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은 지난 2개월 간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법인을 살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익법인 다수의 지배구조와 투명성, 공익성 부문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도 공익위원회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또, 국내와 해외의 공익법인 관리감독 체계도 상당히 달랐습니다. 이에 정부당국을 취재하고 공익법인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기획을 진행해 온 기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집자 주]

박두준 아이들과미래재단 상임이사 겸 한국가이드스타 연구위원. 이시우 포토그래퍼

국내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위해 힘써온 인물이 있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연구위원이다. 미국 가이드스타를 한국에 들여왔다. 박 연구위원은 아이들과미래재단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실무를 맡기도 해 기업 사회공헌은 물론 공익법인 운영제도 전반에 대해 정통하다. 기획 마무리 단계에서 박 위원과 대기업 집단 공익법인의 특수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기업 계열사 기부금으로 공익사업 운영하는 재단이 많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나?

기업은 재단이라는 형태∙방법을 자주 이용한다. 재단 설립을 통해 기업차원의 기부행위를 하거나 관련 이해당사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러한 사례로 미국의 IBM재단, AT&T재단 일본의 히타치재단, 산토리재단 등이 있다.

흔치는 않지만 이들 재단이 기업자산의 상당 부분을 소유한 법적 소유자가 되기도 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들이 기업재단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주회사가 되기도 한다. 그 예로 독일 대표적 기업 지멘스(Siemens AG)는 2008년 9월 ‘지멘스재단(Siemens Stiftung)’을 새롭게 창설하여, 바이에른(Bayern)과 독일은 물론 유럽연합과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재단설립자 대부분이 개인이다. 창업자 혹은 창업자의 자손들이 개인재산을 기부하여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 재단이 부자들의 세금도피처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기업이 직접적인 ‘지배구조’를 가지는 기업재단을 설립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아니다. 현재 대략 450여 개로 추정되는 기업재단의 숫자 또한 미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기부금 지출 규모가 총자산의 1%대에 불과한 기업 재단이 상당하다.

우선 우리나라 기업재단의 설립단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재단들은 기업 혹은 기업 총수의 사회적 물의를 무마하기 위해-혹은 선제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설립된 경우가 일부 있다.

이 경우 ‘얼마를 출연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어디에 쓰겠다’는 것에는 크게 관심가지지 않는다. 즉 기업재단 설립 당시의 초기 출연금에 대해서는 정부나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지만 일단 설립된 후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기업재단 자산 중 해당 기업 주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기업은 주식을 출연할 경우 주식 출연에 대한 세금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주요 의사결정에서 기업의 손을 들어 줄 ‘백기사’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기업재단은 출연받은 주식을 매각해 공익목적사업에 그 돈을 쓸 수 없고, 배당금으로만 공익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공익사업에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와 대중의 비난을 자초하기도 한다. 세금혜택을 받고 공익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논쟁 끝에 1969년 조세개혁법에서 매년 순자산의 6%를 의무 사용하도록 했고 그 후 5%로 조정되어 현재 실행하고 있다.

-국내 기업재단 공시를 보면 기부금 지출 내역이 투명하지 않은 것 같다. 개선한다면?

기업재단이든 일반재단이든 주요한 공시는 딱 두 가지다. '누구에게 돈을 받았고 누구에게 돈을 썼는가'다. 기업재단의 경우 '누구에게 돈을 받는가'는 제대로 공시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공시 규정에는 2천만원 이상일 경우 명기해야 하는데, 대부분 기업재단에 출연하는 기업은 대부분 그 이상을 출연하기 때문이다.

기업재단은 '어디에 돈을 썼느냐'가 중요하다. 현재 공시 양식을 보면 ‘ㅇㅇㅇ 외 100건 1억원’과 같이 공시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한다면 이 문제는 개선될 것이다.

공시 투명성만 본다면 기업재단이 일반재단보다 투명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전체 공익법인을 기준으로 봤을 때 대기업 주요 기업재단은 회계정보 공시를 잘 하고 있다고 본다.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면, 미국처럼 일반공익법인과 개인, 기업재단 공시 양식이 다른 부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기업재단은 투자수익, 배당이익, 주식보유, 세금납부, 5%의무사용내역 등을 상세하게 별지로 작성해 공시하고 있다.

