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 / 사진=공감엔터테인먼트

지질하지만 웃기고, 금수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네 평범한 가장 같았다. 정준호가 JTBC ‘SKY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에서 강준상 역을 맡으며 데뷔 25년 만에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마쳤다. 웃음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도 마음속에 작은 울림을 남기기도 했던 정준호의 강준상. 그는 ‘SKY캐슬’을 두고 “연기자 인생에 이런 작품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며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시작부터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청하던 그는 작품에 대한 애정부터 늘 그를 따라다니는 정치 출마설에 대한 솔직한 생각까지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드러낸 정준호의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드라마도 잘 되고 둘째 소식까지, 겹경사네요.
정준호:
요새 악수할 일이 참 많아요. 드라마가 매번 충격적으로 엔딩을 맺어서 매회 끝날 때마다 수십 통씩 전화를 받곤 했어요. 연기자 생활을 25년이나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웃음).

Q. ‘SKY캐슬’에서의 모습은 그동안 보였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굉장히 샤프하고 또 날카로워 보였죠. 말라보였어요.
정준호
: 처음 이 드라마 대본을 받고 나서 이 드라마는 강남 상류층의 사교육 열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 중심의 드라마지만 강준상이 정말 독특한 친구라고도 생각했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최고의 엘리트 삶. 부모의 지원 하에 수석만 해보니 굉장한 부적응자구나 싶은 모습도 있었고요. 그래서 색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서 수염도 기르고 살도 7kg 정도 감량했어요. 푸근함보다는 날카로우면서도 시니컬한 느낌을 주고자 했죠.

드라마 'SKY캐슬'에서 가부장적인 정형외과 의사 강준상 역을 소화한 정준호 / 사진=JTBC 'SKY캐슬'

Q. 분석한 것처럼 강준상은 날이 선 것 같으면서도 꼬인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정준호: 직장에서의 모습을 보면 강준상은 유하다기보단 까칠한 사람이에요. 외형적으로도 그렇게 보이고 싶었는데, 사실 첫 촬영 때 스태프들의 반응이 별로였어요. 근데 찍고 나서 보니까 감독님이 “선배님 괜찮은데요?”라고 하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 길러본 수염이었는데, 더 중후한 느낌도 들고 나이가 잘 묻어나와서 만족스러워요. 애 아빠로서 그 연령대에 잘 맞는 것 같다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많으셨고요.

Q. 혜나의 죽음은 친아버지였던 강준상에게 큰 충격이었죠. 극 중에서 자존심만 세우던 강준상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정준호:
그 대목에서는 저도 강준상이 갑자기 이렇게 연약해져도 되나 싶은 고민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딸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얘가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내 인생을 망가뜨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거라고 여기며 연기했어요. 하지만 딸이라는 걸 점점 느껴가면서 ‘내가 너무 내 위주로 살았구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되는 거죠.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후회가 직접적으로 표출된 게 어머니를 찾아가 어린애처럼 울부짖는 신이라 생각해요. 그 장면은 감정연기가 특히나 더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 뒤부터 강준상의 감정에 죄책감이 실리기 시작해요. 혜나가 자기 딸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감정선이 무너지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강준상이 가졌던 힘듦 같은 것.

Q. 호텔 커피숍에서 눈물을 쏟은 장면과 어머니에게 병원장 아니어도 엄마 아들 아니냐고 읍소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아버지로서 무너지고, 자식으로서도 무너져내리는 강준상의 모습은 여러 가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준호:
그 두 장면이 많이 회자 됐어요. 부모들이 그걸 보고 자식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 게 아닌지를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내가 힘든 일을 해도 내 자식이 성공하면 그게 곧 나의 얼굴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녀들이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리곤 하죠. 이 대사들은, 강준상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장면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부모는 부모 대로, 자식은 자식 대로 느끼는 바가 다르겠죠.

드라마 'SKY캐슬'에서 가부장적인 정형외과 의사 강준상 역을 소화한 정준호 / 사진=JTBC 'SKY캐슬'

Q. 자식이면서도 부모이기도 한 만큼 더 공감됐을 것 같아요.
정준호: 저는 ‘SKY캐슬’을 찍으면서 사교육의 민낯을 확실히 봤어요. 이수임(이태란) 부부처럼 따뜻하게 사는 건 좋지만,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대학 나와서 부모의 좋은 점을 대물림 받아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선한 영향력은 부모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생긴다는 것도 느꼈어요. 그것과 공부는 다른 영역인 만큼 인생 선배인 가족들이 제대로 가는 길을 잡아줘야겠지요. 드라마가 이런 걸 직선적으로 잘 표현해줬어요. 그게 많은 시청자들에게 더 와 닿은 지점인 것 같고.

Q. 생각이 많았던 만큼 배역에 대한 연구도 치열했던 게 느껴지네요. 그래서인지 ‘SKY캐슬’은 유독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좋았다는 평이 많았어요. 모두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죠.
정준호:
잘한다고 할수록 애들은 더 잘하잖아요. 똑같아요. 많은 사랑을 받으니 다들 날개를 달았죠. 감독님도 연기자들에게 신뢰를 보여주시니 다양한 연기를 더 시도할 수 있었고, 그게 상호 시너지로 이어졌어요. 매 순간마다 의욕과 열정이 넘쳤던 현장이었죠. 저도 작품을 많이 해왔지만 이렇게 대사 NG가 없던 현장은 또 처음이었어요. 좋은 연기들을 많이 준비해와서 유감 없이 발휘했죠, 모두가.

