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KOSRI) 김환이 연구원] ‘영리 기업이 돈 안되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영리극대화가 기업의 본질이니 이런 말을 들으면 그 기업은 ‘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유업은 다르다. 지난 2000년부터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8종의 특수 분유 제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은 선천적으로 특정성분의 체내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가 결핍됐거나 그 활성이 낮은 질환이다. 1991~2005년 조사에 따르면 4,000~5,000여 명당 1명꼴로 선천성 대사 이상 환자가 발생한다.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의 일종인 ‘페닐케톤뇨증(PKU)’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PKU 환아들은 단백질 성분을 제거한 특수 분유가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수입품에 의존해야했다. 부모들은 캔당 5만~6만원에 이르는 고가 상품을 사야하는 부담을 안았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유업은 PKU 외에도 메틸말론산혈증(MMA), 프로피온산혈증(PPA) 등 희귀질환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이들을 위해 특수 분유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발했다. 까다로운 생산 과정 못지않게 매년 최소 생산량으로 2만 캔만 생산해도 국내 수요가 워낙 적어 1,000~2,000캔만 판매되고 나머지는 폐기처분되는 문제를 안고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특수분유 생산에 나서는 것은 “모든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故 김복용 선대회장의 뜻을 따르려는 매일유업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는게 매일유업 CSR팀 노승수 차장의 얘기다.

노 차장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함께 걸어온 매일유업 사회공헌활동에 담긴 특별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마도 소비자들이 특수 분유를 매일유업의 사회공헌활동으로 첫 손에 꼽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보건복지협회에 특수 분유를 생산원가인 2만~3만원 수준으로 공급해 필요한 가정에 유, 무상으로 전달하고 있어요. 그리고 13년째 매년 여름 환아 가족들을 위해 진행되는 'PKU 가족캠프'를 후원해요. 캠프에서 건강한 아이들이 많아진 것에 감사하죠. CJ에서도 저단백질 햇반을 출시했는데, 저희의 특수 분유 개발로 다른 기업의 활동을 이끌어낸 것도 보람있게 느껴요”

매일유업 노승수 CSR팀 차장

매일유업은 예비엄마교실, 다문화가정 분유지원,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아이들이 다양한 기업 체험활동을 통해 꿈을 찾는 ‘드림 투게더’ 등을 중심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육아 지원이 매일유업의 7가지 사회공헌 분야 중 하나인 만큼, 1975년부터 모자보건을 위해 시작한 어머니 교실은 이미 500여회나 개최됐다. 지금은 예비엄마교실, 부모 교실을 진행하면서 태교, 육아, 문화 관련 정보와 이유식 강의, 공장견학 등 체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매일유업의 특수분유

2007년부터는 다문화가정에 분유를 지원하고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지역의 결혼이민자 예비엄마를 위한 육아교육을 하고 있다. “엄마의 사랑만으로는 아이가 성장할 수 없어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필요한 제품을 지원하고 있어요. 다문화가정을 예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많이 안타까웠어요. 이주민 여성이 타국에서 와서 한국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몸이 불편하거나 실직한 상태인 가정이 적지 않았죠. 생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가 아이들 분유도 4~5스푼 넣어야 하는데 육아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2~3스푼만 넣어 아이에게 우유를 먹여왔어요. 사내에 있는 영양사 선생님과 같이 다문화가정을 방문했는데 한 눈에 그 아이가 영양실조인걸 아시더라고요” 노 차장은 한 아이의 아빠로서 바라본 다문화가정의 어려움과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 많은 공감을 표현했다.

해남 결혼이민자 가정에 분유 지원

매일유업이 유아의 건강에 애틋한 애정과 노력을 기울이는 배경은 무엇일까? 매일유업은 지금이야 분명한 영리 기업이지만, 당초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위해 설립됐다. 한국농어촌공사가 1970년대 초 농가 젖소보급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저리로 빌려줄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낙농공사가 모태다. 이 과정에서 농가의 젖소들이 우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이를 가공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익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기업 모델이 매일유업의 탄생배경인 점이 특별하다. 1997년 IMF 이후 민영화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영리기업으로 전환했다. 조제분유 생산으로 기업 활동을 시작한 매일유업은 사회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 공헌활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매일유업은 지속가능한 활동을 좀 더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확장하기 위해 올 2월 CSR팀을 개설했다.

“이전까지의 활동은 나눔이나 후원에 머물러 수혜자가 한정됐던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CSR팀이 올해 생겼기 때문에 차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이해관계자의 인식을 확대해 나갈 거에요. 특히 내부 고객인 직원이 첫 출발점이죠. 시간이 없어 봉사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는 임직원이 많아요. 이들이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데 초점을 뒀습니다. 그동안 임직원들이 적극적으로 CSR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인센티브나 인사적, 제도적 장치가 없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여건을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CSR팀이 생기고 나서 매일유업이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공헌 전략에 대해 노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공헌 활동에서 나아가 기업 자체의 거버넌스(지배구조)나 경영활동의 투명성을 함께 이뤄나가기 위해 수평적으로 참여 가능한 ‘사회공헌위원회’를 조직 운영할 계획입니다. 위원회는 매일유업의 지역 지부에도 확대해 나갈 거고요. 또 다른 하나는 이해관계자 참여를 확대하는 거예요. 특히 내부 고객인 직원의 참여와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첫 시작입니다”

기업은 임직원들이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그 가치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핵심은 바로 ‘소통’이다. 또 영유아에 머물던 수혜계층을 점차 확대,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쌍방향으로 피드백을 받고 소통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매일 유업의 CSR 방향이다.

매일유업은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대상으로 보지않았다. 지난 2011년 제품 안정성을 이슈로 우유업계에 큰 논란이 일었을 때 매일유업도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수익성도 나빠져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창 논란이 있을 때,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을 봤어요. ‘그래도 매일유업은 특수 분유도 만들었던 좋은 기업인데. 그럼 이제 김연아 우유만 마셔야 겠어요’라고 적혀있었어요. 그 때 소통하는 활동을 통해 사회공헌을 브랜딩하고, 기업의 명성을 구축해나가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연스럽게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소통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쩌면 매일유업은 진정성을 갖고 기여해왔던 특수 분유 덕분에 소비자의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노 차장은 오랫동안 광고대행사에 종사하며 PR(Public Relations) 업무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을 갖고, 기업홍보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매일유업에 2006년 입사, 사회공헌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심층적인 활동으로 다루고 싶어 CSR팀이 생기자 홍보팀에서 옮겨왔다.

노 차장은 CSR 실무자로서 역량을 세 가지로 꼽았다. ‘소통, 판단력, 그리고 제품과 기업의 이해’다. “사회공헌 프로그램 속 다양한 이해관자들의 요구를 알고 관련 내용이 조직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해요. 그리고 기업 구조, 자원, 관계, 시장에서의 위치 등 회사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가 필요하죠”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노 차장이 바라보는 매일유업 CSR의 비전과 역할은 명확했다. 한국에서는 CSR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데 있어 CSR 실무자만큼 CEO의 마인드와 실행력이 중요하다. 그러면 노 차장은 CSR 전략과 사회공헌 활동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CEO 마인드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CEO가 가장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성공 여부를 CEO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담당자로서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CEO, 담당자, 임직원들 간 이해와 수준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CSR 담당자의 역할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소통이 제일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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