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를 떠들썩하게 만든 여러 사건 중에는 재벌총수들의 갑질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의 갑질 사건만큼이나 우리 일상 속 크고 작은 갑질 사건들도 많았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누군가의 갑질. 이에 미디어SR은 오늘을 갑질의 시대라고 규정하려고 합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강자에 굴복하고 약자를 착취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일까요.

미디어SR이 우리 사회 만연한 갑질의 원인을 전문가를 통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재벌 총수들의 갑질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았습니다. 또 점점 진화되는 형태의 갑질의 모습도 짚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땅콩회황 사건으로 갑질 사건 피해자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대한항공의 박창진 사무장의 입을 통해 갑질 사회를 개선시키려면 개인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들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2014년 12월 대한민국 갑질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 발생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의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비행기를 돌리고 박창진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던 '땅콩 회항'이다. 그 후로 약 4년이 지났다. 또다시 한진그룹 오너 일가에서 갑질 논란이 터졌다.

지난 땅콩 회항과 달리, 대한항공 직원들은 더 이상 가만 있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한진그룹 오너 일가 퇴진을 외쳤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가면 속에서만 맴돌았다. 신분이 드러나면 사측이 보복할 것이라 생각해 차마 가면을 벗지 못했던 것이다. 

4년 뒤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 지부장이 된 박창진 사무장은 "이제 가면을 벗을 때"라고 말한다. 이제는 대한항공 직원 모두가 용기 내 갑질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지부장은 "회사가 4,000~5,000명 직원을 모두 부당징계 할 수 있나. 또 침묵하면 계속 갑질을 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박 지부장은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 대신 전면에 나서 움직였다. 하지만 박 지부장은 동료들이 가면을 벗고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 함께 하면 어려운 길이 쉬운 길로 바뀔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미디어SR은 4일 마포구 한 카페에서 박 지부장을 만났다. 그는 앞으로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이야기 했다.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 지부장. 구혜정 기자

- 최근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뒤통수에 큰 혹이 생겼다. 처음에는 단춧구멍 정도였는데, 2017년도에 들어와서 20cm까지 급격하게 커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3월 30일에 수술을 했다. 원래 수술을 12월부터 하고자 했다. 회사에 휴가를 달라고 했는데 안 줬다. 대한항공이 최소 인력으로 운영하다 보니 연차나 휴가를 못 간 사람이 너무 많다. 정책적으로 안 주려고 한다. '안' 주는 거다. 그래서 12월에 낸 휴가 요청이 3월까지 반영이 안 돼 병가를 내고 수술했다. 

- 그럼에도, 박창진은 대한항공 직원연대 촛불집회에서 대한항공 노동자의 '얼굴'이 되어 나왔다. 

촛불집회를 준비하던 관리자는 신분을 노출하기도 어렵고, 집회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솔직히 갈등했다. 몸도 너무 안 좋고 정의당과 1인 시위했을 때 실밥을 이틀 일찍 풀어 상처가 덧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동료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관리자가 직접 나서 실천해줄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나라도, 힘들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이 간접적이지만 마스크를 쓰고라도 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생긴다면 이를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우리 내부가 변화하고 동료들이 행동할 수 있게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이게 내가 직원연대 집회를 도왔던 이유다. 

지난 5월 4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촛불집회에 참여한 박창진 지부장. 구혜정 기자

- 그 집회가 이어지면서,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가 탄생했다. 

갑질 이후 사회적 분위기가 팽창하고, 오너 일가가 몇 번씩 검찰에 소환되다 보니 오너 일가는 얘들이 노조까지 만들면 큰일이다 싶었을 것이다. 이에 서울과 인천에서 일하던 정비사 3명을 부산과 제주로 보냈고, 김포에 있던 지원팀 직원 한 명을 부산으로 장기 출장 보냈다. 직원연대의 손발을 잘라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려움을 내부에 확산시키고자 한 것인지, 부당전보를 했다. 부당전보 당한 직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본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는 노조밖에 없었다. 이후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가 출범했다. 

