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12.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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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이 아무리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강조해도 사회를 해체시키면서까지 이를 주장할 수는 없다. 물론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선택의 범위가 확대되면 개인의 효용도 증가하는 것으로 간주해왔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다양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곧 개인의 효용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해왔다. 정보 처리의 한계로 인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면 선택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오히려 효용이 감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면 좋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부와 소득이 증가하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므로 이를 반대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의 확대는 바람직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공진화(co-evolution)를 위해서 불가피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선택과 관련된 이런 논의 외에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측면은 모방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모방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에 합리적 대응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의 모방 심리가 과도하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정보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모방의 사회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예컨대 우리에게 익숙한 쏠림 현상은 모방에 바탕을 둔 사회적 현상인데 정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것은 군집 행동(herd behavior)의 일종으로서 개인적으로 확실한 정보가 없는 경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인식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 일어나 대규모 군중이 특정 방향으로 집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예컨대 뱅크런(bank run)은 대표적인 군집행동으로서 금융시장에서 종종 발생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관찰되는 유행도 일종의 군집행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인지 겨울이 되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릎 이하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을 즐겨 입기 시작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집단에 소외되는 불안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필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롱패딩을 즐겨 입는다는 사실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다. 특히 언론에서 롱패딩에 '국민 교복'이라는 명칭을 붙인데 대해서는 솔직히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다. 단순한 명칭 하나에 웬 호들갑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런 용어를 만들어 널리 알리는 사회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언론은 전부터 별다른 여과 없이 연예인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주목 받은 사람을 지칭할 때 '국민'이라는 단어를 접두사처럼 사용해왔다. 예를 들자면 국민 요정, 국민 배우, 국민 가수, 국민 엄마, 국민 아빠, 국민 여동생, 국민 사위 등 용례가 다양하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의복에까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국민 간식, 국민 주택, 국민 자동차, 국민 냉장고 등 거의 모든 대상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뭔가 떠오르지 않는가? 북한은 일찍이 인민 배우, 인민 가수, 인민 영웅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한과 북한은 오랜 세월 이질적인 시스템을 유지해왔지만 이런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필자는 남한과 북한이 오랫동안 같은 문화적 전통을 공유했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본다. 즉 집단무의식에는 이런 언어 용법에 대한 향수가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오랫동안 공산주의 시스템을 시험해왔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남한에서조차 집단무의식에는 집산주의 내지 전체주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만약 이것이 근거 있는 주장이라면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약간의 사고실험을 해보자. 한국전쟁 이후 미국 대신 소련이 남한을 장악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북한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거의 그대로 재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국민”이라는 접두사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일견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는 언어 현상을 조금 과장해서 언급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강력한 세력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이유에서이다. 우리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런 용어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의 집단무의식에 전체주의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도 해당된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허울뿐인 그런 정치·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정치 시스템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와 경쟁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 시스템을 의미한다. 즉 이런 이상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미국은 현재 금권정치(plutocracy)의 영향 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공산주의 시스템이 해체된 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표방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과두정치(oligarchy)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데 경제적인 면을 보면 이런 성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은 경쟁과 자유계약이다. 경쟁이 쇠퇴하면 자유계약의 의미가 사실상 사라진다는 점에서 경쟁은 자유시장의 미덕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그런데 자유시장을 옹호해온 대표적인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얼마 전 카버스토리로 “경쟁”을 다루었는데 그 이유는 많은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경쟁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이 점점 약화되고 독과점의 위력이 강해지고 있는 현상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특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정보기술 기업들로 인해 이런 추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 생각에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 기술은 그야말로 승자독식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티머시 슈나이더(Timothy Snyder) 교수가 저서 '폭정'에서 지적한 내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슈나이더  교수는 이 책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20세기의 역사로부터 20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 중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현재 미국에서조차 전체주의의 망령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930년대 히틀러의 나치즘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던 언어학자  빅토르 클렘페러(Victor Klemperer)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와 같이 말한다. 클렘페러에 의하면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진 자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식을 이용해 진실을 왜곡시키고 결국 진실을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첫째, 검증 가능한 현실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을 조장하고 날조와 거짓말을 마치 사실인 양 제시하는 형태를 띠는 것이다.
둘째, 샤머니즘적 주문을 이용하는 것이다. 클렘페러가 지적했듯이, 파시즘의 표현 방식은 허구를 그럴듯하게, 범죄를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반복”에 의존한다.
셋째, 마술적 사고, 즉 공공연히 모순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넷째, 부적절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내가 당신들의 대변자다” 같은 즉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주장이 포함된다.

슈나이더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네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것이 미국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남북한의 공존과 번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과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심각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가짜 뉴스(fake news)가 판을 치고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에 의해 여론이 좌우되는 탈진실(post-truth)이 당연시되는 풍토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존립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이 이런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제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집단무의식에는 진정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강력한 동인이 내재되어 있는가, 아니면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바라는 망령이 자리 잡고 있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진실이 존중받지 못하고 막말과 생각 없는 반박이 판을 치는 풍토에서 과연 무엇이 자라나겠는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 그동안의 행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 객관적인 진실을 알려고 노력한 후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도록 노력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단계이다”라는 슈나이더 교수의 경고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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