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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을 맡고 있는 총괄 프로듀서이자 최대 주주. 1971년 남성듀엣그룹 4월과 5월로 가요계에 첫 발을 들인 뒤 이수만과 365일, 경복 브라더스, 샌드페블즈 등 그룹을 결성해 뮤지션 및 MC와 라디오 DJ로서 왕성히 활동하다 1995년 SM기획을 설립,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길로 나아간다. 가수 시절 1976년 MBC 10대 가수 남자신인상을, 1977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1996년 직접 기획, 데뷔시킨 H.O.T.가 대히트하며 1997년과 1998년 SBS 가요대전 최고기획자상을 2년 연속 수상한다. 

그가 콘텐츠 및 음악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는 H.O.T. 외에도 현진영과 와와, S.E.S,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 엔시티 등 걸출한 가수들을 배출해 현재까지도 명실상부한 업계 톱으로 통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들을 대거 성공시키며 현재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K팝의 기준점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보아와 동방신기 등을 일본에 진출시켜 불모지로 꼽히던 일본 시장을 개척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 외에도 예명과 본명을 결합한 네 글자의 이름을 도입하거나(동방신기), 가수들에게 세계관 개념을 대입시키고(엑소), 한 가수에 두 가지 콘셉트를 심어주는 등(레드벨벳) 다양한 콘셉트를 운용하며 K팝 시장을 현재까지도 선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현재 이수만이 수장으로 있는 SM엔터테인먼트는 콘텐츠 제작에도 발을 넓히며 키이스트와 FNC엔터테인먼트 등을 인수했고 자회사 SM C&C를 통해 강호동 신동엽 전현무 이수근 등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프로그램 자체제작창구인 SM CCC LAB을 두고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고도 있다. SKT와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AI 활용 기술 등 신사업 활로를 모색 중이다. 외식 및 여행 사업도 엔터와 연계해 꾸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사업의 중심엔 셀레브리티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가 있다.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 체제 하에 SM엔터테인먼트는 꾸준히 새로운 영역으로의 몸집 불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H.O.T.

지금의 SM엔터테인먼트를 있게 한 기틀. 

데뷔와 함께 큰 성공을 거두며 현진영의 마약 사건 이후 적자난에 시달리던 SM기획을 기사회생시킨 주역이다. 이수만과 유영진의 기획 하에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 등 다섯 명의 멤버가 선발돼 만들어졌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를 시작으로 '캔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 '아이야!', '투지', '환희', '아웃사이더 캐슬', '그래 그렇게' 등 발표하는 곡마다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활동기간은 5년에 불과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1집부터 4집까지 각 앨범당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4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2집은 150만장을 돌파, H.O.T.가 데뷔 2년 만에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했다. H.O.T.를 시작으로 팬덤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았고, SM엔터테인먼트는 이후 아이돌 프로듀싱을 선도하는 K-POP 대표 기획사로 우뚝 섰다. H.O.T.는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SM엔터테인먼트의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H.O.T.의 멤버 강타는 지금도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이수만의 제안을 받아 2005년부터 현재까지 이사로 재직 중이다.

 

보아(BoA)

SM엔터테인먼트가 자랑하는 아시아의 별.

SM엔터테인먼트가 30억 여원을 투자한 신비 프로젝트를 통해 철저히 기획, 육성된 것으로 유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오빠를 따라 오디션에 갔다가 발탁된 뒤 3년 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 데뷔 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일본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익혔다. 

2000년 정규앨범 'ID; Peace B'로 데뷔한 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일본 레이블사 에이벡스와 계약하며 2001년 동명의 데뷔 싱글을 발매했다. 데뷔 2년 만인 2002년 SBS 가요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가수 최초로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한일 양국을 호령하며 '아시아의 별'이라는 수식어를 얻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미국에도 진출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고, 현재는 연기에도 도전하며 열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로서도 활약 중이다. 특히 이수만은 보아를 두고 "보아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SM은 없다"고 표현할 정도. H.O.T.가 SM엔터의 해외진출을 모색케 했다면, 보아는 이를 본격적으로 실현시켜준 셈이다. 이를 통해 이수만은 음악 콘텐츠를 도맡는 총괄 프로듀서로서 보다 더 발돋움할 수 있었다. 

