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송강호, '역린'의 현빈 얼굴 창조한 조태희 분장감독의 집념(인터뷰)
'사도'의 송강호, '역린'의 현빈 얼굴 창조한 조태희 분장감독의 집념(인터뷰)
  • 배선영 기자
  • 승인 2019.01.10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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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분장 조태희 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하늘분장 조태희 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영화 '사도' 속 영조(송강호)의 얼굴이 매끈하고 단정했다면, 아들까지 죽음으로 향하게 만든 그의 깐깐한 고집이 잘 표현됐을까.

그야말로 기(氣)라고 밖에는 표현못할 영화 '남한산성'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을 생생하게 전달한 것에는 배우 김윤석과 이병헌의 연기도 있었지만, 이들의 수염 한올한올과 관자에도 실은 캐릭터들이 다 숨어있었다. 이런 영화의 얼굴들을 배우들만큼이나 고심한 조태희 분장감독이 18년만에 큰 일을 쳤다.

매번 굵직한 사극의 엔딩마다 걸린 조태희라는 이름이 궁금해 직접 그가 하는 일을 더 들여다 본 것은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개봉 무렵이었다. 시작은 중전인 한효주의 민낯이 신선해 그 이유를 쫓으려 한 것이었는데, 예상 밖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참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사동의 좁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었다.

시간이 더 흘러, 조태희 분장감독은 2017년 법인을 차려 직원을 고용했다. 사무실의 규모도 제법 커졌다. 영화 산업의 특성상 급여 등이 안정적이지 않아 직원들을 고용해 4대보험까지 챙기고 있다는 그는 그 즈음 "사고를 칠 수도 있다"는 말을 넌지시 했었다. "자세하게 말은 못하겠지만, 좀 더 명확해지면 공개하겠다"던 그의 '사고'는 2018년 말에서야 베일을 벗었다. 바로 그 자신의 18년 분장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일이었다.

몇 편의 드라마를 거쳐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시작으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역린', '사도', '남한산성', '안시성' 등 굵직한 사극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으니 그의 분장사(史)는 국내 사극의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의 지하 4층부터 지하1층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전시임에도, 그가 10년 동안 보관해온 작품을 전부 다 전시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무려 500여 작품이 이곳에 있다. 그 작품들을 쭈욱 둘러보고 나오면 지난 10년의 그의 삶이 스쳐지나간다. 무심코 지나갔던 영화의 얼굴들을 완성해낸 스태프들의 수많은 집념들을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얼굴 창조전'이라는 타이틀의 이번 전시는 4월23일까지 이어진다. 장기간의 전시 이후, 조태희 분장감독은 지방으로까지 전시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궁극에는 그의 모든 전시품들을 관객들 누구라도 언제든지 와서 볼 수 있는 전시관을 세우고 싶은 꿈도 있다. 

조태희 분장감독 사진. 구혜정 기자
조태희 분장감독 사진. 구혜정 기자

-일단, 이런 대규모 전시를 기획한 이유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
영화 컨텐츠로 보여지는 것들 외에 그 속의 또 다른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분장은 더더욱 잘 알지 못하기에, 분장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또 전시를 보고 나오면 영화 몇 편을 보고 난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영화란 것은 분명 추억이 존재하지 않나. 영화를 관람했을 당시에는 실루엣처럼 지나간 것들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저렇게 많은 공정과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관계자들, 동종 스태프들 반응이 가장 좋았을 것 같다.
너무들 좋아한다. 그리고 '미쳤다'라고도 많이 한다(웃음). 이걸 대체 어떻게 사비로 한 거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그래도 정말이지 대부분 너무 좋아하고 반가워한다. 실제 전시회도 많이 찾아왔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전시회였다. 저 많은 전시품들을 그동안 어떻게 보관해왔는지가 가장 놀라웠다.
10년 가까이 보관한 것들인데, 정말 쉽지 않았다. 사무실을 몇 번 옮기면서 이들을 보관하는 창고도 여러번 옮겼다. 그때마다 평수를 넓혀야 했다. 또 변질을 우려해 지하는 절대 못가고 지상으로만 10년 동안 이동했다.

-2년 전쯤에 하늘분장 사무실의 규모가 꽤 커졌다. 그제서야 보관이 좀 용이해졌을 것 같은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늘 전시품 창고는 따로 얻었다. 지금 사무실에도 다 보관을 못한다. 그 건물 옆에 창고를 별도로 얻었다. 정말 그동안의 임대료만 따지면 집을 몇채라도 샀을 것이다.

-집념이라고 밖엔 설명을 못하겠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동력이 무엇일까.
정말 집념과 집착 사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집대성 하고 싶었다.  물론 어느 순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놓을 수 없었다. 꼭 이렇게 전시를 열어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마침내 하고 나니 나 역시 놀라웠다. 매일 아침에 와서 전시회장을 한바퀴 도는데, 그 때마다 내가 이것을 해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랐다.

