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염정아 / 사진=아티스트컴퍼니

잘하는 줄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까지인지는 미처 몰랐다. 전면에 나서니 물 만난 고기처럼 끼를 마구 발산해냈다. 돌이켜보면 이런 팔색조 배우가 없다. 정말이지, 펼쳐낼 장이 부족했을 뿐이다.

‘SKY캐슬’을 통해 얼굴 근육까지도 연기한다는 극찬을 한 몸에 받은 배우 염정아는, 연기 비결에 대해 “단지 그 인물 자체가 되고자 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의 말은 간단하지만, 그 말을 할 수 있기까지 고뇌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을 터다. ‘SKY캐슬’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염정아는 앞으로도, 쭉, 꾸준히 연기하는 사람이다. 늘 그래왔듯이.

Q. ‘SKY캐슬’에서 한서진으로서 짊어질 짐이 많았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각기 다른 감정을 교류하는 캐릭터라 어려움도 컸을 것 같아요.
염정아:
워낙 중요한 역할이 많이 등장하는, 모두와 함께 가는 드라마라 생각했어요. 한서진이 중심에 있긴 했지만 캐릭터들과 함께 맞붙는 장면도 많아서 연기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SKY캐슬’은 시놉시스부터 대본까지 정말 재밌었고, 제가 받은 캐릭터는 연기할 거리가 많아 보였어요. 그런 면에선 욕심이 났죠. 더군다나 조현탁 감독님의 작품이었고요. 무조건 해야겠다 싶은 드라마였어요.

Q. 시청률이 20%대로 급상승하는, 또 한 편의 드라마를 찍었죠.
염정아:
매회 정말 놀라웠어요. 믿어지지 않는 시청률이죠.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수치였고, 이렇게 많이들 봐주시는 드라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게 제 얘기란 게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요.

Q. 한서진 캐릭터는 욕망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우아한 외양을 잃지 않았어요. 스타일링적으로도 세련된 모습이 돋보였고요.
염정아:
곽미향이 아닌 한서진을 굉장히 우아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 여자 입에서 정작 나오는 말은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와 같은 표현이죠. 그런 갭이 재밌던 것 같아요.

Q. ‘아갈머리’는 유행어가 된 것 같기도 해요(웃음).
염정아: 사실 아갈머리가 무서운 말이잖아요. 한서진 같은 교양있는 척하는 사람이 이런 대사를 내뱉는 게 연기하는 입장에선 쾌감도 있고 재밌더라고요(웃음). 한 가지 모습만 보여주는 역할은 재미 없잖아요. 앞뒤 다른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즐거웠어요.

Q. ‘쓰앵님’이라는 발음도 화제가 됐어요. 어느새 유행어로 자리 잡아서 아직까지도 빈번히 쓰이고 있죠.
염정아
: 제가 원래 발음이 정말 정확한 편이에요. 그리고 분명 저는 선생님이라 했거든요? 그런데, ‘네 쓰앵님’으로 들리더라고요(웃음).

배우 염정아 / 사진=아티스트컴퍼니

Q. 김서형(김주영 역)과의 장면에선 긴장감이 늘 가득했어요. 화면으로만 봐도 범접할 수 없는 듯한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게 느껴졌어요.
염정아:
둘 다 대면하는 장면을 힘들어했어요. 서로 기가 빨리는 관계라고나 할까요(웃음). 늘 팽팽하게 긴장감을 놓지 않고 가는 사이였어요. 몸으로 싸우는 것보다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긴장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다양한 각도를 담을 때마다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리액션을 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것의 반복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찍으면 화면에 잘 살더라고요. 서형이가 중심을 잡고 연기를 참 잘해줬죠.

Q.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던 대사나 장면이 있었다면.
염정아:
한서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 악행도 보였는데, 단 한 가지 이해가 갔던 건 모성애예요. 내 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믿는, 약간은 삐뚤어진 모성. 그게 바로 한서진을 지탱하고 있는 힘이죠.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예서야, 엄마는 네 인생 포기 못 해. 돌팔매 맞아도 상관없고 조리돌림 당해도 상관없어. 엄마가 다 해줄 테니까 너는 공부만 해, 예서야”라는 대사였어요. 한서진이 경찰서에 가기 전에 예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저도 모르게 ‘우리 예쁜 딸’이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런 장면들이 마음에 참 많이 남았어요.

