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컷

영화 ‘우상’은 일단 감독이 눈길을 끈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독립영화의 명작 ‘한공주’의 감독 이수진이다.(남성감독이다) 여기에 ‘한공주’의 히로인 천우희가 미스테리한 조선족 여자 최련화를 맡았고 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석규가 야심많은 도지사 후보 구명회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그 진실을 캐는 아버지 역에는 오랫동안 흥행작이 없는 설경구가 포진해 있으니 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영화는 2시간 내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맨다. 감독이 무려 13년간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내서 그런지 모든 장면은 힘이 들어 있었고 배우의 날 선 연기는 내러티브를 품지 못했다. 영화의 시작은 그런대로 관습적인 스토리로 시작하여 나름 몰입감을 주었다. 그러나 영화 중반에 돌입하자 길을 잃고 만다. (물론 나의 주관적 생각임을 밝힌다.) 

도지사 선거를 준비 중인 구명회(한석규)는 로비가 안 통하는 매사에 깐깐하고 원칙적인 인물이다. 그는 해외연수를 다녀오던 중에 급한 전화 문자를 받는다. 아들 요한이 사고를 냈다는 것. 여기까진 단순한 교통사고였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파국을 향한 거대한 사건이 돼간다. 뺑소니 사고를 낸 아들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자수시키며 봉합되는 듯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갑작스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중식(설경구)은 오직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는 소시민이다. 그의 아들 부남은 불행히도 자신의 몸을 스스로 건사하지 못하는 불구였다. 하얼빈에서 밀입국한 련화(천우희)는 이런 아들의 아내이자 중식의 며느리이다. 이 세 사람이 믿는 우상과 신념은 너무나 달랐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하여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구명회, 자식을 통해 세상의 행복을 찾는 중식, 먹고 사는 문제와 안위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련화…. 이렇게 다른 세계관을 가진 그들은 서로 충돌하며 각자가 믿는 우상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타이틀이 영화가 끝난 후 스크린에 나오는 경우도 흔치 않다. 감독은 제목 우상이 갖는 뜻을 이렇게 풀었다.“‘우상’은 우상을 좇는 사람과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우상이라는 것조차 갖지 못한 한 여자,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영화는 중반부터 세 사람의 욕망을 하나의 이야기로 용해 하지 못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과도한 액션을 취하는 도지사 후보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캐릭터를 어디론가 버려 버렸다. 왜 저러지? 라는 탄식이 안타깝게 흘러나왔다. 애초에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했던 남자도 최소한의 개연성도 없이 구명회의 선거운동원이 돼버렸다. 오직 생존에만 관심 있던 련화는 느닷없이 “칼로 긁은 상처는 치료되지마는, 입은 아이 대오”라며 복수의 화신으로 탈바꿈한다.

쎈 장면이 틈 나는 대로 나오긴 하지만 그 충격은 금방 소멸되고 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대사 빨 좋은 배우들이 내뱉는 말들이 귀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메타포를 남발하는 연출자는 여전히 독립영화의 치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걸까?
갑자기 고 이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이란 책이 생각난다. ‘우상(愚象)’을 쫓던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죽비처럼 안겨준 ‘이성’의 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영화 ‘우상’은 요즘의 아이돌처럼 실망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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