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스틸컷.

3.1운동 100주년이 지나갔다. 조금 있으면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여러모로 뜻 깊은 한 해이다. 영화계도 이런 이슈를 그냥 지나칠리 없다. 관련 영화들이 개봉 했거나 대기중이다.

그중에서 블록버스터급인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몇가지 논란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아무리 영화적 상상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허구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거다. 엄복동이 일제강점기에 뛰어난 실력으로 자전차 대회를 평정 하면서 우리 민족의 맺힌 한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풀어줬던 나름의 역할은 인정하지만 자전차를 훔쳐 팔았던 사실은 완전히 없애버렸고 오히려 자전차를 도둑 맞은 피해자로 둔갑한 스토리는 해도해도 너무한게 아닌가 싶은거다.

둘째는 영화속의 의열단의 활약이다. 애국단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독립운동 단체는 그 정체가 모호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10년에서 20년대 초로 추정되는데 김구의 대한애국단과 김원봉의 의열단은 20년대에서 30년대 초 주로 활동했던 단체이다. 엄복동의 활약 시기와는 동떨어져 있지만 극적 전개상 앞 당긴걸로 보인다. 뭐 이정도는 좋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후에 엄복동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제2의 영화 ‘덕혜옹주’가 되버린 꼴이다.

엄복동은 말년이 좋지 않았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 자전거” 라는 노래가 불리울 정도로 민족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았지만 해방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지더니 또 다시 현행 절도범으로 옥살이를 해야했다. 한때 영웅으로 숭배했던 인물의 나락은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의 카피는 ‘최초의 한일전’ 이라고 했지만 엄격하게 보면 일제 강점기라 국가간의 대결이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다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영화의 만듬새가 올드하고 엉성한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사건과 갈등의 해소도 단선적이며 퇴행적이다. 이 정도로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한국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이범수 배우이자 제작자는 판단한 것일까?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일제는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전조선자전차대회’를 만든다. 조선총독부 주관의 이 대회에서 일본 선수들이 압승을 거두어 조선백성들의 사기를 꺽는다. 자전차 경주의 승리로 민족의 사기를 고취시킬 수 있다고 믿는 독립운동가 황재호(이범수)는 엄복동(정지훈)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선수로 키운다. 엄복동은 체력과 근성을 발휘해 첫 출전부터 우승을 하게되고 민중의 영웅으로 탄생한다. 애국단의 행동대원 김형신(강소라)과도 로맨스가 이어진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를 연출한 김유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배우 이범수의 제작 데뷔작이기도 하다.

사실 한일전은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게 만들어 왔다. 한일전 하면 최근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이 떠 오르고 2015년에 일본에서 벌어진 야구프리미어 리그12 준결승전은 8회까지 괴물투수 오타니에게 꽁꽁 묶여 있다가 대역전극을 펼친 감격의 순간이 눈에 선하다.

나이드신 분들이라면 김일과 이노키의 레스링 경기에서 김일의 박치기가 터지기라도 하면 동네에 몇 안되는 TV브라운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마치 나라를 되찾은 그 날 처럼 벅찬 함성을 내질렀던 추억을 갖고 있을거다. 그래서 이런 스포츠 한일전의 훌륭한 소재로 아쉬운 흥행을 보여준 ‘자전차왕 엄복동’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가위 바위 보도 일본에게 져서는 안되며 일본에게 질바에야 현해탄에서 빠져 죽어라는 지도자도 있을 정도로 한일전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었다. 자전차 왕 엄복동이 실패했다면 박치기 김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못다 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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