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 / 사진=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어머니,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가히 신드롬적인 인기다. 그가 한 대사들은 수많은 패러디로 양산됐다. JTBC 금토드라마 ‘SKY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으로 분한 배우 김서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역대급 인생작을 남겼다. 극 중 캐릭터를 섬뜩할 정도로 완벽히 살려낸 김서형의 열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회 화제가 됐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올백머리와 올 블랙 슈트, 단호한 말투와 살아있는 눈빛. 본인조차도 “내가 김주영인지 김서형인지 모르겠던 순간이 있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메소드 연기를 펼쳤던 김서형. 데뷔 25년, 그의 연기는 더욱 만개하고 있었다.

Q. 요새도 이런 시청률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에요. ‘SKY캐슬’의 성공, 예감하셨나요(웃음).
김서형
: 적당히 잘되겠지 싶었어요. 종편에서 10%만 나와도 잘된 거라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시청률이 너무 잘 나오니 부담이 됐어요. 시청률을 보고 다들 암암리에 더 열심히 하더라고요(웃음). 너무 힘이 들어가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평안해지려 노력했죠.

Q. 첫 회가 1%대의 시청률이었어요. 실망했을 법도 한데.
김서형
: 1회 말미의 2회 예고를 보고 이건 잘되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저렇게나 잘 찍어줬어?’라고도 생각했고요(웃음). 연기를 잘하면 저렇게까지 찍어주는구나 싶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저렇게 때깔 좋게 찍어주면 연기할 맛이 나겠다 생각했죠. 회마다 영화를 찍는 것 같아서 늘 기대하고 준비도 많이 했어요.

Q.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였어요.
김서형
: 저도 보면서 제 자신이 무섭더라고요. ‘마왕’을 틀어놓고 앉아있던 장면을 볼 땐 ‘김서형은 어디갔지?’ 싶었어요. 14부에서 나오는 펜트하우스 내용을 10부쯤에 미리 찍어놨는데, 중요한 장면을 쪽대본으로 찍자니 걱정이 컸어요. 잘 안 내는 NG도 냈을 정도로요. 그런데 방송을 보고 김서형은 없구나, 저건 김주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 인생 중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보면서도 김서형을 잃었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나 힘들었구나 싶었고.

Q. 어떻게 힘들었나요.
김서형
: 저조차도 제가 김주영으로 보이니까. 제가 몰입해서 잘한다거나 그런 개념이 아니고, 김서형이 안 보였던 게 놀랍더라고요. 그리고 김주영이라는 여자가 가진 사연과 그 사람 자체가 저를 힘들게 했어요. 김주영은 늘 모든 걸 예상하고 일을 벌어지게 하는 인물이죠. 그런 김주영을, ‘제가 어디까지 알고 또 예상하고 있어야 하지?’라는 근원적인 궁금증이 늘 드는 거예요. 늘 헷갈리는 지점이 나왔지만 그게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아니었죠. 하지만 제겐 중요했어요. 사건을 던져주고, 난 다 알고 있었다는 그런 것. ‘김주영이라는 사람은 저랬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야 하는데 제가 아는 건 한계가 있는 거잖아요. 거기서 오는 갭 차이가 컸어요.

김서형 / 사진=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Q. 김주영은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많았어요. 그런 면에서 주고받는 연기에 대한 갈망도 컸을 것 같아요.
김서형
: 저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TV로 보고 오는 건데, 그들이 어떤 연기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는 그들이 이랬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해요. 그게 김주영만 바라보는 제 입장에선 결국 답답함인 거거든요. 속내를 다 알고 예상해야 하는 그 지점이 너무도 간결했기 때문에, 김주영은 모든 걸 수습할 수 있는 여자지만 김서형은 김주영을 따라가기에 모자란 사람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물어보면 감독님은 “서형 씨가 느끼는 게 맞을 거예요”라고 해요. 그 모호한 답은 뭐냐고요(웃음). 그래서 말했죠. “감독님은 김서형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요”라고요. 잘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김주영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저보다 너무도 위에 있는 여자니까. 긴장감을 보여줘야 하는 그런, 장악력은 저 역시도 따라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Q. 배우로서 느꼈을 고민이 처절하기까지 보여요.
김서형
: 감독님이 “200% 잘하고 계신 거 알죠?”라길래 제가 그랬어요. “200% 잘하려고 노력을 하는 거예요”라고요. 다른 배우들은 다 가정 속에 속한 캐릭터라 연기로 소통이 가능하지만 저는 혼자서만 연기해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가 늘 궁금하고 불안했죠. 쫑파티 때 작가님이 힘들었냐고 물어보면서 절 믿었대요. 하지만 저는, 혜나를 들이고 나서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예요. 보는 사람들이 제 연기나 역할이 똑같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감독님께 잘 모르겠다고 하니 10분만 쉬고 오라길래, 그냥 현장에서 찍으면서 다시 찾겠다 했어요(웃음). 그래서 현장을 가니까, 되더라고요.