-대기업 공익법인이 미술관, 공연장 등을 운영하는 것이 정말 '공익사업'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공익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

문화예술에 대한 공익성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사회복지 문제에 대한 공익성은 보편타당한 인권을 기준으로 하기에 사회적 합의가 쉽지만 문화예술 부문은 기호에 따른다. 그래서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 국가대표들에게 병역혜택을 줬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축구를 통해 국위선양이라는 공익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병역혜택을 준 것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반면,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또는 무관심한 사람-은 금메달 하나 땄다고 국민의 의무를 면하게 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반대한다.

기업재단의 문화예술 부문의 공익성은 위에서 언급한 ‘보편타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재단이 지원하는 문화예술 부문의 혜택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받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공익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재단의 문화예술 사업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문화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과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에 소외된 대중들에게 경험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부문이 잘 조화된다면 문화예술사업의 공익성과 책무성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업재단 이사회 독립성 확보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진의 리더십은 재단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단은 이사회 자체라 할 수 있다.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자금을 이사회가 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재단의 힘은 기부금을 배분 결정 과정에 집중되어 있으며 최종결정도 이사회가 내린다. 

재단이사회가 현재 정관에서 부여한 권한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이사회 질을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높여 나가야 한다. 재단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도록 적응력을 키우고, 재단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충분한 자율권을 확보해야 한다.

재단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다루어야 할 과제를 예측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재단의 성실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사회 스스로 이런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재단이사회는 능력 있는 인재, 즉 성실성과 효율성의 상징이라 내세울 만한 인재를 영입할 책임이 있다. 창의성 있는 인재가 특히 중요하다. 시장의 압력에 시달리는 기관들이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와 절차를 도입할 수 있는, 위험과 실패를 각오하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

혹 어떤 재단이사회는 비용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럴 여유도 없이 재단을 세웠는가?'라고 묻고 싶다. 아울러 기업재단에 대한 기업 인력 파견금지, 특수관계인 이사 선임 금지 등의 이사회 지배구조에 기업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들도 준수해야 한다.

또, 재단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재단의 주 역할이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재단의 성과와 효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거의 없다. 기부금의 수혜자도, 잠재적인 수요자도 재단에 대한 비판을 극도로 자제한다. 이런 점에서 재단이사회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어떤 기관의 이사회보다 막중하고 까다로운 의무를 짊어진 셈이다.

재단의 이사회는 재단 그 자체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재단이사진에 관한 교육, 이사회 운영 가이드북도 많지 않다. 이사회 독립성을 위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재단 입장에서 운영 측면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

제도적으로 따졌을 때, 기업재단이 일반재단에 비해 운영상 어려운 점은 거의 없다.

다만, 기업재단 종사자들은 출연기업의 리스크에 같이 영향받는 ‘정치적’인 압박은 있다. 이번 공정위의 대기업 감사에 연관돼 기업재단까지 같이 조사를 받는 것이 그 예다. 물론 우리나라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유로 인하여 기업과 기업재단들이 완전한 독립법인일수는 없지만, 정부∙기업∙재단∙국민 모두가 기업과 기업재단은 독립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과 기업재단의 관계, 사후관리 책임이 있는 정부부처의 역할과 책임을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다.

재단은 소규모 이사회와 직원들이 관리하는 민간영역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재단은 비영리부문이라는 3섹터의 일부로 국가기구도 상업적 조직도 아니다. 재단 자체뿐만 아니라 재단이 지원하는 많은 조직도 국가와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조직과 개인들이다. 이런 특수한 역할 때문에 재단이 가진 책임에 관한 이슈는 재단을 방어적으로 만들었고, 비판자들에게는 공격수단을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사회에서 재단에 대한 연구는 많은 부분이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재단의 사회적 영향력은? 서로 다른 법률체계는 재단의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 사회의 정치구조는 재단운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재단의 이사회 책임성과 재단 스스로 책임의 한계는 어디인가? 재단의 책무성 및 합법성의 한계와 제도개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연구는 정부가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재단 스스로 해야 하는가? 이러한 이슈는 2019년 황금돼지해에도 주요한 논쟁으로 진행될 것이다.
[기업과 재단 그 이후 ①] 박두준 연구위원, "재단은 민간 영역이라는 인식 필요"
[기업과 재단 그 이후 ②] 조 삭스턴 대표, "기부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것 알려야"
[기업과 재단 그 이후 ③] 공익법인 관리 체계 전면적으로 바뀐다
[기업과 재단 그 이후 ④] 기자방담, 클래식 공연이 공익사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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