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의 요즘세상] 정부주도 벤처육성에 관한 기우
[김동하의 요즘세상] 정부주도 벤처육성에 관한 기우
  • 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9.18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2018년의 가을.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빨라 보인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3조8317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은 2개월만에 70%를 소진한다는 당초 계획대로 신속하게 집행되는 모습이다. 서울시가 3조7000억원에 달하는 사상최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광역,자치단체까지 재정을 통한 경제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벤처육성과 투자'는 '혁신성장'을 내건 정부가 청년 일자리문제와 경제활성화를 위해 주력하고 있는 핵심분야 중 하나다.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는 총 532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운용할 14개 벤처캐피탈을 선정했다. 정부가 모태펀드를 통해 50~60%의 자금을 집행하는 형태니, 추경 자금의 상당부분이 민간 벤처사업자를 통해 시장에 흘러가는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 새롭게 결성된 벤처펀드만 1조2000억원을 넘고, 올해 상반기 투자된 금액만 1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한국 벤처시장은 분명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되기 쉬운 사실은 이 자금 중 정부의 출자금이 50~60%에 달하고, 나머지 40-50%의 민간자금에도 국민연금 등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 규모와 참여면 온 나라가 벤처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부의 벤처육성과 청년경제 활성화 움직임에 반기를 들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자본시장 역사에 흔치 않은 '정부주도 벤처육성'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건 필자만은 아닌 듯하다. '아주 나쁜 버릇을 들게 하는 것'이라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분석부터, '시장은 죽었고 정부지원사업만 살아있다'는 초기 기업들의 푸념까지,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벤처육성과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해 펼치는 재정정책에는 벤처펀드 뿐 아니라 각종 R&D지원, 창업자에 대한 정부지원사업 등이 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의 원산지로 불리는 미국에는 정부가 벤처펀드에 직접 투자하거나, 스타트업에 직접 자금을 대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중국 상해의 이노베이션엔젤펀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벤처캐피탈 등 사모펀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정부가 기금과 기관을 통해 직접 펀드에 출자하는 자금은 10~20%에 불과하다고 한다.

언론에 소개된 추경예산과 벤처펀드 결성의 취지는 대부분 모험자본 공급과 시급한 일자리 문제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벤처펀드와 청년 일자리와의 간격은 그리 가깝지 않다.  초기 창업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평균적으로 벤처캐피탈이 선호하는 건당 투자금액은 10억~30억원 규모다. 적어도 5억원, 최소 3억원 이상은 투자할 수 있어야  투자 프로세스에 착수할 대상이 된다. 벤처캐피탈은 오로지 캐피탈게인(자본차익)을 위해 투자하며,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10-20%정도의 지분율을 취득한다. 3억원을 투자한다면 투자기업의 가치가 적어도 15억원은 돼야 검토할 수 있고, 선호하는 투자대상이 되려면 기업가치가 100억원 정도는 돼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청년’이 ‘창업’한 ‘초기’ 기업 중에 그만큼 '혁신적'인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정책적 '목적성'을 띠고 운용되는 벤처펀드 자금이 오히려 지나치게 유행만을 쫓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ICT, 4차산업혁명, VR, AR 등 특정 분야나 신기술에만 투자할 수 있는 펀드들이 많은 탓에 시장에서 특정 분야로의 '쏠림'이 유발된다는 취지다. 정부의 자금을 운용하는 곳이라면 그 펀드의 성격과 취지에 대해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개해야 할 것 같은데, 투자의 프로세스와 펀드의 성격은 여전히 대다수 청년과 창업자들에게는 먼 거리에 있다.

무엇보다도 벤처투자의 본질적 특성상 '될 성 부른'기업에만 자금이 쏠린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혁신을 위한 실패'에 지원하지만, 우리 정부와 시장은 '혁신을 위한 성공'에만 지원한다는 지적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책적 '목적성'을 띤 분야로의 벤처투자와 지원은 시장과 기업에 자생력을 줄 수 있을까. 한 예로 최근 소셜벤처와 같은 분야로 정부가 1200억원 규모의 소셜임팩트투자펀드를 조성하고 보증과 융자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기존에 설립했던 많은 소셜벤처 기업들은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채이배 의원은 얼마전 A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벤처는 자본시장에서 이뤄져야하지만, 우리는 그 역할을 재정이 다 하려 한다"며,  "정부는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니 재정으로 물꼬를 터주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시장은 정부가 다해서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아주 나쁜 버릇을 들게 하고 있다며, 시장의 작동을 막고 있는 재정에 대해선 지금이라도 그 역할을 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벤처펀드는 앞으로도 민간의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서 결성된 모태펀드의 투자집행률이 1년이 다되도록 20%를 밑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정부가 자금을 써도 민간과 시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60%가까운 돈을 공급하지만, 펀드의 '목적성'에 따라 40%에 달하는 매칭에 실패해 결성이 좌절되는 펀드들도 많았다. 이번 추경으로 선정된 14개 운용사 중 민간자금유치를 못해 결성에 실패하는 운용사는 없을까. 쓸 떼 없는 기우가 되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주식회사 데일리임팩트
  • 제호 : 미디어SR
  • 등록번호 : 서울 아 02187
  • 등록연월일 : 2012-07-10
  • 발행일 : 2012-06-18
  • 사업자 등록번호 : 774-88-006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영등포, 라00676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53-1 대오빌딩 5층
  • 대표전화 : 02-6713-3470
  • 대표자 : 전중연
  • 편집국장 : 김동원
  • 고문 : 이종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균
  • 미디어SR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고충처리
  • 보도자료 수신처 : press@mediasr.co.kr
  • Copyright © 2020 미디어SR.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