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균형 시스템 vs. 불균형 시스템
시장경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균형 시스템 vs. 불균형 시스템
  • 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09.0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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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현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어떤 형태로든 이론 모형이 필요하다. 이론 모형은 지도와 같이 우리를 원하는 목적지로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이론 모형은 정확한 지도와 같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반면 나쁜 이론 모형은 부정확한 지도처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장경제에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용하려는 지도가 좋은 지도인지 아닌지, 나아가 우리가 지도를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점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세 가지 특성은 효율성, 안정성, 그리고 합리성이다. 그런데 이런 특성들은 모두 시장경제가 균형 상태로 수렴하는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만 실질적으로 의미를 갖는다. 만약 균형(equilibrium) 상태로 수렴하지 않고 불균형(disequilibrium) 상태에서 변동하는 것이 시장의 고유한 특성이라면 시장경제의 장점인 효율성이나 안정성에 관한 논의는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은 개별 시장 나아가 시장경제 전체가 균형으로 수렴하는 내재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균형 상태로 수렴하지 않는 경제는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경제시스템으로서 시장경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주류 경제학에서 균형 개념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신고전파 경제이론은 균형이론이다. 한편 복잡계 이론(complex system theory)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불균형의 관점에서 신고전파 경제이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에 의하면 시장경제는 대표적인 복잡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복잡계 이론에 의하면 어떤 시스템이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균형 및 불균형 개념과 관련해 복잡계 이론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 주류 경제학과 복잡계 이론이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개념이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과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다. 복잡계란 이 두 가지 되먹임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가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발 현상(emergent phenomenon)이 나타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를테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시장이나 군중은 복잡계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장경제가 수많은 개별 시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이들 간에는 되먹임이 작용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런 되먹임을 양의 되먹임과 음의 되먹임으로 구분한 후 복잡계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복잡계 이론에서 핵심은 바로 양의 되먹임과 음의 되먹임 간의 관계에 있다. 이에 따라 복잡계는 완벽한 질서와 완벽한 무질서 사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즉 외부의 충격 없이 발생하는 교통체증이나 시장붕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질서 있는 상태와 무질서한 상태 사이를 자발적으로 오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잡계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양의 되먹임은 과학에서는 오래된 개념으로, 주어진 시스템에서 생긴 작은 변동을 점점 더 커지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 예컨대 양의 되먹임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언급된다. 반면 음의 되먹임은 이와 정반대로 시스템에 생긴 변동이 점점 잦아들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제 이 두 가지 되먹임을 시장경제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되먹임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장이 점점 균형 상태로 수렴할 것인가, 아니면 불균형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인가가 결정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복잡계 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복잡계 이론에서는 주류 경제학과는 반대의 관점에서 시장을 해석한다. 한마디로 시장은 열린 시스템(open system)으로서 자기조직화와 양의 되먹임이라는 특유의 속성으로 인해 대부분 불균형 상태에 있으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균형 상태에 도달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비선형 동역학의 논리에 따라 결국 다시 불균형 상태로 복귀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시장은 질서(안정적 균형 상태)와 무질서(완전한 혼돈 상태)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해석한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즉 모든 시장이 복잡계의 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장이 이런 특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금융시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로 시장경제가 복잡계인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필자는 이 문제는 지금이라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복잡계로서 시장경제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여전히 과거와 같은 이론 모형에 입각해 경기를 예측하고 금융 및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틀린 지도를 참조하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듯이 시장경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을 실시하면 마찬가지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여전히 기득권에 집착하는 행태가 모든 분야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미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 금융시장을 살펴보자. 금융시장이 복잡계의 특성을 보인다는 데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 대부분이 여전히 과거의 이론 모형, 즉 균형 개념에 기초한 이론 모형을 이용해 금융시장을 분석하고 금융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특히 금융시장은 다른 시장과는 달리 복잡계의 특성이 매우 강한 시장이다. 이것은 금융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금융위기와 이에 수반되는 거품의 형성 및 붕괴라는 극단적인 상황들은 모두 복잡계에서 발생하는 자기조직화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금융시장에 대해 잠깐만 생각해보자. 수많은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융시장을 복잡계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잡계는 균형 상태로 수렴하는 성향 대신에 불균형 상태에서 역동적으로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의 연방은행(FRB)과 한국은행, 그리고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금융시장이 균형으로 수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자율정책이나 양적 완화와 같은 금융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시장을 복잡계로 파악하지 않는 가운데 실행되는 모든 금융정책은 결국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잠재적으로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금융정책을 집행하는 전문가들이 이런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는 데 있다. 물론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개별 시장들 가운데는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균형으로 수렴하는 성향이 강한 시장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전통적인 소비재시장들은 이런 성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오늘날 금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과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시장경제 전체가 점점 복잡계로서의 특성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는 가운데 정책을 실시한다면 어떤 정책도 처음에 의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한국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삼두마차가 상호작용한 결과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복잡계로서 시장경제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과거의 경제 모형에 입각해 이런 정책 조합을 추진한다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이런 가능성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복잡계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현재 정부가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극히 염려스럽다. 특정한 정책이 실시된 후 예상되는 결과를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복잡계로서 시장경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 점이 염려스러운 것이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노벨 강연(Nobel Lecture)에서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의회에 파견된 대표 중 한 사람인 피에르 듀퐁(Pierre S. du Pont)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면서 끝을 맺었다. “잘못된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저지른 것보다 더 많은 비자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Bad logicians have committed more involuntary crimes than bad men have done intentionally).” 필자는 과거 정부에 비해 지금 정부가 더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이 말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자신들이 잘못된 논리에 빠져 의도했건 안 했건 엄청난 범죄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현 정부는 더 이상 이런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한계로 인해 이런 잘못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이 모두 필자의 기우(杞憂)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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