현재 지부장으로서의 활동이 노조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이후 2대 집행부가 될 사람들이 자의식, 목적성을 갖고 임원이 되어 노조를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퇴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표면은 퇴진, 함의는 대한항공의 전면 개선이다. 대한항공이 전면적으로 개선되려면 우선 조 회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조양호 회장이 물러난다 해도 일선에 그대로 있을 것이고. 말로만 내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회장이 안 바뀌니 계속 갑질하고 갑질에 익숙해진 중간관리자도 갑질, 착취하고. 착취를 잘하는 직원이 승진한다. 조 회장이 바뀔까? 아니라고 본다. 구태의연한 행태들을 전면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의 미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 조 회장이 물러나면 어떤 변화가 생기나.

우선 독단적인 경영이 사라질 것 같다. 나는 대한항공 입사 3개월 차부터 VIP 의전을 하고 회사 홍보모델을 하는 등 윗선을 지켜볼 일이 많았다. 회장 옆에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네 회장님 맞습니다!"라고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이렇게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조 회장 퇴진은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 박 지부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회사 모습은? 

정당한 방법으로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한진그룹에게 고마운 줄 알아야지 어디 대드느냐"라고 말한다. 나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권한과 권리를 인정한다. 그들이 가진 권리로 얻는 지분과 수익도 인정한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정당한 방법으로 사업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면세점 통행세를 받는 것처럼 비열한 방법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또,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지켜주는 회사를 원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인권과 자유를 파는 게 아니다. 노예가 아니다. 기본 인권이 있는데도 회사는 노동자가 병가 내고 육아휴직 하고 쉬는 것을 용인해주지 않는다. 노동자의 인권, 그 기본적인 사항을 보전해달라고 직원연대도 요구하는 거지,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 지부장. 구혜정 기자

-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가 지속가능하려면?

직원들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대한항공 직원분들도 정말 이 회사를 바꿔나가고 싶다면 노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자주 나서줬으면 좋겠다. 언론 인터뷰도 많이 나가 우리 상황을 알려야 한다. 박창진만 나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면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공포, 공감한다. 하지만 두려움, 공포는 대부분 실체가 없다. 회사가 그걸 아니까 몇 명을 본보기로 부당징계하는 거다. 그 공포심을 학습시키려고 겁박하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다. 동료들이 공포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 앞으로 노조가 가야 할 방향은. 

결국, 다 같이 나서야 한다. 회사가 4,000~5,000명 직원을 모두 부당징계 할 수 있나. 또 침묵하면 계속 갑질 당하며 살아야 한다. 땅콩 회항 때 모두가 침묵했더니 또다시 갑질 사건이 터진 것처럼. 이건 아니다.

'이 정도면 회사가 좋아졌지'라는 생각은 아직 이르다. 회사를 향한 견제 세력, 불만 세력이 없어지면 회사는 또다시 직원들이 가진 권리를 거둬갈 것이다. 노조 활동은 직원 본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난 24일 있었던 총수일가 퇴진 촛불집회에서 가면을 벗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다 같이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가면을 벗으면 회사가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게 직원들에게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다 같이 가면을 벗으면 쉬운 일이다.

직원들이 함께 스스로 나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가시밭길을 꽃길로 만들 수 있다. 함께 용기 냄으로써 어려운 길을 쉬운 길로 만들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이한열 열사 사건이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다. 그래서 광주 사태도 잘 몰랐다. 당시 나는 내가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 배웠다. 그런데 경찰이 쏜 최루탄에 학생이 맞아 쓰러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땅콩 회항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시스템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에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국가라는 시스템과 체계는 대부분 기득권이 쥐고 있다. 기득권은 변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개개인이 각성하고 바꿔나가야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막연히 국가와 체계가 바뀔 거라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바꿔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이 바꿔나가는 게 아니다. 작은 개인이 바꿔나가는 것이다.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노조 지부장. 구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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