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쩌다 결혼' 스틸컷 / 사진=CGV아트하우스

세상이 참 많이도 달라졌다. 꼭 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던, 인생의 관문과도 같던 결혼은 선택사항이 됐다. 메가히트를 기록한 '아모르 파티'는 말한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지금 청춘들의 세태를 참으로 잘 보여주는 가사다.

이렇듯 숙제 같은 일이 되어버린 '요즘 것들'의 결혼관을 적나라하게 그린 영화가 바로 '어쩌다 결혼'(감독 박호찬 박수진)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결혼을 계획하는 성석(김동욱)과, 내 인생을 찾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해주(고성희)가 서로의 목적 달성을 위해 딱 3년만 결혼하는 '척', 같이 사는 '척' 하기로 계약하며 생긴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시종일관 결혼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과정을 반복한다. 성석은 아버지의 바람으로 이혼한 친어머니에게 결혼한 걸 후회하지 않냐 묻는다. 그런가하면 성석의 절친한 선배 채기장(김의성)의 아내 조수정(김선영)은 대놓고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꿈꾼다. 해주의 친구 미연(황보라)과 재영(강신철)은 이혼남녀다. 해주의 첫째오빠 부부를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평범한 가정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캐릭터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이 영화는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란 게 과연 정답일까? 성석과 해주는 각자 원하는 바를 위해 결혼계약에 나선다. 성석은 사랑하는 여자와의 삶을 위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의 결혼이 필요하고, 해주는 결혼을 원하는 엄마의 성화에 가짜결혼이라도 해버리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결혼이라는 단어와 제도가 가진 보편적 의미 및 목적과는 다르게, 제목 그대로 '어쩌다' 결혼에 이르는 것이다. "결혼한다면서?"라고 묻는 코치(유승목)의 말에 "네, 그냥 해버리려고요"라고 답하는 해주의 모습은 결혼을 대하는 '요즘 것들'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어쩌다 결혼' 스틸컷 / 사진=CGV아트하우스

그래서 '어쩌다 결혼'은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하면서도 로코의 진행과정을 답습하지 않는다. 유쾌하고 가볍게 극이 전개되지만, 그 종착역이 뻔하디 뻔한 사랑인 건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종속돼 엇나간 선택을 할 뻔한 이들은, 각자의 인생에 충실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역시 클리셰에 종속되지 않고 제 할 말만 깔끔하게 하는 간결함을 갖췄다. 

짧은 축에 속하는 87분의 러닝타임동안 할 얘기는 하면서도 눈요기거리는 단단히 준비했다. 정우성과 이정재 등 '역대급'이라고 일컫을 스타배우들은 물론 김의성과 임예진, 황보라, 조우진, 이준혁, 김선영 등이 출연해 영화를 탄탄히 뒷받침한다. 최근 'SKY캐슬'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염정아의 출연 역시 반가운 부분이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김동욱은 역시나 제 몫을 다 했다.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통해 자칫 얄미워 보일 수도 있는 바람둥이 캐릭터를 밉지 않게, 밝고 능청스럽게 그려냈다. 그와 호흡을 맞춘 고성희 역시 해주 그 자체가 되어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성추행 사실을 스스로 밝히며 활동을 중단한 최일화의 출연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극 중에서 성석의 결혼을 누구보다도 바라는 아버지로 분했다. 총 예산 4억 원으로 제작된 저예산 영화인 만큼 그의 출연 분량에 대한 재촬영은 어려웠다는 게 제작진의 변. 이야기 전개 상 편집할 수 없는 캐릭터였던 만큼 제작진은 이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그의 출연에 거부감을 느낄 관객들은 '어쩌다 결혼'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어쩌다 결혼'이 말하는 취지 자체에 공감할 관객들에 기대를 가져봄직하다. 이에 대해 '어쩌다 결혼' 측은 미디어SR에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에 집중해서 극을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혼이 '후딱 해치워야 하는' 숙제가 된 시대, '어쩌다 결혼'은 우리에게 결혼이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할 여지를 남긴다.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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