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의 연임 실패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갑질을 일삼는 재벌 일가를 투자자들의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사례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미디어SR은 조양호 회장의 갑질부터 퇴출까지를 살피고 유사 사례가 나올 수 있는지,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지 살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대한항공 본사. 사진. 구혜정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실패가 주총에서 결정된 직후, 한진그룹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달 27일 열린 대한항공의 제57기 주주총회에서 지난 달 17일 임기가 만료된 조 회장의 사내 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사내 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특별결의 사항이다. 이날 주총에 전체 의결권 중 73.84%가 참석한 가운데, 찬성 64.1% · 반대 35.9%로 집계됐다. 통과에 필요한 찬성비율 66.66%에서 2.5%포인트가 모자라면서 부결되고 말았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27년 만에 임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이번 사례는 주주의 힘으로 총수를 쫓아낸 첫 사례이자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강화를 천명한 후 처음 열리는 주총에서의 결과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날 오후 한진그룹 주가가 상승 마감하면서, 그동안 한진그룹 주가에 조양호 회장을 비롯 그의 일가들의 이미지로 인한 오너리스크가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는 분석도 잇따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전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구혜정 기자

실제 지난 2014년 부터 시작된 조양호 회장의 큰 딸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해, 지난 해 차녀 조현민의 물컵 갑질, 아내 이명희의 폭언 및 폭력 동영상 등이 차례로 공개되면서 대한항공의 주가는 흔들렸다.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 후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에 대해 운항정지 또는 과징금으로 행정처분키로 하면서 주가는 5%이상 급락했고, 이후 조현민·이명희의 연이은 갑질 및 탈세 등의 사태로 이어진 지난 해에는 대한항공이 델타항공과의 JV(조인트 벤처)로 수혜 기대감이 높았던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주가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 본인 역시도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는 등,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2010년~2012년 인천 중구 인하대 병원 인근에 사무장 약국을 차명으로 운영,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건보재정 152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금을 챙긴 혐의로도 기소됐다.

지난 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항공 규탄 집회에 모인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과 일반 시민. 구혜정 기자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에서는 주주총회 전날인 26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수탁위는 조양호 회장 사내이사 선임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혹은 주주권 침해이력이 있다고 보고, 사내이사 연임건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조양호 회장은 한진칼 주총에서는 실질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나름의 승리를 거뒀다. 그의 측근으로 알려진 석태수 사내이사의 선임 안건이 통과되고, 국민연금이 제안한 사내이사 요건 강화 안건은 부결됐기 때문이다.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조 회장으로서 석 이사의 선임안 통과는 실질적인 지배력 행사를 위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조 회장의 퇴진을 호재로 받아들인 주식 시장이 조 회장의 실질적인 지배력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28일에 대한항공 주가는 다시 5.12% 하락했다.

하나금융투자의 박성봉 애널리스트는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은 부결되었지만 미등기임원으로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된다. 또 정관상 사내이사 3인 이상만 유지하면 문제가 없기에 결국은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사장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라고 바라봤다. 조원태 사장의 임기는 오는 2021년까지다. 조양호 회장의 이사회 참석은 불가능하지만 아들 조원태 사장을 비롯한 기존 이사회 멤버들을 통해 대한항공의 영향력 행사는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박 애널리스트는 "한진그룹 지배구조가 크게 바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결과적으로 대한항공의 오너리스크 해소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조 회장 퇴진 등의 일련의 사퇴가 진정한 호재로 봐야하는지는 의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반대표를 행사한 것이 과연 지난 정부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것과 뭐가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국민연금부터가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의사결정 과정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개인의 부패와 별개로, 그의 경영능력은 높이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는 사법기관에서 수사를 해 법에 준하는 처벌을 받으면 된다고 본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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