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덤 스틸컷.

미드(미국드라마)인 ‘워킹데드’가 글로벌 히트를 하긴 했지만, 좀비 장르물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통하기는 어렵다는 전문가가 많았다. 한국 관객들은 좀비물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했고 시각적으로 불편한 괴물의 몰골을 장시간 몰입하며 볼 수 있을까 해서다. 그러나 좀비 영화인 ‘부산행’이 천만영화로 등극하더니 시대극을 배경으로 하는 좀비까지 연이어 개봉하면서 좀비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최근 조선시대 좀비를 표방한 영화 ‘창궐’의 흥행이 주춤하긴 했지만, 넷플릭스가 제작한 좀비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 인터넷 스트리밍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며 환호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일단 외국인들의 눈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동양의 작은 나라, 궁궐의 여러 곳을 보여준다. 여기에 화려한 의상과 아름답고 독특한 모자(갓), 신비로운 대궐의 비주얼은 ‘케이 좀비’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렸다. ‘킹덤’의 또 다른 미덕은 여타의 다른 미드 보다 훨씬 저렴한 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미드의 편당 제작비는 100억을 훌쩍 뛰어넘는다. 10부작이면 1000억 정도가 드는 셈이다. 미드의 흥행 대표작인 ‘왕좌의 게임’도 편당 100억을 넘어선 지 오래다. 반면에 ‘킹덤’은 편당 20억 수준에 만들어졌다. 물론 이 역시도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에 버금가는 예산이긴 하지만 시대극에다 제작비 상승 요소인 특수분장이 많음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높다고 하겠다. 단지 예산이 적게 든 부분만 대단한 건 아니다. 권력을 놓고 벌이는 암투와 역병 든 백성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겪는 흥미로운 소재가 넷플릭스 진입에 주저했던 한국관객층을 일거에 흡입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역병에 걸린 조선의 왕, 그런 왕을 두고 절대권력을 탐하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와 그의 딸 중전(김혜준). 그들의 계략에 졸지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주지훈)은 전임 어의였던 이승희 의원을 찾아 경상 땅 동래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백성들이었다. 왕세자 이창은 좀비들과 싸우며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기 시작한다. 언론 기사에는 ‘킹덤’이 15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나오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큰 전란을 두 번이나 겪었다고 한 점(아마도 임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관리들의 부정부패, 가렴주구가 15세기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17세기 혹은 19세기로 봐야 하는데 조 씨 가문의 세도정치가 득세하여 외척의 폐해가 그려지며, 드라마에 나오는 조총의 개량된 제원 등으로 보면 정조 사후 19세기 초 정도가 더 정확한 시대적 배경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좀비의 순우리말이 뭘까? 국산좀비의 이름은 ‘재차의(在此矣)’라고 한다. 풀어보면 “나 여기있다”는 뜻인데 되살아난 시체의 얼굴과 손발이 썩은 것처럼 검다고 한다. 무당이 상을 차리고 춤을 추며 혼을 불러내면 병풍 뒤의 시체가 되살아나 ‘나 여기있다’ 하며 손을 내밀기도 하고 사람의 말에 대답도 한다고 해서 좀비를 재차의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재미있는 일화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한종유가 무당이 제사에서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곡을 할 때 장난삼아 자신이 살아난 시체 역할을 해서 사람들이 놀라 도망가면 제사상의 음식을 모두 쓸어담아 갔다고 한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에 ‘사인’ ‘시그널’ 등 이미 방송에서 드라마를 흥행시킨 김은희 작가가 손을 잡았다. 이제 시즌 1이 끝났을 뿐이지만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다음 시즌엔 경천동지할 빅 픽쳐가 숨어있다고 하니 기대감이 크다.

‘킹덤’에서 조선의 좀비들이 드라마 내내 죽어라 뛰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허기와 굶주림 때문이었다. 죽음보다 싫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득달같이 달음박질하는 좀비의 몸짓이 꼭 조선 시대에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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