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11.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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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얼마 전 미국 중간선거가 막을 내렸다. 대통령 선거 중간에 열리기에 중간선거라고 불리는데 상원의원의 1/3과 하원의원 전원, 그리고 주지사를 비롯해 주의 선출직 공직자들이 투표로 선출된다. 이미 미디어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중간선거의 결과가 미국 정치와 경제, 나아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해 논평했기에 필자가 특별히 보탤 말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논평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문득 이와 관련해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이유는 최근에 읽었던 『다크 머니(Dark Money)』라는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제인 메이어(Jane Mayer)라는 탁월한 탐사보도 전문 기자가 쓴 것으로 부제에서 밝힌 것처럼 “극우파들의 부상(浮上) 배후에 있는 억만장자들의 감춰진 역사”에 관한 것이다. 다크 머니란 출처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돈을 말한다. 다크 머니가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는 2010년 시민연합(Citizens United) 대 연방선거위원회(FEC)의 재판을 들 수 있다. 당시 대법원장은 존 로버츠(John Roberts)였는데 이 재판에서 5 대 4로 시민연합이 승소했다. 그 결과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재단이나 협회 등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무제한 정치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후 소수의 재력가들은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정책 결정과 입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되었다. 제인 메이어는 이런 돈을 다크 머니라고 부른 것이다. 

다크 머니를 이용해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억만장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찰스 코크(Charles Koch)와 데이비드 코크(David Koch) 형제다. 구글 검색을 하면 이들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가 얼마나 많은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시민연합이라는 보수적인 단체도 이들의 지원에 크게 의존해왔다. 이들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개인 기업인 <코크 인더스트리즈(Koch Industries)>의 지분을 각각 42퍼센트씩 보유하고 있는데 창업자인 아버지 프레드 코크(Fred Koch)로부터 석유정제사업을 물려받은 후 사업 다각화와 인수·합병을 통해 코크 인더스트리즈를 거대한 기업집단, 즉 재벌로 키웠다. 현재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켄사스 주 위치타에 본사를 두고 있으면서 제조업, 석유정제와 배급, 화학, 에너지, 섬유, 중간재, 광물, 비료, 목재와 펄프,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의하면 2017년 기준 코크 인더스티리즈의 매출액은 1100억 달러이며 종업원은 12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코크 형제가 보유한 재산 평가액은 각자 5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이들의 재산을 합하면 미국 최고의 부자인 셈이다.

코크 형제는 1970년대부터 소수 재력가들이 본격적으로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이른바 금권정치(plutocracy)의 시대를 연 핵심적인 인물로서 이 가운데 찰스 코크의 영향력이 더 컸다. 필자가 이들 형제를 비롯한 일부 재력가들의 막후 활동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 중간선거에도 이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간의 정황으로 짐작컨대 이번 선거에서도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간선거에 대한 어떤 논평이나 분석에서도 이들에 관한 얘기가 거론되지 않은 것이 아쉽게 여겨졌다. 필자가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이들의 행적 자체보다도 이로 인해 우리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데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이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해온 코크 형제는 처음부터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는 공화당의 다른 후보들은 재력가들의 꼭두각시들에 불과하며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월가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싸잡아 비판하면서 자신은 충분한 재력을 갖고 있기에 기존 정치인들과는 달리 이들의 신세를 질 이유가 없다면서 선명한 이미지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전략이 주효해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코크 형제를 비롯한 재력가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인 메이어에 의하면 트럼프의 정권인수위원회를 이끌었던 현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는 일찍부터 찰스 코크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에 대한 코크 형제의 영향력은 부통령이나 인수위원회를 넘어선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 초기 중앙정보국장에 임명되었고 지금은 국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마이크 폼페오(Mike Pompeo)는 공화당 하원의원 시절 개인적으로 코크 형제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던 인물로 일각에서는 그의 별명을 ‘코크 가문의 하원의원’이라고 지었을 정도다. 깊은 내막을 들여다본다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소속 상원과 하원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코크 형제 및 재력가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코크 형제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사례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책임하고 오만한 결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기후변화는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모호한 주장이라는 반론이 깔려있는데 코크 형제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로 전향하게 되었고 이런 분위기를 틈타 파리 협약에서 탈퇴했던 것이다. 코크 형제가 소유한 코크 인더스티리즈는 미국에서 오염물질과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으로 악명이 높다. 이것만으로도 이들이 기후변화를 부인하는데 왜 그토록 공을 들였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왜 그리 서둘러 파리 협약에서 탈퇴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필자가 미국의 소수 억만장자들이 미국 정치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이해관계가 이들이 의도하는 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만 해도 그렇다. 미국이 1930년 당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하원의원 윌스 홀리(Willis C. Hawley)가 공동 발의해 통과시킨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의거해 20,000개의 품목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으로 선회했다. 이에 반발해 다른 나라들도 보복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전 세계의 교역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로 인해 대공황이 촉발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로 인해 대공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데는 견해를 같이 한다. 이것만으로도 현재 진행 중인 무역전쟁이, 만일 11월 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에서 극적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무역전쟁을 불사하는 데는 배후에 어떤 세력이 존재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이들이 얻는 이득이 무엇이기에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모두에게 해로운 것으로 판명 난 무역전쟁을 불사하는지 의문투성이다. 

이와 같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것이 미국의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음모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특정 계층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화(framing)된 정보이고 지식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언론을 무조건 불신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간파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미국을 움직이는 힘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허한 친미(親美)나 반미(反美)는 모두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최대한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과 이를 바탕으로 국가적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다. 이른바 스마트한 용미(用美)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현재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G2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임을 가정할 때 우리 모두 유념해야 할 사안이다.

현재 미국 시카고 대학의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근현대사에 정통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미국과 한국간의 불균형, 즉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는 전반적인 차이의 문제이다. 즉, 지난 50년간 미국은 한국에게 모든 것이었지만 미국에게 한국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거론할 만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한국에 대한 미국언론의 관심은 무(無)에 가깝다.” 커밍스가 이 책을 출판한지 10년이 넘었기에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본질적으로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로서는 미국 정부와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국익을 위한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배후에서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소수의 재력가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과연 한국의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 존중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모두 브루스 커밍스가 한미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이 한국 내정에 일상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지 50년이나 흐른 지금 과연 몇 명의 미국인들이 한국인과 한국의 역사를 약간이라도 존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매우 참담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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