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아현지사에서 화재가 난 24일. 마포구 소상공인의 전화와 카드결제기는 모두 먹통이 됐다. 구혜정 기자

KT 아현지사 화재 후 약 3주가 흘렀다. 통신은 대부분 복구됐지만 통신장애로 고초를 겪은 소상공인의 피해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KT는 지난 10일 소상공인 보상안을 발표했다. 연 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이 대상이다. KT는 마포구, 용산구 등 피해지역 소상공인이 직접 관내 주민센터에서 피해내용을 접수하도록 했다. KT는 사실확인 후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14일 미디어SR은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장애를 겪은 마포구의 소상공인을 찾았다.

소상공인들은 직접 찾아가 피해접수하는 방식에 어이없어했다. KT 때문에 손해입은 건 자신들인데 찾아오거나 유선상 연락을 주기는커녕 피해자가 직접 찾아가 신청까지 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들은 KT가 최대한 보상해주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태도라며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최소 문자는 보내줬을 거라며 답답해했다. 

몸도 안 좋고 힘든데 주민센터까지 가려니 힘들지

치킨집을 운영하는 60대 A씨는 기자가 'KT 화재'를 입에 담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A씨는 24일 이후 나흘 동안 가게 전화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A 씨의 가게는 배달 주문이 전체 주문의 50%였는데, 배달 전화를 제대로 못 받자 매출은 하루 매출 50%가 떨어졌다. 

A 씨는 이미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 피해사실을 접수했다. 그 과정은 험난했다. A씨가 어느 센터에 가서 신청해야 하는지 아무런 안내가 없었기 때문. 

"주민센터에 갔더니 내가 이쪽 관할 대상이 아니래. 물어물어 다른 곳으로 힘들게 찾아갔지. 나는 나이도 많고 몸도 안 좋아요. 추운데 덜덜 떨면서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느라 힘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피해 입은 건 우린데 왜 우리가 가서 적어줘야 하나."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났지만 차마 동사무소에 있는 KT 직원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는 A 씨. "그 사람들이 잘못했겠어요. 다 위에 있는 사람들 잘못이지." 

 

문자 안내조차 없는데... 뉴스 못 본 소상공인은 어떡하라는 거죠 

빵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B 씨는 KT가 소상공인 피해보상에 너무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KT가 피해 점포에 일일이 연락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KT는 누가 얼마나 끊겼는지 정보를 다 갖고 있잖아요. 우편이든 문자든 KT에서 보내야 하는데. 저도 뉴스 보고 접수하는 거 알았어요. 뉴스를 못 보신 분들은 접수하는 것도 모를 텐데요. 이래놓고 신청 못 한 사람한테 책임을 지우겠죠. 당신 왜 신청 안 했냐면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빵을 만들고 밤까지 영업해야 하는 B 씨지만 시간을 내서 피해접수를 하러 가기로 했다. 

"4일 정도 통신이 잘 안 됐어요. 제 휴대폰, 포스(POS)기, 유선전화 모두 KT였어요. 수기로 장부를 작성해서 팔았죠. 평소보다 20~30% 정도 손해봤어요. 우리는 그날 만들어서 그날 파니까 빵도 많이 남았어요. 다 버렸죠, 뭐." 가게 월세가 비싼 마포구. B씨는 11월 매출이 줄어 월세내기가 걱정된다.

B씨는 KT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큰 기대하지 않아요. 제가 본 KT는 무책임한 기업일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본 피해가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으려면 신청해야죠. 많이 안 해줄 것 같긴 하지만 5~10%라도 받아야지." 

매출 5억원 이상인 소상공인은 손해 안 봤나요?

60대 소상공인 C 씨는 식품판매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가게는 연 매출 5억원이 넘어 KT 화재 피해접수 대상이 아니다. C 씨도 적지 않은 금액을 손해봤지만 KT에 피해보상을 신청할 자격조차 되지 않았다. C 씨도 나흘 동안 카드결제기 통신이 끊겼다. 그의 가게는 주말 매출이 많이 나오는데 하필이면 주말에 끊겼다. 피해는 컸다. 

"연 매출이 5억원 넘는다고 손해 안 본 거 아니잖아요. 연 매출 5억원 이상이라는 건 그만큼 손해액이 크다는 것이죠. 5억원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요."

KT에 대한 C 씨의 신뢰는 바닥을 찍었다. 그느 어차피 배상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KT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혼자 신청한다 해도 안 될 거 같아요. 안 해줄 거 같은데. 힘만 빼는 거죠."

C 씨는 가게를 지키느라 바쁜 소상공인이 직접 가서 접수하는 방식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직접 와서 해야죠. 소상공인들 요즘 (장사가 안 돼) 알바도 내보내고 그러잖아요. 소상공인은 시간이 없잖아요. KT 직원이 파견나와 다닐 만 한데."

소상공인 피해접수, 피해 매출액 적는 란도 없었다

실제 기자가 소상공인 피해접수 서류를 보니 구체적인 피해 상황이나 피해 매출액을 적는 란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KT는 가게에서 이용하는 통신서비스 종류가 무엇인지, 해당 서비스의 통신 두절 시간이 어떻게 됐는지만 적도록 안내했다. 

접수 서류는 2장. 신상과 사업자등록번호, 연락처, 통신장애 기간 등을 적는 한 부와 개인정보이용동의서 한 부다.

KT는 국세청에서 소상공인 영업장의 지난 1년 매출액을 받을 계획이다. KT는 이 자료를 기반으로 위로금을 산정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 소상공인에 구체적인 안내가 나갈 예정이다. 다만, 일일이 위로금을 조정할 것인지 정해서 주는 것인지 세부 지침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접수서류를 본 소상공인도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은표 KT불통사태 피해상인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미디어SR에 "서류를 보고 정말 분노했다. 피해 예상 금액을 적는 란이 없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그저 생색내기용으로 접수받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 위원장은 14일 'KT 불통사태 피해 상인 대책위 기자회견'을 열고 "장사하느라 자리를 비우기도 힘든 소상공인들을 오라가라 하는 것은 피해 접수를 최소화하겠다는 전형적인 꼼수다"라며 "연 매출 5억원 이하와 사업자 등록증이 있는 영업자로 제한해 선별해서 주겠다는 것은 소상공인을 우롱하는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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