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부산영화제

“욱일기, 바람직하지 못해”

지난 5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일본 배우로 최근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게양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한 말이다.

그의 답변이 한국인 입장에선 고맙긴 했다. 그러나 기자 입장에서 바라봤을 땐 우려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두 나라가 촌각을 다투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 배우가 어떠한 입장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공식 자리에서 표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게다가 그 공식 자리가 정치 관련 자리가 아닌, 심지어 정치영화를 논하는 자리도 아닌, 영화제 축제의 자리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의도하지 않은 발언 하나로 자칫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칸국제영화제 대처는 어땠나

감독이나 배우의 정치적 견해를 듣기 위해 기자가 날 선 질문 혹은 유도성 질문을 던지는 광경은 세계영화제 기자회견장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개는 그것이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기자 개인이 진심으로 궁금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해당 자리에서 합당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갸웃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요한 건 영화제 측의 대처다.

가령 2006년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덴마크 신문의 한 만화를 둘러싼 논란이 유럽과 중동 간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열렸는데, 한 기자가 영화제에 초청된 덴마크영화 <엔 소프>의 감독에게 풍자만화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진행자가 “그건 나중에 개인적으로 물어봐라. 이 영화는 마호메트와는 상관이 없는 영화다”라고 냉정하게 저지한 사례가 있다. 영화제 측에서 먼저 감독을 보호한 사례다.

배우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2008년 칸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한 숀 펜은 정치적 이슈를 묻는 기자들에게 “미국 대선 이야기를 이곳에서 언급하는 건 불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정확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 쿠니무라 준, 억측 시달려

그러나 이번 쿠니무라 준을 향한 예민한 질문에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쿠니무라 준에게 큰 짐을 안겼다.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졌다. 기자 간담회 이후 해당 발언은 빠르게 확대 재생산됐다. 심지어 욱일기를 보도하면서 쿠니무라 준의 발언을 인용하는 기사들도 나았다. 그리고 이 발언이 일본에도 전해지면서 쿠니무라 준은 여러 억측과 비난에 시달린 모양이다.

결국 부산국제영화제는 7일 사과의 뜻이 담긴 입장문에서 “배우 쿠니무라 준의 경우, 민감한 한일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에 시달리고 있다. 수 십 시간의 토론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의 짧은 문답은 충분히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다. 이 점을 숙지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쿠니무라 준 역시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사람들은 모두,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 보다, 밝은 미래의 희망이나 따뜻한 과거의 추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왜, 지금 이렇게 엄중한 상황이 되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이렇게나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며 “그리고 모두가 그 영화를 가지고 영화제를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제라고 하는 자리는, 모두의 생각이나 의견이 섞이고, 녹여져서, 어느새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어가는 장이 되기를, 저는 염원한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배우를 초청한 영화제도, 영화제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한 배우도 난처해진 결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그 어떤 영화보다 안타까운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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