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그 후...‘1991 봄’의 이야기
‘1987’ 그 후...‘1991 봄’의 이야기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9.01.23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네이버 영화 스틸컷

모두가 이제 투쟁은 끝났거니 했다. ‘1987’을 겪고 일터로 학교로 각자 돌아가던 1991년. 그런데 그해 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젊은이들이 단 한 달 만에 11명이나 목숨을 잃어야 했던 곡절이 있었을까?

당시의 사연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1991 봄’이 지금 조용히 상영 중이다. 물론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전국을 돌며 예술영화관에서 단관 개봉일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갖는 무게와 의미는 다른 영화완 견질 수 없다. 영화는 ‘1991년의 봄’에 벌어진 기막히고 참담한 한 달을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문명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광풍과 협잡과 왜곡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풀어낸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우리는 기어코 대통령 직선제라는 정치적 과실을 얻게 되었다. 박종철, 이한열 등 학생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그나마 쟁취한 절차적 민주화였다. 그러나 누구 말마따나 87년 겨울에 치러진 대통령 직선제는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민주화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은 합법적 선거 절차를 거쳐 탄생한 정부를 분하고 원통했지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사독재권력은 여전히 비합법적인 폭력을 통해서만 권력을 유지 관리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지 2년인 1991년. 얼기설기 맞춰진 불안했던 침묵의 평화는 폭발한다.

많은 국민들은 이제 데모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새로운 정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연다는 노태우를 좀 참고 기다려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학가는 여전히 뒤숭숭했다. 전면적인 군사독재정권과의 싸움은 끝났지만, 사회 전반 곳곳에 뿌리내린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는 여전히 강고하게 버티고 있었고 개별 사회부문에서 이런 모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이해와 정당한 권리에 기초한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은 어찌 보면 나올게 나온 대 사회투쟁의 첫 번째 이슈였다.

명지대생 1학년 강경대가 학교로 진입한 경찰의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절명한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국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아직 잔치는 끝나지 않았고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따위를 운위할 단계는 아니구나 하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성균관대 김귀정 학생이 시위 도중 숨을 거둔 것을 포함 11명의 학생이 한 달 사이에 국가권력의 부당한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싸웠다.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밖에는 없기에….
권력은 누군가 배후 조종자가 있어 학생들이 대기표를 받아가며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고 순서대로 분신하고 있다고 여론을 몰아간다. 곧바로 서강대생 김기설이 분신하며 남긴 유서를 당시 전민련 간부인 강기훈이 유서 대필을 하였고 자살을 부추겼다고 발표한다. 이 사건으로 강기훈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엄청난 상처와 고통에 시달린다.

1991년 봄에 대학 신입생이었던 권경원 감독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중심으로 자신의 첫 영화인 다큐멘터리 ‘1991, 봄’을 만든다. 이 사건은 자주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졸라가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나는 고발한다”의 필화사건과 비견되곤 한다. 내용인즉, 유대인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문서가 군사 암호와 일치하고 글자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지목된다. 프랑스 군부는 보불전쟁 패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희생양 또는 전범을 필요로 했고,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는 그러한 희생양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드레퓌스는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강제로 불명예 전역된 뒤, 섬으로 유배된다. 그로부터 2년 뒤, 우연한 기회에 진짜 간첩은 밝혀지지만, 여전히 뒤레퓌스의 무죄 주장은 묵살된다. 하지만 프랑스의 양심적 지식인에 의해 진실은 밝혀지고 뒤레퓌스의 이름은 양심에 따라 진실을 밝히는 행동에 대한 일반명사로 지칭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뒤레퓌스의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당시 강기훈을 기소했던 곽상도 검사는 국회의원으로 버젓이 활동 중이고 강기훈은 오랜 싸움에 지쳐 위암을 얻고 투병 중이다.
‘1991년 봄’은 우리에게 여전히 과제를 떠안겨준다. 에밀졸라가 부르짖었던 양심의 회복과 진실의 힘이 올봄에는 보여지길 기대하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