Q. 실제로도 두 아이의 엄마잖아요. 그런 감정도, 그리고 극의 내용도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
염정아: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해보진 않아도 모성애라는 감정은 아니까요. 내 자식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 그 마음은 알고 있죠. 하지만 입시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이번 드라마를 통해 알았어요. 이 시대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심각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 애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어서 드라마에 나온 ‘학종’(학생부 종합 전형)이라던가 ‘수시’, ‘정시’를 몰랐어요. 입시 코디네이터가 실제로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런데, 실제 수험생 엄마들이 많이들 공감하더라고요.

Q. ‘SKY캐슬’을 촬영하면서 교육관에 변화가 생긴 부분도 있을까요.
염정아:
아직은 먼 얘기라 생각해서 입시엔 관심이 없었어요.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 싶어요. 마음 아픈 부분들도 많이 봤지만 그게 현실이긴 하니까요. 제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들이라 학습지도 하고 학원도 다녀요. 숙제 안 해서 혼나기도 하고. 그런 것도 사실 마음이 아파요. 공부해야 하는 양이 제가 학생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으니까요.

배우 염정아 / 사진=아티스트컴퍼니

Q. 한 아역배우가 염정아 씨를 두고 얼굴 근육을 써가며 연기한다고 말했어요.
염정아:
얼굴 근육을 일부러 쓰려고 하진 않았어요. 몰입하면 살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하는 건 있겠죠. 그걸 담아주는 카메라의 덕이 컸어요. 그리고 늘 그렇게 연기하긴 했어요.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해야 그 연기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제가 거짓으로 연기하면 한서진을 표현할 길이 없어요. 일부러 제가 의도하고 그렇게 연기를 하면 보시는 분들도 얼마나 어색하시겠어요.

Q.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작품에서도 그 인물이 된 듯한 연기를 보여줬어요. 스스로 노력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염정아:
늘 제가 한 연기를 모니터하는 편이에요. 본인이 한 연기가 부끄러워서 못 보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런 걸 창피해하진 않아요. 객관적으로 보고, 잘못된 점 찾아내고 잘한 것 찾아내고 하면서 계속 발전해왔다고 생각해요. 좋은 영화나 연기 잘하는 분들의 영화도 열심히 봤고요. 저는 대본을 열심히 보는 편인데, 제 부분만 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몇 번이고 읽는 걸 좋아해요. 전체를 보고 제가 해야 하는 걸 찾아내려고 하죠.

Q. 이번 작품은 특히나 전체 흐름의 파악이 꼭 필요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여자들이 중심이 된 작품으로 초반부터 많이 입소문이 났잖아요.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었고요.
염정아:
정말 좋았어요. 캐슬 엄마들과 서형이까지 모여서 “우리가 진짜 잘하자. 우리가 잘해야 이런 드라마가 또 만들어지는 거야”라면서 서로 힘을 주려 했어요. 뿌듯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감사했죠. 이런 배우들과 연기하는 것도 감사하고 이런 좋은 대본에 좋은 스태프들까지 함께 해서 작품이 큰 사랑을 받게 된, 그 모든 게 다 감사해요.

Q. 매 작품마다 늘 다른 결의 캐릭터를 고르는 것 같아요. 대본을 고를 때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염정아:
보면 딱 보여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재밌어하며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요. 제가 재미없어하면 시청자도 재미없어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영화의 경우 전체 대본이 완성도 있는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먼저 봐요. 드라마는 전체 대본을 다 못 보니까 시놉시스와 먼저 나와 있는 4~5개의 대본을 보죠. 전체적 완성도와 연출에 대한 신뢰, 제가 할 캐릭터의 매력이 제 선택기준인 것 같아요. 내가 매력 있게 느끼는 캐릭터를, 내가 연기해서, 시청자들에게 매력 있게 보여주는 것. 물론 힘든 날도 있어요. ‘SKY캐슬’을 할 때에도 감정 장면이 몰려있거나 한 날은 정말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그걸 해냈을 때의 기쁨, 그런 것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배우 염정아 / 사진=아티스트컴퍼니