Q. 1%대로 시작한 시청률이 20% 넘게까지 치솟았으니, 그 열정에 더 날개가 달렸겠네요.
정준호
: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을 느꼈어요. 시청률이 높아지니까 드라마 촬영장이 갑자기 예능 촬영장 분위기가 되더라고요(웃음). 감독님과 작가님, 배우 등 연기자들과 삼박자가 다 맞았어요. 사교육 현실을 직선적으로 보여주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했죠. 아역들도 다들 연기를 잘해줬어요.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서 놀랄 정도였거든요. 일전에 그런 말을 해줬었어요. 인간적 소양은 기본적으로 다 가진 거니까 선배들한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연기에만 집중하라고요. 그런 면에서 다들 편안하게 연기를 잘 해낸 것 같아요.

Q. 아내 이하정 아나운서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죠.
정준호:
강준상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제가 많이 예민해졌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어요. 정말 고맙죠. 둘째를 어렵게 가졌는데, 황금돼지해에 드라마도 사랑 받고 아이도 갖게 돼 기뻐요.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동반 출연 중인 정준호 이하정 부부 / 사진=TV조선 '아내의 맛'

Q. 25년 만에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 했는데, ‘SKY캐슬’은 어떤 드라마였던 것 같나요.
정준호: 사회가 요구하는 타이밍에 딱 맞는 드라마죠. 작가님도 3년 동안 취재를 했대요. 실제 있던 일을 모티브 삼아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 열정적으로 준비해주셔서 대본도 미리 나왔고, 그 덕에 연기자들은 감정선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연기에 더욱 탄력이 붙은 거고요. 감독님은 워밍업과 리허설 등을 통해 잘 준비하신 거고. 정말 좋은 타이밍에 만들어진 드라마예요.

Q. ‘SKY캐슬’은 시작부터 ‘여성 중심 드라마’라는 말이 붙었어요.
정준호:
알고 있었어요. 대본을 보곤 여자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작발표회에 못 나가게 된 건 충격이었어요(웃음). 작품하면서 제작발표회에 안 나가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어떻게 상의도 없이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면에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 드라마는 핵심을 정확하게 꽂고 출발하는구나. 그 생각이 드니까 마냥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서운한 건 서운한 거지만요(웃음).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되니 연기자 인생에서 이런 작품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Q. 이렇게 드라마로 성공을 거뒀고, 예능에서도 활약 중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사업도 하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나중엔 결국 정치를 할 거라는 말이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지금 가진 솔직한 마음은 뭔가요(웃음).
정준호:
하하. 그런 말씀 많이들 해주세요. 댓글에도 ‘제발 정치에 관심 두지 말고 연기 열심히 하십쇼’ 이런 말들이 많더라고요. 이번에 더 느꼈어요. 연기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카메라 앞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그걸로 좋은 인상을 받을 때라는 것. 연기라는 본업에 충실해서 연기자로서 평가 받는 게 가장 맞는 길이란 걸 느꼈죠. 하지만 제가 오지랖도 넓고 성격도 동네 아저씨 같은 스타일이어서, 정치 하는 분들이 정계 쪽을 권유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간혹 흔들리기도 하죠. 또 다른 지인들은 ‘정치를 하면 넌 이용 당하는 거다’고 말해주기도 하고요.

Q.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주변에 사공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정준호: 그런데, 이번에 ‘SKY캐슬’을 하면서 ‘정치할 것 같은 연예인’ 1위나 ‘사업 많이 할 것 같은 연예인’ 1위가 아닌, ‘연기자’로서 1위를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욕심이 많거든요. 전공 분야에서 인정받는 게 가장 행복하죠. 대본 외우는 순간마다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솔직히, 사람이다 보니 언제 또 흔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는 연기에만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웃음).

정준호 / 사진=공감엔터테인먼트

Q. 워낙 공사다망한 타입이에요. 인간 정준호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정준호: 연기자에 대한 기준을 정해놓지 못하고 다른 걸 더 중요시했던 때가 있었어요. 제 성격을 장점으로 활용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 컸죠. 그래서 사람이 재산이고 또 그게 제 최우선의 목표였어요. 작품을 좀 더 골라가며 하기 보다는 친한 형이 부탁하면 출연하고 했죠. 지금은 가정과 연기자 역할이 우선이에요. 선 순위를 모르고 의리만 너무 따지면 결국 실속 없는 인생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순위가 정해진 것 같아요. 지금도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만, 그래도 가정을 챙기려고 더 노력해요.

Q. ‘탐사보도 세븐’의 MC도 맡았었어요. 다양하게 활동 폭을 넓혀간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준호: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짚는 역할을 해봐야지 생각하던 차에 마침 그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왔어요. 제 아이가 크면 ‘아버지가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 아빠가 되어보려고 좀 더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했죠.

Q. ‘아내의 맛’으로 고정 예능에도 도전 중이에요. 지금은 굉장히 인기 프로그램이 됐지만, 시작할 때에는 고민이 컸을 법도 한데.
정준호:
아내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결혼 7년 만에 그런 얘기는 처음이었거든요. 이런 프로그램은 어색하지만 아내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싶어 어렵게 결정했죠. 그동안 와이프에게 상처를 주는 댓글들이 있었어요. 잘살고 있는데도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나오곤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사는 모습을 더더욱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Q.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올해의 첫 시작을 성공적으로 끊은 게 더욱 보람찰 것 같아요.
정준호:
시청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기대감 때문에 다른 작품 선택도 힘들 것 같아요. 하하. 더 신중하게 다음 작품도 잘 선택해야죠. 역할이 크든 작든 연륜이 묻어나오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공감할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연기로 시청자분들께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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