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
거래처로부터 자동차부품 개발 오더를 받아 약 1년간 2억원을 투입해 부품과 설비까지 설계·제작했다. 그러던 중 정식 납품 제안 단계에 거래처에서 설계자료, 도면, 부품 그리고 특허 관련 자료 일체를 요구해와 납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공했는데, 기술자료를 다 넘기고 얼마 후에 우리가 개발했던 제품을 양산하지 않는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알고 보니 다른 업체가 이 제품을 거래처로 전량 납품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고, 자체적으로 확인해보니 거래처에서 우리 기술자료를 이 업체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중소기업이 기술자료를 요구받는 시점이 대부분 계약하기도 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6일 발표한 '대∙중소기업 간 기술탈취 실태 및 정책 체감도 조사' 결과,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중 계약 체결 전 기술자료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고, 기술자료를 제공하면서 서면도 제대로 발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1곳 중 17곳(3.4%)이 대기업에게서 기술자료를 요구받았다고 응답했다. 이중 기계/설비, 자동차, 전기/전자 등의 업종에서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비율이 높았다.

기술자료 요구 시점. 제공: 중소기업중앙회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시점은 계약체결 전이 64.7%로 가장 많았다. 계약 기간 중은 29.4%, 계약체결 시점은 5.9%였다.

기술자료를 요구받아 제공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중 53.8%가 대기업으로부터 서면을 발급받지 않았고, 23.1%는 서면을 발급받았지만 합의가 아닌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만든 서면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기술자료 요구 시 요구목적,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권리귀속 관계, 대가 등을 담은 서면을 중소기업에게 줘야 한다.(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서면은 이후 분쟁이 일어나면 피해사실 입증 자료로 이용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서면을 계약 전에 받거나 받지 못하는 경우 피해사실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서정헌 상생협력부장은 미디어SR에 "(피해 기업이) 적은 숫자여도 실제로 기술탈취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것이 기술이다. 대기업의 기술탈취는 기술의 싹을 잘라내고 기업을 고사시키는 것이다.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비율은 적지만 경제적 파급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사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대한 정부 정책이 꾸준히 나오고, 법적 제재 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보완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발표한 기술탈취 근절 대책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정부의 기술탈취 근절 대책으로는 지난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징벌적 손해배상 배상한도 증가, 기술탈취 피해기업 법률 지원 등과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중소기업 간 기술 유용행위 근절 대책’ 등이 있다. 

정부 정책 중 과징금 상향 및 징벌적 손해배상 등 처벌강화(44.7%), 기술탈취 행위 범위 확대(22.8%), 기술임치·특허공제 지원제도 활성화(14.6%), 집중감시업종 선정 및 직권조사 실시(10.2%) 등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이재원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중소기업도 정부 대책이 기술탈취 근절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하지만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으면 사실상 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서면을 발급해 권리관계를 분명히 하고 나아가 중소기업 기술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술거래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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