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헌법재판소

불복기회 등 구제절차 없이 DNA를 채취할 수 있게 했던 일명 'DNA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헌재)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 제8조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사건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이에 따라 국회는 내년 12월 31일까지 보완 입법을 해야 한다.

기존 조항은 검사가 발부 받은 영장에 의해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때 채취 대상자에게 미리 DNA 감식시료의 채취 이유, 채취할 시료의 종류 및 방법을 고지한다. 하지만 채취영장 발부 과정에서 대상자가 입장을 밝히거나 불복하는 등의 절차는 없다.

이에 대해 헌재는 "채취영장 발부과정에서 의견 진술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장발부에 불복할 기회를 주거나 채취 행위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영장에 따른 DNA 감식시료 채취·등록 과정에서 그 대상자는 신체의 자유·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제한받게 된다"며 "그럼에도 영장 발부 과정에 의견 진술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발부 후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아 이들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채취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이 유명무실화되고 채취대상자는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받게 된다고 언급했다. 이상의 사정들을 종합하여, 헌재는 "DNA법의 해당 영장절차 조항은 채취대상자인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은 노사분규를 겪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구미지회 조합원들이다. 조합원 48명은 2010년, 노사분쟁 중 직장폐쇄로 출입금지된 공장을 점거해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15년부터 2년간 DNA를 채취당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에 금속노조 등 여러 단체들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헌적인 DNA 채취 중단 및 즉각적인 법 개정을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DNA법은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 등 강력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2010년 제정됐는데, 법 시행 후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농성에 참여한 노동자·활동가들에 대한 DNA 채취가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또 2015년 장애인단체 지체장애인 활동가가 DNA 채취 요구를 받았고, 2016년에는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면 20분 농성을 했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노점상 활동가들이 DNA를 채취 당했다고 밝혔다. 올 8월에는 학내 민주화투쟁으로 한신대 학생 5명의 DNA를 채취하기 위해 검찰직원이 학교까지 찾아온 것을 지적했다. 이어 DNA 영장 청구와 집행을 즉각 중단하고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금속노조 법률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현 DNA법은 대상 범주가 너무 넓다" 라며 "우리나라는 파업이나 생존권 투쟁에 대해서 처벌을 많이 하는데, 살인·강간 등 흉악 범죄와 함께 DNA법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것을 함께 고칠 필요가 있다" 라고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현재 채취된 DNA 정보는 평생 소장되고 있는데 유죄 판결 확정된 분들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역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창종·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은 이번 판결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채취 대상자인 청구인들이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며 "구속영장 청구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한 것이나, 이는 형이 확정된 사람에게 단지 DNA 감식시료를 채취하는 데 불과해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고 엄격한 절차적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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