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 스파이더맨이 오랜 시간 ‘어벤져스’에 합류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저작권 때문이었다. 히어로들이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노른자가 되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 자체적인 영화 제작 창구가 없었던 마블 코믹스는 자사의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 판권을 소니에 파는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이후엔 많이들 아는 이야기다. 마블 코믹스는 마블 스튜디오를 런칭, 자체 영화 제작 나섰다. 그리고 2012년 <어벤져스>라는 거대 이벤트를 완성함으로써 히어로 무비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그러나 이 이벤트에 스파이더맨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앞서 말한 저작권 때문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스파이더맨 판권을 돌려받길 희망했지만 소니가 자사에 황금알을 낳아주는 캐릭터를 그냥 돌려줄 리 만무했다. 영원히 고통 받던 스파이더맨은 소니와 마블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서야 극적으로 ‘어벤져스’ 일원으로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관계다. 여전히 스파이더맨 판권은 양사는 물론 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다.

‘저작권 파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지난해 3월에 개봉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팬들 사이에서 ‘저작권 파괴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작품이다. 조커와 할리 퀸, 킹콩과 처키를 비롯해 ‘오버워치’의 트레이서, ‘스트리트 파이터’ 춘리,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 ‘퍼스트 건담’ 건담 등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의 캐릭터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 이 어마어마한 캐릭터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워너 브라스에게 필요했던 것? 기나긴 시간과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워너 브라더스는 저작권 해결에만 3년의 시간을 썼고, 엄청난 로열티를 캐릭터 소유 회사들에 지불했다. 타사 지적재산권(IP) 사용 비용으로 정확히 얼마가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저작권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를 반박하지 못하는 금액이라는 게 알려졌을 뿐.  

이 와중에 등장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이하 <주먹왕 랄프2>)는 지적재산권의 위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는 리트머스지라 할만하다. 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시작으로 2009년 마블 엔터테인먼트, 2012년 루카스 필름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온 거대 미디어 그룹. <주먹왕 랄프2>에서 디즈니는 계열사 인기 브랜드를 대거 투입해 세계 최강 콘텐츠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거침없이 뽐낸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카메오 군단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재미는 충만한데, 그 면면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아이언맨이 도시를 거닐고, <스타워즈> 스톰트루퍼가 정찰을 돌고, <백설공주>의 난쟁이와 <주토피아>의 여우 닉이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라니. 픽사의 ‘이스터에그’를 찾는 쏠쏠한 재미와 얼마 전 작고한 스탠 리의 흔적이 주는 감흥까지. 그렇다. 이건 거대 지적재산권 보유 왕국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초호화 캐스팅이고 설정인 셈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무엇보다, 디즈니가 긴 시간 구축해 온 공주 캐릭터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즐거움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에리얼, 포카혼타스, 티아나 등 대표 프랜차이즈 공주 14인이 자신들의 세계관에서 뛰쳐나와 <주먹왕 랄프2>의 카메오를 자처한다.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물량공세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쌓아올린 공주 이미지의 클리셰를 비꼬는데 망설임이 없다. 즉 여기엔 “공주는 그 후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철 지난 설정도, 전형적인 공주 이미지도 없다. 코르셋 대신 후드티 입은 공주들을 통해 디즈니는 동시대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는 민첩함을 드러낸다. 자사 브랜드들에 대한 자신감은 <주먹왕랄프2>를 관통하는 힘이다.

디즈니, 21세기폭스 IP마저 끌어안다

지난해 할리우드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디즈니의 21세기폭스 인수였다. 픽사·마블·루커스필름을 거느린 디즈니는 21세기 폭스까지 끌어안음으로써 이제 엑스맨은 물론 데드풀, 에일리언, 아바타 등 경쟁력 있는 IP마저 거머쥐게 됐다. 엑스맨과 어벤져스가 만나는 꿈의 대결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인수협상이 조금 더 빨랐다면 <주먹왕 랄프2>에서 ‘병맛’ 유머를 과시하는 데드풀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디즈니의 꿈은 보다 원대하다. 미국 언론은 디즈니가 21세기 폭스와의 ‘빅딜’을 추진하게 된 이유로 점점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1세기폭스가 세계 3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훌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실제로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대한 콘텐츠 공급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훌라’는 통해 직접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의미다. 그 결과물이 바로 올해 출벌하는 자체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레이’다.  

넷플릭스가 미디어 시장의 공룡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플랫폼과 콘텐츠다. 2013년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성공시킨 후 넷플릭스는 경쟁력 높은 콘텐츠에 꾸준히 집중했다. 그리고 이를 자사 플랫폼에 태워 노출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넷플릭스가 쏘아 올린 화살은 미디어 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상황. 그 변화는 디즈니마저 움직였다. 점점 뜨거워지고 OTT 시장. 결국 이 경쟁은 다시금 누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더 매력적인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게 되느냐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리지널 콘텐츠와 IP에 길이 있다.

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