Q. ‘SKY캐슬’에서 한서진이 여러 인물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감정 연기를 각각 다르게 보여줘야 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연기하면서 이런 부분은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염정아:
저는 원래 대본에 아무것도 안 써놓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각 인물과의 관계가 자꾸 변하니까 그걸 적어놓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걸 다 놓치고 가면 보는 사람도 이상할 거니까요. 전부 다 확인해가면서 연기했어요. 다행히도 작가님이 대본을 일찍 주셔서 공부할 시간이 있었어요. 안 그랬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마음을 편하게 먹는 스타일인데도 이번 작품은 유독 부담감이 많았어요. 후반부에 놓치고 가는 게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부담이요. 오죽하면 밤마다 제가 잠꼬대를 했대요. 후반으로 갈수록 꿈 속에서도 잠을 깊이 못 잤어요. 제가 연기를 잘하지 못할까봐 불안했거든요.

Q. 연기를 위해 따로 노력하거나 준비한 부분이 더 있었을까요.
염정아:
그냥 현장에 가서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제겐 그게 항상 제일 큰 것 같아요. 설정을 미리 하거나 연기를 계산하지 않고 그 신을 마음속에 담고 가는 거예요. 저는 대사를 외울 때도 감정을 넣어서 외우지는 않거든요. 현장에서 감정을 넣는 거죠. 대사를 틀리지 않게만 외워가면, 상대 배우를 볼 때 감정이 생겨나요. 마치 제가 한서진이 된 것처럼.

Q. 조현탁 감독이 예술적 동반자라고 표현하던데, 그 말이 딱인 것 같아요.
염정아:
그 표현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랍고 감사했어요. 표현 자체도 멋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어요. 현장에서도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장면을 만든다기보다는 한서진에 대해 의견을 많이 나눴고 장면에 들어갈 때마다 이런 감정이 괜찮을지 의논을 많이 했어요. 그걸 동반자라 해주신 건, 감독님이 많이 겸손하신 분이라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아요.

배우 염정아 / 사진=아티스트컴퍼니

Q. 과거 인터뷰에서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언급했었어요.
염정아:
지금도 어려워요. 감정연기가 잘 전달되지 않을까봐 두렵고요. ‘진짜로’ 해야지만 감정이 전달 된다는 걸 알고난 뒤부터는 감정연기가 잘 안될까봐 걱정을 많이 하죠.

Q. 그렇다면, 전보다 수월해진 건 어떤 부분일까요.
염정아:
몰입은 전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연기하고 있을 때도 잡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좀 산만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어느 순간 집중하게 돼요. 그것도 경험이겠죠? 하하.

Q. 감정연기를 진짜로 하다 보면 진짜가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그걸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염정아:
저는 대본에 ‘눈물을 흘린다’는 지문이 나오면 부담스러웠어요. 왜 이 사람이 지금 울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상황이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자연스럽게 되거든요. 어릴 땐 눈물 연기를 해야 하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생각하고 슬픈 일들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러면 안 돼요. 카메라 앞에선 다른 인물인데 염정아가 슬펐던 걸 생각하면 이도 저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 시행착오를 너무 겪었어요.

Q. 시행착오를 거쳐 단단한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 같아요. 이번 작품으로 또 다른 전환점이 마련된 것 같기도 하고요. 최종적으로 염정아라는 배우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염정아:
그냥, 오래 하고 싶어요(웃음). 저는 ‘SKY캐슬’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요. 이걸 어떻게 넘겠어요. 하하. 그리고 저는 ‘SKY캐슬’ 전에도 늘 열심히 했거든요. 이번에는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이걸 뛰어넘겠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다만,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많은 기회가 생기겠죠? 저는 그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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