 하루를 털어서 봤다. 노인이 주인공(물론 배우 김혜자는 좋아하지만)이고 치매가 소재라 그리 내키지 않아서 안 봤는데 많은 호평이 나를 정주행으로 이끌었다. 25살의 취준생(한지민)이 우연히 주운 손목시계 때문에 칠순 노인(김혜자)이 되버린다. 여기까지는 흔한 판타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주로 차용하던 구조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는 심상치 않다. 커다란 반전과 비밀이 드러나는데 그 과정에서 묘하게 가슴을 울리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치매를 환상으로 치환하는 극적 결말은 시청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마지막 김혜자가 남긴 말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회자 중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지금 삶이 힘든 당신…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다시 읽어봐도 멋진 문장이며 가슴에 새길만한 글이다. 노후를 막연히 걱정하기보다는 그저 오늘을 눈부시게 살아가라는 거다. 그러다 보면 멋진 노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