-관객들 반응도 궁금하다. 일단 영화 속에서는 그저 지나치고 말 예컨대, 영화 '남한산성' 인물 속의 수염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 번 보게 되면 재미있어 할 것 같다.
영화봤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알게 되니 신기해하신다. 우리 전시는 결국 영화를 더 풀어놓은 것 아닌가. 다들 '와, 이렇게까지 했었구나' 하시더라. 심지어 영화 전공자들도 머리에 달려있는 비녀나 장식은 소품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분장사가 다 의미를 담아 제작한 거였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결국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전시였다. 사실, 영화계 관계자들 역시도 놀라워 하는 대목이 있다. 특히 스케치까지 해서 준비를 하는 과정에 대해 놀라워한다. 보통은 패션 화보 찍을 때처럼 화보나 잡지를 레퍼런스로 캡처해서 과정이 진행되는데 한 인물에 대해 정밀묘사를 하는 스케치까지 했던 것에 놀라워 하더라.

-그러고보면, 엄청나게 꼼꼼하고 집요한 성격일 것 같다.
아. 절대 아니다. 나는 정리를 잘 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말 인생에서 딱 저것만 정리한 것이다. 꼼꼼함이 떨어지니까 더 챙기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리고 영화 일과 병행하다보니까 놓친 것도 많다. 영화는 영화대로 전시는 전시대로 그렇게 10년 동안 살면서 늦잠 한 번 자본 적이 없다.

-전시를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전시 준비를 해왔던 사실은 몰랐다.
10년 전부터 계속 전시를 목표로 두고 전시와 관련된 작업을 했다. 본격적으로 돈까지 들여 작업한지는 8년이 됐다. 사서 만들고 실패하기도 하고. 특히 전시품들의 받침 목재들도 최고급 수입 목재로 크기를 자르고 계산하고 그렇게 오래오래 준비를 해왔다.

조태희 분장감독. 사진. 구혜정 기자
조태희 분장감독. 사진. 구혜정 기자

-인상적이었던 것이 전시품 중에 배우들 이름이 새겨진 메이크럽 브러쉬가 있었다. 주연배우들에게도 뜻깊을 일인데, 조연배우들 것까지 있었다. 배우 입장에서 이런 것들은 배려로 느껴질 것이다.
일단은 위생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첫 작품을 하는데 분장하는 브러쉬들을 이 배우에게 썼다가 저 배우에게 썼다가 하더라. 위생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배우 전용을 만들어야 겠다 싶었다. 사실 한 번만 나오고 마는 배우들에게는 그렇게까지 하기 힘들지만, 4-5회차 까지 나오는 분들 것은 이름을 새겨 전용 브러쉬를 만들어서 썼다. 그렇게 한 번 시작을 했는데, 또 이 작품이 끝나도 그 배우를 또 만나게 되지 않나. 그러면 그대로 가져가서 쓰면 된다. 이제 거의 200자루가 넘는다. 배우들은 물론 굉장히 좋아했다.

-이런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사실 이번 전시를 수월하게 해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에 전시된 영화 스틸이나 OST들 모두 저작권이 걸려있을테니 말이다.
그건 정말 그렇다. 일단은 이병헌, 한효주 씨 등이 소속된 BH엔터테인먼트 손석우 대표님에게 감사드린다. 아주 흔쾌히 풀어주셨다. 배우 조인성 씨도 그랬다.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했더니 ''안시성'은 제 작품이기도 하지만 실장님 작품이기도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너무 멋진 말이었다. 다른 매니지먼트들도 98%다 허락을 해줬다. 투자배급사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취지의 전시라며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영화사 대표님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저작권을 해결하는데 걸린 시간이 1년이긴 했다. 하지만 결과들이 다 너무 좋았다. 그동안의 노력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영화계에서는 그래도 아티스트로 봐주시는 것 같아 감사드렸다. 이들과의 관계는 정말 하루 아침에 이뤄진 관계들이 아니다. 막내였을 때부터 서로 알았던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직원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팀장이 되고 대표가 되어서 수월해진 측면도 있다.

-18년의 분장생활이 뿌듯해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스스로에게 야박했다. 늘 채찍질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부산 촬영을 하다  하루 쉬면 차를 운전해 서울에 와서 전시 준비를 했다. 체력이 안되니까 휴게소에서 쪽잠도 잤다. 그런 식으로 살았다. 그 고생들이 다 지나갔다. 이제는 좀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다(웃음).

-이번 전시가 끝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 당장의 목표는 순회전이다. 서울에서의 전시 이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도 전시를 하고 싶고 대구나 광역도시를 거쳐  제주까지, 또 해외전시도 목표다. 이번 첫 전시가 잘 돼야 가능할 일이다. 또 나중에는 뮤지엄을 세우고 싶다. 이번에도 내가 가진 모든 전시품들을 다 내놓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업데이트 될 것들이 많을 것이다. 과거 작품은 과거대로 추억이 되고, 영화는 일회성 컨텐츠가 아닌만큼 많은 보여줄 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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