Q. 외로웠을 것 같아요.
김서형
: 그게 곧 김주영이었나봐요. 눈물이 막 나는 날도 있었어요. 한번은 눈물이 너무 심하게 나서 2시간이나 일정이 밀린 적이 있는데, 오나라가 언니 운 거 소문 다 났다고, 왜 울었냐는 거예요(웃음). 그러더니 언니 잘하고 있는데 왜 우냐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김주영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김서형 / 사진=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Q. 연기도 연기지만, 자로 잰듯한 스타일링도 많이 회자되는 포인트였어요.
김서형
: 전문직인 만큼 바지에 재킷, 블라우스 같은 똑 떨어지는 스타일을 생각했어요. 힐은, 염정아 언니가 저보다 커서 신을 수밖에 없었고요(웃음). 신지 않으면 언니를 올려다 봐야하는데, 그게 캐릭터적으론 안 맞으니까. 그런 다음에 두 가지를 생각했죠. 올 블랙으로 가거나, 혹은 그게 뻔해보일 수도 있으니 다른 ‘SKY캐슬’ 엄마들처럼 화려하게 입거나. 계속 고민하다가 두 개 다 보냈는데, 감독님 생각은 올 블랙이었어요. 목티도 포기할 수 없었죠. 한서진(염정아)을 만날 때 흐트럼 없이 목이 서 있기를 바랐거든요.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보니 핏팅도 기본 4~5시간씩 걸렸어요. 원단까지 다 봤거든요.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장르물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연기 톤에도 긴장감을 더 보일 수 있게 하려 했고요.

Q. 연출도 늘 화제가 됐죠. 매회 파격 엔딩 역시도 화제였고요.
김서형
: 연기하는 배우들조차도 어떻게 전개될지 생각 못 했어요. 네티즌들이 예상하는 내용들도 다 보고 그랬는데, 그게 다 빗겨가니 재밌었죠. 작가님이 머리꼭대기에 있구나 싶었고.

Q. 김주영은 악역일까요, 아닐까요.
김서형
: 케이(조미녀)를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인생을 투영한 거라면, 케이에겐 악역이 아니겠죠. 하지만 결과물이 그렇게 보이면 악역일 수도 있는 거고요. 저는 제가 악역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사실, ‘SKY캐슬’은 다 상처 받은 사람들의 얘기잖아요. 특히나 김주영은 과거에 한서진과 같은 길을 걸었어요. ‘너희가 아무리 잘난 짓을 해도 내 앞에선 다 웃긴 것들이야’라고 생각하는 건, 김주영의 열등감과 패배감이라고 생각해요.

김서형 / 사진=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Q. ‘SKY캐슬’은 초반부터 여자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는 드라마라 더 좋았다는 반응이 컸어요.
김서형: 사실 ‘SKY캐슬’은, 가정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예요. 다만 아빠는 일하러 나가 있고 엄마가 집에서 케어하고. 그런 게 현실이기 때문에 여자가 주도한 극이 된 거죠. 개인적으로는 여자 배우라는 말은 쓰기 싫지만 굳이 성별을 나눈다면, 여자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많긴 했어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왜 ‘SKY캐슬’에 주목했을까요? 그건, 여자들이 이렇게까지 뭉쳐서 나온 게 드물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SKY캐슬’은 가정의 이야기예요.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죠. 처음에 여자 배우로 홍보가 됐던 건 사실이에요. 뭐, 그래야 했나 보죠(웃음).

