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 화재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과 소방대원. 구혜정 기자

24일 오전 11시경, KT 아현지사의 통신구에 불이 붙었다. 화재가 초래한 것은 재난 수준의 '통신대란'이었다. 무려 서울 오분의 일 지역 통신이 마비됐다. 

KT는 국가기간통신사다. KT는 통신 기술을 연구, 개발할 때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특히 KT는 공기업 시절 전봇대 등 필수설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현재도 KT는 필수 설비의 대부분을 보유해 통신사업자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KT는 관로, 전주(전봇대), 광케이블 등 필수설비 점유율이 70%가 넘는다. 여전히 정부와 떨어질 수 없는 사실상 준 공기업이다.

안전 사고 대비 못한 KT

그럼에도 KT는 사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했다. 

화재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12분 KT 아현지사의 통신구에서 일어났다. 통신구는 전화선과 케이블 등을 매설하기 위해 지하에 설치한 시설물이다. 화재는 약 10시간 만에 진압됐다. 통신구 79m가 소실됐고, 전화선 16만8천 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 세트)가 타버렸다. 사고 발생 나흘째인 오늘, 무선 96%, 인터넷/IPTV 99%, 유선전화 92%가 복구됐다. 

통신구에는 소화기 단 한 대만 비치돼 있었다. 스프링클러, 재난매뉴얼, 백업체계도 정비돼 있지 않았다. 오성목 KT 사장은 25일 화재 현장을 방문해 "소방법 규정에 따라 가스 배출 및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소방 사물인터넷(IoT) 설비를 설치해 뒀기 때문에 곧바로 신고가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백업 체계도 없었다. 정부는 전국망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A부터 D등급으로 나누는데 아현지사는 D등급이어서 백업 의무가 없었다. 

화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KT 관계자는 27일 미디어SR에 "소방법과 정부 지정 국사 등급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고, KT 자체적으로 화재 IoT 설비도 설치했다"며 "다만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6일 D등급 통신국사를 모두 점검하고, 소방법상 방재 시설 설치 의무가 없는 500m 미만 통신구에 CCTV, 스프링크러 등을 설치하겠다는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KT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와 협력을 통해 3사간 로밍 협력, 이동 기지국 및 와이파이 상호 지원 등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간통신사가 재난 초래 

KT아현지사의 화재 이후 서대문구, 은평구, 중구, 영등포구, 마포구, 용산구 등 6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부에 통신 장애가 일어났다. 사고 인근 KT망 기반 금융, 전화, 결제가 끊겼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영위하는 세상에서 통신이 끊기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진 소상공인은 며칠 동안 제대로 장사를 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었던 장 모 씨(25)는 미디어SR에 "KT 휴대폰 이용자와 KT망 기반 카드결제기가 먹통이 돼 SK텔레콤 이용자가 직접 계좌이체를 했다. 만약 일행 모두 KT 이용자였다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도 연락이 끊겼다. 병원에서도 KT 휴대폰을 사용하던 의사들은 긴급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통신서비스는 정상적일 때는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하지만 문제가 일어나면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KT가 더욱 통신망 관리에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유다. 

KT 새노조는 "통신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난상황에도 버틸 수 있는 여유 용량의 장비운용이 필수다. 이는 곧 장비 이중화를 통해 우회 회선 구성을 가능하게 할 백업체계 구축과 적절히 분산된 시설 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KT 새노조는 "통신공공성의 핵심은 투자비가 더 들더라도 만약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충분한 투자와 철저한 관리이며 이 지점에서 수익성과 대립되기도 한다. 그래서 통신사 경영은 그것이 설혹 완전 민영화가 되었다 하더라도 수익과 공공성에 관한 고도의 균형감을 요구받는 것"이라 밝혔다. 

소상공인 보상은?

KT는 소상공인 피해보상을 별도 검토하겠다고 25일 밝혔다.

화재가 일어난 주말부터 KT는 카드결제기 이용이 가능하도록 무선 LTE 라우터를, 무선결제기 등을 소상공인에 공급하고 있다. 주문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착신전환 서비스를 5000여 건 안내하는 등 피해 지원에 나선 상태다. 

다만, 주말 동안 영업손실을 입은 것에 대한 피해보상의 방향성은 명확하지 않다. KT 관계자는 "소상공인 피해 보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느 기간 동안, 누구에게 지원할지는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피해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KT는 구체적인 소상공인 피해 보상을 검토 중이다. 

통신사업자는 민간기업이지만 공공성이 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T를 비롯한 LG유플러스, SKT 통신사업자들은 이번 화재를 계기로 보다 통신망 안전 체계 구축에 힘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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