 

동방신기

명실상부한 SM엔터테인먼트의 대들보. 

2003년 12월 26일 SBS '보아&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페셜'을 통해 5인조로 첫 무대를 가진 뒤 2004년 2월 7일 정식 데뷔했다. 데뷔와 동시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수만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2의 아이돌 전성시대를 연 그룹으로도 꼽힌다. 데뷔와 동시에 신인상, 본상을 휩쓰는 건 물론 데뷔 2년 만에 대상을 수상하며 인기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에도 데뷔해 큰 인기를 모으며 한국 그룹으로는 최초로 도쿄돔에서 단독 공연을 갖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동방신기 멤버 영웅재중과 믹키유천, 시아준수 등 3명의 멤버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탈퇴를 선언, 그룹은 결국 분할되게 된다. 이후 멤버 충원을 고민하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2인조로 그룹을 유지하기로 결정, 지금의 동방신기 체제를 갖췄다. 지금까지도 SM엔터테인먼트 전체 매출액의 1, 2위를 다투는 등 거액의 매출을 올리며 회사 내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유영진

SMP(SM Performance)의 창시자이자 이수만의 음악적 동반자.

1989년 MBC 무용단에 합격해 현진영과 와와 등과 어울리며 이수만과도 인연을 맺었다. 1993년 데뷔앨범 '그대의 향기' 발표를 시작으로 알앤비 가수로 활동하다 1996년 H.O.T. 1집 '위 헤이트 올 카인즈 오브 바이올런스'(We Hate All Kinds Of Violence)를 프로듀싱하며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 

H.O.T.의 1집부터 4집의 음반 프로듀싱은 물론 S.E.S 1·3·4집, 신화 1·2·3·4집, 플라이투더스카이 1·2집과 보아 1집 등을 프로듀싱하며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색을 자리매김 시켰다. 특히 사회비판의 메시지를 강렬한 록 비트로 담아내어 표현한 'SMP'가 큰 성공을 거두며 아이돌 그룹의 음악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강타, 신혜성, 시아준수 등 SM엔터테인먼트 출신 그룹 리드보컬의 창법 역시 유영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색의 초기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김영민

SM엔터테인먼트 총괄 사장. 전략적 동반자.

1999년 매니저로 입사해 사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 입지전적 인물. 이수만이 SM엔터의 프로듀싱을, 김영민은 SM의 살림살이에 해당하는 경영 전반을 맡고 있다.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것을 계기로 보아의 일본 진출 프로젝트에 참여, 에이벡스와의 계약을 이끌었다. 에이벡스와의 인연은 이후 동방신기로까지 이어지며 SM엔터테인먼트 표 K-POP이 일본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05년부터는 회사 경영을 실질적으로 맡아오고 있다. 최근엔 음악을 '듣는 것'만이 아닌 디자인과 비주얼, 기획 등 총체적인 브랜딩의 수단이자 대상으로 보고 여러 사업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이수만의 플랜을 보좌하며 회사의 경영을 책임진다.

 

NCT

이수만이 직접 밝힌 'SM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미래'.

무한 확장이라는 개념을 두고 있는 아이돌 그룹.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개방성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하나의 형태로 규정되지 않는 만큼 다양한 그룹을 구성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과거부터 이수만이 수없이 시도해 온 로테이션 그룹의 현실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수만은 지난 2016년 'SM타운-뉴 컬처 테크놀로지, 2016'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NCT를 "한류의 3단계를 이끌 핵심발전 기술력을 적용시킨 보이그룹"이라고 소개했다. NCT라는 브랜드 하에 서울, 도쿄 등 각 도시를 거점으로 각각의 팀이 데뷔하며, 하나의 곡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 각 나라 언어로 동시 발표된다. 팀을 초월한 컬래버레이션 유닛도 생성된다. 팀 멤버는 각자 출신지와는 상관없이 꾸려진다. 멤버 변동이 자유롭기에 멤버 수나 변화 양상은 무한대다. 현재까지 중국 유닛 NCT U와 국내 유닛 NCT127, NCT드림 등이 데뷔한 상태다. 이수만은, 과연 로테이션 그룹이라는 그의 영원한 꿈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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