Q. 김서형 하면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바로 떠올라요. 그런 역할로도 주로 활약했었고요. 이에 대한 우려의 지점 혹은 만족감이 있는지 궁금해요.
김서형
: 그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는 걸요(웃음). 카리스마 이미지는 좋아요. 지금의 김서형이 있는 이유죠. 그걸 밀어낼 필요는 없지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저도 아직 제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모르거든요. 20년 넘게 해도 늘 어려운 게 연기예요. 겁나고 두렵죠. 쉬운 게 아니라 어려워져요. ‘그 정도 연기경력이면 쟤는 해내야 하잖아’라는, 당연한 기대심리가 있잖아요. 후배들도 연기를 참 잘하는데, 우리가 더 잘 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이 있죠.

Q. 이미 꾸준히 잘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로서는 고민이 많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기대를 충족한다는 건 늘 어려운 부분이죠.
김서형
: 맞아요. 카리스마라는 게 저를 이렇게 만들어줬지만 저도 제가 ‘SKY캐슬’의 김주영이나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를 이렇게 해낼 줄을 몰랐거든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겁이 나죠. 기대하는 것들과, 내가 어떻게 그 캐릭터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는 제게도 역시 도전이니까요. 모든 캐릭터가 카리스마 있다고 해서 그와 비슷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 나 스스로 나를 답습하기 싫다는 생각. 하지만 나를 밀어낸다고 해서 제가 완전히 밀려나지는 건 아니잖아요. 제 웃음소리는 뻔한데, 어떻게 김서형처럼 웃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평상시의 저를 ‘0’으로 만들려고 해요. 작품할 때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100만큼 해내려면 에너지가 그만큼 많이 소비되니까요.

Q. 그렇게 늘 고민하는 덕일까요? 매번 인생 캐릭터를 만든 것 같아요. 신애리도 그랬고, ‘굿와이프’의 서명희, ‘기황후’의 황태후, ‘자이언트’의 유경옥, ‘샐러리맨 초한지’의 모가비도, 그리고 이번의 김주영도 그랬죠.
김서형
: 저는 캐릭터 복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제가 아니까 영특하게 해낸 거죠(웃음). 저도 내로라하는 선후배 사이에서 버텨야 하니까 제 머리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왔어요. 이번 작품은, 김주영의 완급 조절이 어려웠어요. 그리고 대본을 기다리는 게 힘들었죠. 김주영이라는 여자의 폭이 너무도 컸거든요. ‘자이언트’ 때에는 이덕화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는 게 감당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그런 역할들이 다 도전이었어요. ‘자이언트’는 ‘아내의 유혹’ 신애리를 마치고나서 1년 뒤였어요. 신애리 같은 역할 외에도 또 다른 저를 연기로서 보여드릴 수 있던 게 ‘자이언트’였고요. 계속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만난 것 같아요. 힘들긴 했지만 잘했다고 얘기해주니까 배우로서 복이 있는 사람인 거죠. 노력하니 또 과대평가도 받고요(웃음). 저 역시도, 배우로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제 자신을 꺼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지점들을 사람들이 더 빨리 발견해준 건 고마워요. 과대평가를 해준 덕에 지금 이 작품도 한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복 받은 사람인 거죠.

김서형 / 사진=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Q. 작품을 위해 ‘0’으로 있다가 작품을 마치면 너무 공허할 것 같아요. 인간 김서형으로서 어떻게 재충전을 하나요?
김서형
: 그냥 다른 분들과 다 똑같아요. 저도 예술이니 뭐니 다 떠나서 그냥 직업란을 보면 배우니까, 그걸 빼면 다른 모든 분들과 같아요. TV에 나올 때나 공인인 거죠. ‘0’으로 최대한 빨리 가는 방법은 반려견과의 시간이에요. 함께 산책만 해도 금방 저는 ‘0’이 되죠. 영화를 한꺼번에 보거나 음악만 틀어놓고 하루 종일 있는 때도 있지만, 반려견과 함께 하는 시간이 원래의 김서형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에요.

Q. 그렇다면, 배우 김서형으로 다시 만날 작품은 정해져 있을까요.
김서형
: 미리 찍어둔 ‘미스터 주’라는 영화가 있어요. 동물과 소통하는 이야기인데, 우리 나라에 이런 대본이 또 있을까 싶어서 참여했죠. 저도 힐링 받고 싶었고요. 그래도 일은 일이었지만요(웃음). 그래도 이런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신기해 하고, 그게 시발점이 된다면 여러 영화가 전폭적으로 오픈되지 않까 싶어서 참여했어요.

Q. 지금 그 말로, 새로운 것에도 주저 않고 도전하는 편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김서형
: 그럼요. 저는, 언제나 저를 시험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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