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스틸컷

어린 시절 고구려 역사를 들으면서 가슴 뛰게 하는 인물이 있었다.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 이세민(태종)을 화살로 쏘아 애꾸눈으로 만든 안시성 성주 양만춘. 언젠가는 이런 영웅과 전설이 영화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는 스크린으로 양만춘이라는 사내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마침내 안시성과 양만춘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더군다나 양만춘의 역을 젊고 잘생긴 조인성으로 결정되자 이건 명백한 ‘미스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영화는 말드어졌고 그리고 흥행도 나쁘지 않았다. 약 200억 제작비에 손익분기점이 600만 관객 동원이었으나 얼추 수지는 맞춰졌고 이제 부가판권 사업으로 부가수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뚝심 있는 투자사와 명민한 제작사의 합작승이었다. 

자 그럼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 한 발 들어가 보자.

때는 7세기, 정확히 645년. 당태종 이세민(박성웅)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친다. 이세민은 요동의 고구려성들을 하나하나 정복하였다. 이대로라면 평양성까지 무난하게 쾌속 전진 할 것 같았으나 안시성에서 그만 올 스톱 되고 만다. 성주인 양만춘(조인성)과 그의 수하, 성안의 백성들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당 태종도 안시성을 우습게 보았다. 고구려의 실력자인 연개소문과 양만춘과 사이가 좋지 않아 안시성이 공격당하더라도 평양에서 원군은 절대 보내지 않을 거라는 정보도 있었다. 당시 사료를 보면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시해하고 허수아비 보장왕을 내세워 실질적인 고구려의 권력을 쥐고 있었고 양만춘은 이런 연개소문을 인정하기 어려워 둘 사이에는 갈등이 깊어졌다. 

20만 당나라 군사 대 오천의 고구려 병사와의 전투. 불 보듯 승패가 뻔한 전투에서 반전의 승리를 거둘 때 우리는 그 비결을 캐묻게 된다. 첫째는 양만춘의 리더십이다. 그의 애민(愛民)을 영화는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당시의 전투는 철저히 공성전이었다. 성을 뺐으면 이기는 전투다. 당 군은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시성을 공격한다. 먼저 투석기를 사용하여 성을 타격하여 허물고 그 빈 공간에 기습하여 침투하는 방식과 사다리를 성벽에 걸어 몸이 날렵한 군인들을 선발대로 하여금 기어올라 성을 점령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안시성은 요지부동이다. 필사적인 안시성의 군사들은 석궁 등의 활약으로 당의 1차 공격을 막아낸다. 안시성의 첫 번째 승리다. 2차 공격에서 당은 새로운 전술을 구사한다. ‘트로이의 목마’를 흉내 낸 듯한 모습인데 마치 인해전술의 원조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 역시 목숨을 건 치열한 백병전과 불화살로 저지한다. 당 태종도 금방 밟고 지나가야 할 안시성에서 계속 지체되자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갈등과 조바심은 안시성 내부에도 있었다. 연개소문의 밀명으로 양만춘을 죽이기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사물은 점점 양만춘의 용기와 진정성에 혼란함을 느낀다. 사물은 칼을 들고 침소로 들어가나 그를 죽이지 못하고 이렇게 묻는다. “성주는 진정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여기에 답한다. “넌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느냐?” 
양만춘의 힘은 연개소문에 대한 반감이나 당에 대한 적개심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저 안시성의 성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그래서 “안시성은 지지 않는다”며 승리의 자신감을 표현한다. 드디어 당 태종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안시성의 높이만큼 토산(土山)을 쌓아 성안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 이런 전술은 전쟁사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다. 역시 대국적 기질은 다른 건가? 이에 위기감을 느낀 양만춘은 마지막 저항을 해보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자, 토산은 점점 높아져 가고 마지막 작전은 실패하고 이제 안시성의 운명도 여기까지 인가? 이 위기를 타개한 이들은 결국 백성이다. 스스로 토산을 곡괭이로 파고 들어가 토산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도끼로 찍어 무너뜨린다. 물론 그들 역시 흙더미와 함께 궤멸되어 목숨을 잃는다. 당태종은 토산이 거의 완성되자 총공격 명령을 내리지만, 토산은 마치 모래탑처럼 무너지고 그 순간 안시성의 군사들이 기습 공격을 한다. 양만춘은 주몽의 신궁을 이용해 온 힘을 다해 활 사위를 당겨 당태종의 오른쪽 눈에 화살을 박아버린다. 때마침 연개소문의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태종은 눈에 흐르는 피눈물을 닦으며 퇴각 명령을 내린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당태종이 사망하였다. 태종은 조칙을 내려 요동정벌(고구려 정벌)을 중지하게 하였다’
-649년(보장왕 8년)4월.

안시성의 승리는 기적이었다. 양만춘의 얘기대로 안시성은 지지 않았다. 이대로 당에게 안시성이 넘어가면 모두가 목숨을 모두 잃고 만다는 절박함과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단결이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승리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그저 ‘국뽕영화’ 라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래도 잊혀졌던 고구려인의 기상과 용기를 넓디넓은 대륙의 호흡으로 한 번쯤 느끼게 해준 영화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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