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변화 그리고 나아갈 방향’ 좌담회에 참석한 서지현 수원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사진:구혜정 기자

미투 1년을 맞이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좌담회 자리에서 서지현 검사는 "성범죄는 개인의 범죄가 아닌 집단의 범죄"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적인 은폐와 2차 가해 등 피해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현 검사는 29일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변화 그리고 나아갈 방향’ 좌담회에서 이와 같이 밝혔다. 이날 자리에는 지난해 대한민국에 미투운동을 촉발시킨 서 검사뿐만 아니라 각계 미투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해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짚어봤다. 법조, 예술, 정치, 체육, 학교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법적·제도적 보완책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어제(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묵념을 하고 좌담회를 시작했다.

사회를 맡은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정춘숙 위원장은 "매우 의미있는 좌담회라고 생각한다. 작년 이 때 서지현 검사로 시작해서,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라며 좌담회 시작을 알렸다.

상사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는 "2018년 1월 29일 JTBC에서 인터뷰를 한게 딱 1년 전이다. 진실을 밝히는 길이 너무나 멀고 어두웠다. 한명의 검사로, 한명의 피해자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짐을 이제 와서야 느낀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서 검사는 "그저 검찰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검사는 성범죄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지적하고 조직적 은폐, 2차 가해, 언론의 부적절한 역할 등이 피해자들을 고통 속에 빠지게 했다고 강조했다. 서 검사는 "지난 1년간 입을 연 피해자, 공익제보자로서 살며 느낀 고통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며 "고통의 원인은 조직적 은폐, 2차 가해, '피해자다움'에 대한 가혹한 요구, 피해를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언론이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폭로 이후 이어진 2차 가해에 대해 서 검사는 분노를 표했다. 서 검사는 "미투를 폭로하기 전에 2차 가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폭로 이후 2차 가해가 이어졌다. '정치를 하려 한다'는 음모론부터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다' 등 2차 가해가 검찰과 법무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2차 가해를 없애지 못한다면 성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 다움을 강조하는 사회와 이를 앞장서고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지적했다. 서 검사는 "또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피해자 다움'에 대한 강요다. 이 사회는 지나치게 범죄자들에게 관대하고 피해자들에게 고통스러운 모습만 강요한다. 가해자 다움 따위는 없다. 부디, 가해자, 범죄자들에게 '가해자 다움'을 강요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 서 검사는 "대부분의 언론은 피해자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피해자들을 성적인 흥미 대상으로 소개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데 앞장섰다. '피해자 다움'을 이끈 것도 언론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집중했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지현 검사는 결국 공동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검사는 "성폭력 피해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공동체로 인하여 입을 열지도 못한채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다"라며 "결국, 공동체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범죄는 결코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집단적인 범죄였다. 약자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홀로코스트였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비정상적인 시대는 끝내야 한다. 미투는 특별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은 성범죄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것, 가해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 비정상적인 시대는 끝나야 한다. 잔인한 공동체는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좌측부터 연극배우 송원 씨, 젊은빙상인연대 권순천 코치, 서지현 검사,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정춘숙 의원 사진:구혜정 기자

한편, 이날 좌담회에는 서지현 검사뿐만 아니라 예술, 체육, 학교 등 각계 분야에서 모인 미투운동 관계자들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화예술계 미투를 폭로한 연극배우 송원 씨는 "정치권과 정부가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안에 많은 관심이 있지만, 지역 문화예술계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지난해 미투로 세상이 들썩일 때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무섭도록 조용했다. '한다리 건너 다 안다'라는 이 말은 (지방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무섭게 다가온다.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해자와 이해관계로 얽혀있고, 혹은 생계와 연관되기도 했다"라며 "지역의 폐쇄성과 학연·지연이 얽힌 가해 행위자의 두터운 이해관계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극배우인 송원 씨는 전북 지역에서 극단 활동을 했으며 지역 유명 연출가에게 성폭력을 당했었다고 지난해 2월 폭로했다. 

스쿨미투 집회 기획자인 양지혜 씨는 "스쿨미투는 학교의 수직적 위계와 부당한 권력을 드러내는 학생들의 주체적인 고발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1년간 고발자들은 2차 가해와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학교·교육부 등의 대응을 마주해야 했다"라며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와 성차별적 교과과정 전면 변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 법제화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젊은빙상인연대 권순천 코치는 "체육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에는 많은 걱정과 용기가 필요했다. 평생을 종목에만 투자하는 선수들은 2차 보복이 두려워 누구 하나 앞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다반사이다. 피해 사례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운동을 그만둔 사례도 있다"라며 "정부에서 인권특별조사단 등을 통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제는 운동선수가 운동선수 답게 훈련장소에서 땀을 흘리고 마음편히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사실 피해 여성들의 말하기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제야 듣는 사람들의 귀가 좀 열렸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피해자다움을 요구받고 형사사법 절차에서 명예훼손, 무고죄 역고소 등 2차 피해를 받고 있는 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형법 전문가인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으로 금지시켜야 하는 성폭력이란 성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인 행동들을 말한다.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정립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며 “비동의간음죄 신설과 갑·을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에 대해 근본적인 처벌을 강화하는 형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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