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KOSRI) 이진호 기자]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사람, 돈, 정보 등 모든 생산요소들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구조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사업체 수와 총생산의 47%를 차지하며 인구는 49%, 대학 수는 34%, 은행 예금액은 71%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은 소득 창출뿐 아니라 기업경영과 취업기회에서도 수도권과 비교해 상당히 뒤처져있는 실정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오랜 기간 한국경제의 과제였고 정부 차원에서 광역경제권 발전동력을 찾기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의 협력을 통해 동반성장을 이룬 사례가 적지 않다.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기업 폭스바겐과 볼프스부르크시의 협력이 대표적이다.

볼프스부르크는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에 위치한 인구 12만의 중소도시이지만 베를린, 하노버와 같은 대도시에 인접해있고 독일의 중앙에 위치해 철도, 아우토반, 미텔란트운하가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런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설립된 폭스바겐은 자동차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에 ‘비틀’로 상징되는 독일 자동차 대중화의 꿈을 실현시킨 기업이다. 폭스바겐이 생산한 차는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했고 1972년 2월17일엔 비틀이 누적 생산량 1500만대를 돌파하며 세계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폭스바겐의 성장 덕분에 볼프스부르크시의 산업구조는 자동차산업으로 단순화했다. 시 전체 고용의 60%가 폭스바겐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부양자까지 포함한 인구의 95%가 폭스바겐 근무자 가족이었다.

그러나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시작된 경기침체로 폭스바겐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자동차 생산량이 25% 줄었고 매출이익율은 수년간 1%를 넘지 못했다. 지역경제 원동력의 대부분을 폭스바겐에 의존하던 볼프스부르크시 역시 위기에 빠졌다. 볼프스부르크시의 실업률은 9%에서 17%로 급격하게 상승했고 폭스바겐 공장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외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이런 가운데 폭스바겐 노사는 1994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기업 경쟁력 유지와 고용 안정를 목표로 협력관계를 맺었다. 볼프스부르크시가 이 협력관계에 참여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력모델을 만들었다. 합의의 산물이 바로 ‘아우토비전 프로젝트(AutoVision Project)’였다.

아우토비전 프로젝트의 구성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혁신캠퍼스를 구축해 사업아이디어의 개발로부터 기업의 성공적 정착에 이르는 아이디어 제공자, 기술이전체, 자본대여자, 전문경영인 간의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둘째, 부품단지(LieferantenAnsiedlung) 조성을 통해 조립공장과 부품업체간의 근접성을 강화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이고 연구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기술이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셋째, 도시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경험세계(Erlebnis) 볼프스부르크 프로그램’으로 ‘아우토슈타트(AutoStadt)와 같은 다양한 문화복지시설을 조성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용과 관련해 인력서비스회사(PSA)를 통해 최적 인력의 소개, 훈련 및 숙련교육의 기회, 파트타임 노동의 공급 등 기능을 수행한다.

혁신캠퍼스는 폭스바겐과 볼프스부르크시가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Wolfsburg AG)가 관리·지원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에 따라 기업의 창업에서 성공적 정착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조언, 훈련, 지도 및 지원을 수행한다. 혁신캠퍼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6년간 160여 개 기업을 유치하고 200여 개 기업 창업을 이끌어냈다.

부품단지 조성이 추진된 이후에는 약 10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지역 내 부품단지는 기존 기업들의 고용을 위협하지 않고 새로운 기업들을 유인함으로써 고용증가와 기술능력의 제고라는 측면에서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시공학 엔지니어링센터(SE-Zentrum)을 설립하면서 기업간 공동개발 및 협력사업으로 R&D 성과가 향상되었고 7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또 조립업체를 위한 부품파크를 형성하면서 500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경험세계 프로젝트’는 그 동안 볼프스부르크시에서 미흡했던 문화관광부문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볼프스부르크 주변지역과 위성도시에 과학센터, 스포츠센터 등을 조성하는 것 외에 폭스바겐의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를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 고객들이 계약한 자동차를 테마파크에서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해 자동차의 구매, 판촉, 전시 기능과 관광명소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테마파크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마련하고 시장에서 브랜드의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볼프스부르크시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서비스부문의 고용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생활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이점을 갖게 되었다.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는 인력서비스기능으로 폭스바겐 공장에 비정규직 인력을 제공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폭스바겐에 공급하면, 정부와 지방노동청의 협력 하에 폭스바겐은 노동자에 직업훈련 및 숙련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보장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폭스바겐의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차이가 생기는 부분을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로부터 보전받아 노동자들의 생활이 안정됐고, 폭스바겐은 불황때 임금비용 부담을 줄이고 호황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인력의 탄력적 운영이 가능해졌다.

아우토비전 프로젝트는 볼프스부르크시의 실업률을 17%에서 6년만에 8%까지 끌어내렸다. 지역 내 총 1만2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이 중 6000개가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의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생겨난 일자리였다. 또 직업훈련 사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직업능력과 숙련수준이 향상되면서 이직률 또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 외에도 기술집약적 벤처기업과 기업지원 서비스업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독일 중북부 지역 내 대기업과 노동조합, 지방정부, 연구소와 대학들로 구성된 지역발전계획 ‘RESON’ 사업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폭스바겐 그룹의 인사담당 이사인 피터 하르츠 박사는 “사회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사회적 후원’을 넘어 끊임없이 고용 능력을 높이고, 평생 동안의 고용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우토비전 프로젝트는 기업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폭스바겐은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면서도 직업능력 향상 등에 있어서 노동자가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동시에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지역산업 및 경제 발전을 위한 전체적인 구조 형성에 적극적으로 협조함으로써 개별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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