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찰조사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모습을 드러낸 가수 정준영 / 사진=김예슬 기자

몇년 전 일이다. 국내 톱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PD를 비롯해 몇몇 방송관계자들과 함께 한 사석 술자리였다. PD는 당시 자신이 연출하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꼭 한 번 다뤄보고 싶은 주제는 바로 '갱생'이라고 말했다.

당시 개그맨 이혁재 씨가 유흥업소 종업원을 폭행한 사건으로 방송에서 전면 하차하던 시기였다. 이외에도 몇몇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의 이름을 거론한 그 PD는 "좋은 형이었고, 끼가 상당히 많은 방송인인데 안타깝다. 갱생을 주제로 이들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씻고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PD뿐만이 아니다. 개그맨 신정환 씨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를 받고 있던 당시, 이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잠적했던 이유는) 뎅기열에 걸렸다"는 희대의 거짓 변명까지 해 공분을 산 바 있다. 신정환은 예능 PD들 사이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다들 입을 모아 "그렇게 사라지기엔 아까운 예능인이다"고 말했다.

실제 이혁재는 1년 뒤 슬그머니 복귀했고, 최근까지도 방송활동을 종편 채널 등을 오가며 방송활동을 활발히 했다. 신정환 역시 대중의 공분과는 상관없이 2018년 JTBC '아는 형님'으로 복귀한 바 있다. 당시 '아는 형님' CP는 MBC 출신으로 '황금어장' 당시 신정환과 인연이 있었다.

여자친구와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법정공방까지 간 가수 겸 배우 김현중이나 성추문에 연루된 아이돌 그룹 JYJ 멤버 박유천도 어느 샌가 슬그머니 복귀를 한 상태다. 팬덤을 기반으로 한 복귀야 개인의 자유이건만, 드라마나 예능 등 공동작업에까지 복귀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불러주는 이들이 있다는 증거다.

한류스타의 경우, 소위 국내에서 안 먹혀도 해외에서는 잘 팔리니 복귀작 프리미엄까지 얹혀 팔겠다는 심산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좋은 형 혹은 동생이 다시 복귀할 바탕을 깔아주고 싶다'는 한 PD의 말처럼, 개인적 친분이 이미 끈끈해진 연출자와 출연자들 사이 사적인 의리도 이들의 복귀에 한 몫을 한다. 

빅뱅의 멤버 승리. 사진. 구혜정 기자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시작된 스캔들이 일파만파 커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연루된 가수 정준영(30)과 승리(29·본명 이승현)는 14일 나란히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했다. 이들은 각각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부와 인기를 모두 거머쥔 탑 연예인에서 한 순간 범죄자라는 나락으로 떨어진 두 사람이다. 지난 해부터 시작된 미투 캠페인으로 인해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엄격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 이들을 향한 질타가 뜨겁다. 특히 정준영의 경우 2016년 여자친구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수사가 종결된 바 있다. 당시의 수사가 부실수사였으며 당시의 혐의가 결코 무혐의가 아니었음이 3년 뒤 밝혀지고 있어 대중의 비난이 더욱 거세다.

당시 정준영은 출연 중이던 KBS '해피투게더'의 '1박2일'에서 하차를 한 바 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3개월 만에 복귀한 바 있다. 무혐의로 종결됐기에 그의 복귀 수순이 제작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복귀 시점이 상당히 빨랐고 본격적인 복귀 전부터 정준영의 복귀를 암시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는 등, 정준영을 향한 제작진의 애정이 상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불과 3년 뒤 정준영의 혐의가 결코 무혐의가 아니었음이 밝혀질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정준영 본인이 철저히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는 것에 성공한 결과이었을지언정, 복귀의 포석을 적극적으로 깔아주고 복귀 특집이라는 이름의 환영식까지 마련해준 제작진에게는 과연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인기 스타들의 범죄에 지나치게 둔감한 연예계는 결국 그들끼리의 대화방에서 누군가의 인격을 짓밟으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괴물들을 양산해낸다. 스스로 "삶이 영화같다"라고 말한,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승리, 정준영, 용준형, 최종훈, 이종현 등 젊은 스타들은  차례로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는 모양새다. 제각각 다른 소속사임에도 이들 모두가 스캔들 초기에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법적 대응까지 운운했다. 사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그제서야 죄를 인정하며 반성하겠다고 말한다. 일단 덮고 보자 식의 대응을 강구해낸 엔터테인먼트 사의 도덕 불감증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준영카톡방' 관련 의혹에 휩싸인 FT아일랜드 최종훈, 씨앤블루 이종현 / 사진=FNC엔터테인먼트, FNC애드컬쳐

결국 모든 것이 카르텔이었다. 범죄를 저질러도 감출 수 있게 해주고, 범죄가 밝혀져도 몇 개월 내지는 몇년 뒤 복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현 연예계의 시스템도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남정숙 문화평론가는 15일 미디어SR에 "연예계에서 돈과 권력을 획득한 연예인은 일종의 권력자다. 그러니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사회가 이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를 억울하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라며 "우리 사회 전체 구조가 카르텔로 움직이고 있는데, 금권과 인사권을 쥔 이들이 착복을 하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연예계나 기획사에서도 금권과 인사권를 쥔 이들이 공정한 구조로 이 권력을 배분하지 않고 권력을 이미 가진 이들의 뒤를 봐주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런 면에서 이들 모두가 공범자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정숙 문화평론가는 "한류 열풍으로 인해 연예인들이 특히나 존중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국민과 한류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일을 했어야 했다. 한류 프리미엄으로 존중을 받은 만큼,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 끼친 손해도 엄청나다.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더 크게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예인 당사자 만큼이나 소속사의 책임의식이 낮아서 생긴 일들이기에 소속사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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